아이가 다니는 애월초등학교는 다혼디 배움학교이다. 제주에 있는 혁신학교를 다혼디(다함께) 배움학교라 부르는데 이 학교는 ‘존중하고 협력하며 함께 성장하는 교육공동체를 실현하는 행복한 미래형 학교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이런 정의는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1년 동안 아이가 경험한 학교는 이런 이상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학교였다.
다혼디 배움학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수업이 교과서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데 있다. 국어 수업을 예로 들면, 아이들은 ‘온 작품 읽기’를 한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역할극을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수업을 꾸리는 교사는 창의적으로 수업을 이끌고 아이들은 자유롭게 임한다. 담임을 맡은 교사는 행정 업무를 보지 않고, 다른 교사와 함께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며 오로지 수업 연구에만 힘을 쏟는다. 수업 시간도 다르게 운영되는데 40분을 1교시로 두고 10분 쉬는 시간표 대신, 블록수업이라고 해서 1, 2교시를 묶어 80분 수업을 하고 30분을 쉰다. 수업 시간이 긴 것처럼 보이지만 수업 분위기가 자유로우니 힘들 것 같지 않고, 휴식 시간이 길어 아이들은 생태 숲이나 운동장에서 바깥 활동을 할 수 있다.
아이를 통해 들은 ‘다모임’도 신선했다. 2주에 한 번씩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모여 회의를 한다. 여기에서 어떤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그 결과를 학교 곳곳에 게시해 둔다. 어느 날 학교 현관문에 붙은 종이에서 ‘다목적실 이용에 대한 토론 결과’라는 글을 보았다. 문제 제기는 다목적실을 이용하는데 많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이용에 불편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두고 토론한 결과, 학년 마다 요일을 정해 놓고 이용하자는 결론을 내렸고 아이들은 그것에 따라 움직였다. 보통의 학교에서 반의 대표가 어린이회의를 진행하는 것과 달리 다모임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직접 민주주의를 일찍부터 경험해 보는 훌륭한 제도라 생각한다. 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예닐곱 명을 한 조로 묶어 한 달에 두 번은 함께 점심을 먹는다. 고학년과 저학년이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3학년인 내 아이는 동생들을 챙기게 되고 언니들한테는 예쁨을 받고 있다.
작년 가을, 2학년 2학기에 전학을 온 아이는 걱정했던 것과 달리 학교에 빨리 적응했다. 전학 한 지 2주 정도 되었을 때 학교가 어떠냐고 물었다. 아이는 예전 대구에서 다니던 학교와 이곳 학교를 대조해가며 설명해 주었다. “내가 만약 놀이터로 가는 길을 몰라서 애들한테 물었다고 쳐. 대구 애들은 103동 옆이 놀이터라고 말로 알려줬을 텐데, 여기 제주 애들은 나를 직접 놀이터까지 데려다 줄 걸?” 했다. 제주 특성상 이주민의 드나듦이 잦아 전학을 오고 가는 게 빈번할 텐데 아이들은 전학 온 친구한테 친절했다. 이무렵 아이가 학교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데 헬멧과 스케이트를 보관하기 어려웠다. 노란 상자 두 개에 많은 아이들의 것을 두다 보니 서로 엉키고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아이가 담임 선생님께 어려움을 말씀드렸는데 바로 다음 날 임시 정리함을 마련해 주었고, 며칠 만에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우는 커다란 인라인스케이트 보관장이 생겼다. 이때부터 아이에게 애월초등학교에 대한 신뢰가 생겨난 것 같다. 자신이 목소리를 내면 그것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학교를 경험하게 되었다.
다혼디 배움학교라고 문제없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갈등과 대립이 있게 마련이다. 얼마 전에는 3학년 여학생과 6학년 남학생 사이에 작은 싸움이 일어났다. 3학년 아이들이 생태 숲 연못에서 키우던 금붕어를 6학년 아이들이 물 밖으로 꺼내서 장난치고 있었다. 놀란 동생들이 오빠들에게 당장 금붕어를 넣어 두라고 소리쳤고, 오빠들은 동생들이 대드는 것 같아 윽박질렀다. 이 일이 있은 다음 날, 3학년과 6학년은 오전 내내 ‘문제해결’에 들어갔다. 두 학년이 함께 모여 어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돌아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토론했다. 그 과정에서 3학년 여자 아이들이 울기도 했고 6학년 오빠는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속상한 마음이 풀리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또 배우는 것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난 주에 애월초등학교와 애월중학교에서는 ‘다시 다혼디 배움학교의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세미나가 있었다. 몇 백 분의 선생님이 참석하였고 나도 학부모로서 관심있게 주제강의를 들었다. 강의 내용 중 강사가 했던 이 말이 마음에 남는다.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그 집단은 비로소 나의 것이 된다.” 이제껏 소외당했던 학생들의 목소리가 학교에서 널리 울려퍼지길, 그리고 그들이 민주시민의 한 사람으로 잘 자라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