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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중한날의꿈 Feb 02. 2018

친구, 우정 말고 무수한 낱말들로 채워질 사이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엘레나 페란테 지음, 한길사 펴냄(2017)

친구, 우정 말고 무수한 낱말들로 채워질 사이

-나폴리 4부작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엘레나 페란테 지음, 한길사 펴냄


긴긴 가을방학 동안 나폴리 4부작 중 3권을 야금야금 읽어야지 했는데, 이틀 만에 휘리릭 읽어버렸다. 그만큼 한 번 손에 잡으면 빠져들게 되는 책이다. 1권<나의 눈부신 친구>, 2권<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3권<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를 읽으면서 장편소설의 매력을 한껏 맛보았다. 후편을 읽으면서 저자가 전편에 숨겨놓은 단서들을 다시 찾아보게 되었고 서사의 큰 맥락을 훑기도 했다. 그러면서 책읽기는 풍성해지고 흥미로워졌다.


2권에서 릴라 아들의 아빠가 니노로 나오는데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권 맨 앞에 등장하는 그 아들은 아둔하고 무능한 사람이었는데 그에게서 니노와 릴라의 교집합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3권에서 출생의 비밀은 밝혀졌고 내 짐작이 맞았다. 또한 눈여겨볼 점이 있었다. 1권, 2권, 3권 이야기가 끝날 무렵 꼭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니노’였다. 마치 랩의 라임처럼 시의 각운처럼 어김없이 각 권의 끝에 니노는 출현했다. 니노를 같은 자리에 등장시키는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릴라와 레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인물이 바로 니노였으니 그를 중요하게 다룬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노를 떠올리면 은근히 화가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릴라와 레누 인생에 끼어든 이 라임, 어쩌면 좋담?    


1권 첫 시작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릴라의 증발이었다면, 4권 끝에서는 납득이 되는 릴라의 증발로 마무리 될 거 같다. 1권에서는 릴라와 레누가 우정을 쌓기 시작한 이야기와 그들을 둘러싼 나폴리라는 환경들을 좀 산만하게 풀어 놓았다. 2권에서 주인공은 단연 릴라였고, 그녀의 이야기가 비극적으로 전개된다. 3권에서는 레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그녀의 심리를 따라가는 묘미가 있다. 1인칭 시점으로 쓰인 이 소설이 관찰자와 주인공 시점을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시켜서 흥미롭기도 했다.


3권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는 나폴리를 떠나려는 레누와 나폴리에 머무르려는 릴라를 두고 붙여진 제목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단지 물리적인 떠남과 머무름이 아니었다. 레누는 가난하고 부끄러운 자기 집안과 나폴리라는 환경, 그리고 과거의 자신을 부정하고 싶어 했다. 무엇보다 친구 릴라에게서 벗어나려 했다. 친구를 우정이라는 한 낱말로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나와 너 그 사이에는 무수한 낱말들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겠지. 사랑, 질투, 애정, 배신, 베풂, 미움, 동정, 시기, 너그러움, 인색함, 비밀스러움 등 어쩌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온갖 감정을 다 갖다놓아도 어울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달라서 통하기도 하고 그래서 또 이해하기 어려운 릴라와 레누는 함께해서 ‘눈부신 친구’이기도 하지만, 완전히 다른 선택을 하면서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고, 마침내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로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4권의 출간 소식이 늦어진다고 하니 적잖게 실망이 되었다. 아슬아슬 위태롭게 보이는 레누는 어떻게 될는지, 릴라에게도 한 줄기 빛이 비춰질지 모든 게 궁금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책이 나오기까지 친구와 친구, 그 사이에 놓일 수 있는 낱말들이나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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