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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이호선 Jul 23. 2021

내 아들은 천재인가?

어! 8시네!

잠을 깬 아들은 거실의 시계를 본다. 그리고 말한다. 

"어! 8시네!"


깜짝 놀라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정확히 8시를 가리키고 있다. 나의 가슴은 갑자기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영재유치원을 급하게 알아봐야 하나? 대한민국을 빛낼 천재인가?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하지?' 나의 머릿속에서는 SF과학 영화 두 편이 마구 돌아가고 있다. 

흥분된 마음을 달래며 1시간을 기다려보자. 왜 이렇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걸까? 그런데 사실 오늘 시계 사건만이 아니었다. 요즘 부쩍 말문이 터진 내 아들은 30개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단어 선택과 고급스러운 문장을 구사한다. 


"아빠! 더운데 밖에 나가면 안 되죠. 더위 먹어요."

"일찍 일찍 자야 하죠. 늦게 자면 피곤하죠"

"바람이 불어서 시원하니까 밖에 나가도 되겠다."


이뿐만이 아니다. 엄마, 아빠의 이름은 물론 할머니와 외할머니 이름까지 말한다. 그리고 얼굴 부위와 신체부위와 쉬운 단어는 영어로도 알고 있다. 

"아빠~ 우산이 영어로 뭐예요?"

"아빠~ 밥을 많이 먹는 것 은 영어로 뭐예요?"

"아빠~ 목욕하고 싶어요. 는 영어로 뭐예요?"


점점 질문하는 영어의 난이도가 어려워지고 있다. 나도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우리 집은 아직까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보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집에서도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거나 한글을 가르치지 않는다. 단지 거실벽과 아이방 한쪽면을 아기 책으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집안에는 TV가 없고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를 노출시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육아가  2배 이상 힘든 건 사실이다. 외식할 때 옆 테이블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조용히 앉아서 보고 있다. 하지만 내 아들은 식당에서도 나를 유격 훈련시킨다. 지금까지 함께 외식하러 나가서 여유 있게 식사를 해본 적이 아직까지는 없다.

집에서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놀랍게도 책 읽기다. 그리고 오디오북과 엄마가 책을 읽어준다. 그러면 아기는 음성에 맞춰서 책장을 넘긴다. 알고 넘기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기가 목욕을 안 하려고 하거나 장난을 심하게 칠 경우 아기 엄마는 말한다.

"수현이가 목욕을 늦게 하면 자야 할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까 책 읽을 시간이 줄어들게돼. 책 조금밖에 못 봐."


신기한 건 이게 통한다는 것이다. 정말 어이없지 않은가? 책 못 보게 한다고 보게 해달라고 하기 싫다는 목욕을 하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갑자기 결혼 전 와이프와 연애할 때가 생각난다.  

"요즘 잠이 잘 안 와요."

"왜?"

"잘 모르겠어요. 그냥 잠이 안 와요."

"그래? 그럼 책을 봐. 그럼 잠이 올 거야"


나의 그 말에 아내는 정색하며 내게 물었다.

"책을 보는데 어떻게 잠이 와요? 전 정신이 더 말짱해져서 잠이 깨요."


세상에 이런 일이.....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정말 존재하고 있었다. 

결혼 후 우리는 그때의 일을 직접 확인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말 아내는 책을 펴면 정신이 더 말짱해지는 마술을 보여줬다, 그리고 나는 책을 펴자마자 숙면했다.  다행히 내 아들은 엄마를 닮은 거 같다.

아기 엄마도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치과 의사다. 그래서 내 아들도 똑똑할 거라 난 기대한다. 그런데 조금 전 8시에 "어! 8시네!"를 외친 거다. 그러니 내 가슴이 뛰지 않겠는가?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다. 1시간이 흘러 9시다. 

"수현아~ 아빠에게 잠깐 와볼래? 이리 와봐!"

'수현아! 지금 몇 시야?"


아들은 시계를 본다. 그리고 내게 말한다.

"어~~~~~~~~~~~~~~~~~~~~~~~~ 8시네!!!!!!!!!!!!!!!!!"

...

...

...

내 아들은 천재가 아니었다.

10시에 또 물었다. "어 8시네!"  

11시에도 "어! 8시네!"


내 아들은 언제나 시간을 물어보면 대답한다. 

"어! 8시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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