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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작업하며 듣던 음악

by 이경



나는 원래 음악 글을 쓰던 사람인데, 최근 브런치에는 음악 글을 전혀 올리지 못했다. 요 며칠 브런치에 글을 마구 올리는 까닭은, 최근 3개월 내에 다섯 꼭지 이상 글을 올려야 브런치 책방에 책을 올릴 수 있다고 해서.

브런치 치사해... 보고 있나 브런치 담당자?

원고 작업하며 들었던 음악을 공유한다. 대부분 꿈과 관련된 음악.



1. 한영애 - <달>


모습이 변한다 해도 다른 이름 붙이지 마요.

그 모습 지금 초라해도 그를 보고 말하지 말아요.

언젠가 다가올 보름날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초승이든 그믐이든 반이든 보름이든. 다 같은 달이다. 내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낄 때 찾아 듣는 곡이다.

내가 지금은 별 볼일 없어도 위축되지 말라는 위로를 전해받는 기분이 들어 종종 찾아 듣는다. 전설적인 뮤지션 윤명운이 작사, 작곡했다.


나도 언젠가 보름이 될 거야. 나도 언젠가는 반짝반짝 빛날 거야. 그런 기분으로 들었다. 시기별로 내용이나 분량이 다르긴 했지만, 내가 투고했던 원고는 모두 내가 쓴 것. 출판사 편집자의 시각에 따라 나는 대부분 구름에 가려진 달과 같았지만, 보름이 되어 반짝일 수 있는 날을 기다렸다.


실제로 퇴근길 집으로 향할 때 환하게 빛나는 보름달이 보이면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나도 저렇게 반짝이며 빛날 수 있다면.


어느 날 집에 가는 길에 찍은 보름



2. 김윤아 - <꿈>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서운 거울이라 초라한 널 건조하게 비추지

너의 꿈은 때로 마지막 기대어 울 곳 가진 것 없는 너를 안아주는


간절히 원하는 건 이뤄진다고 이룬 이들은 웃으며 말하지

마치 너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듣고 많이 울컥했던 곡. 사람은 꿈 때문에 웃지만, 꿈 때문에 운다는 말을 좋아한다. 글을 쓰고 투고하며 꼭 내 기분이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간절하면 이뤄진다고 말하지만, 믿지 않는 말이다. 누군가는 별 노력 없이도 꿈을 이룰 수 있을 테고, 누군가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게 꿈 아닌가. 피그말리온 효과 같은 거 믿지 않았다.


정말 간절한 게 모두 이뤄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로또에 당첨되었겠지. 이뤄지지 않더라도, 이루기 힘들어도 내 꿈은 소중하다. 많이 울고 웃던 꿈. 나는 출간이라는 꿈을 이루었어도, 그게 꼭 간절해서 이루었다고 말하지 않을 거다. 그건 다른 이의 소중한 꿈을 비웃는 것과 같으니까.



3. 데이먼 - <겨우살이>(봄을 바란다)


눈이 녹으면 나도 녹아버릴까

서럽게 울기도 했지만

봄이 온다면 기꺼이 녹아 없어지리라


데이먼은 김현식 트리뷰트 앨범에 '더 딥 송'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할 수 없어>를 부르면서 각인된 보컬이다. 그 후에 데이먼, 이윤찬 등의 이름으로 활동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 선배임. 지난겨울에 많이 들었다. 꿈과 관련된 음악을 들어보면 겨울은 혹독하지만, 따뜻한 봄을 기다린다는 내용의 곡이 많다. 이 곡 역시 마찬가지다. 데이먼은 정통적인 방식으로 노래를 잘하는 보컬은 아니다. 김장훈 과랄까. 자신의 보컬 피치보다 높은음을 무리해서 내지르는 스타일인데, 그게 너무 듣기 좋다. 듣고서 많이 울컥했다.



4. 선우정아 - <생애>


나도 몰라 어디로 가는지


가장 최근에 나온 곡. 출간 작업 막바지에 많이 들었다. 역시나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는 인생, 봄을 기다린다는 내용. "나도 몰라 어디로 가는지"라는 첫 가사가 너무 좋았다.


처음 출판사에 보냈던 글은 음악 에세이였다. 1년 반이 지나 출간 작업되는 원고는 소설. 이쯤 되면 나도 내가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상태다. 그저 묵묵히 글 쓰고, 출판사에 보내다 보니 소설을 출간하게 되었다. 등단하지 않은 무명의 신인 글쟁이에겐 에세이 출간도 어렵겠지만, 사실 소설이 훨씬 더 어렵지 않을까. 글쓰기는 이토록 나를 알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르게 했다. 나도 몰라. 어디로 가는지.



5. James Blunt - <One Of The Brightest Star>


언젠가 너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날이 올 거야.

우린 항상 네가 밝은 별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대충 이런 가사다. 지난 여름날 버스를 타고 평창동에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 계약을 맺었다. 7월 9일의 일이었다. 계약을 마치고 계약서를 들고서 버스 안에서 이 곡을 들었다. 제임스 블런트가 나에게 너도 언젠가는 빛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내 글이 언젠가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날이 올 거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버스에서 조금 울었던 거 같기도 하고. 보기만 해도 닳아 없어진다면, 계약서는 이미 우주에서 소멸해버렸을 것이다. 계약서에서 나는 저작권자이자 갑으로 표기되어 있다. 살면서 내가 갑이 되어본 일이 있었던가. 갑을병정 이름 따위 중요한 게 아니지만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순간이었다.



6. 김광석 - <너에게>


나의 정원을 본 적이 있을까

국화와 장미 예쁜 사루비아가 끝없이 피어있는

언제든 그 문은 열려있고 그 향기는 널 부르고 있음을

넌 알고 있는지


나의 어릴 적 내 꿈만큼이나

아름다운 가을 하늘이랑


네가 그것들과 손잡고

고요한 달빛으로 내게 오면

내 여린 맘으로 피워낸 나의 사랑을

너에게 꺾어 줄게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노랫말의 고백송이다. 출간을 앞두고는 독자에게 책을 선보이는 일이 마치 고백하는 것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7월에 계약했어도 출판사는 연말까지 미리 출간 계획을 잡아 놓은 상황. 내 원고는 끼어든 입장이라 바로 작업이 들어갈 순 없었다. 9월부터 편집이 들어갔고 담당 편집자님은 가을 안에는 책이 나올 거라고 했다.


언제까지가 가을일까 생각했다.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기 전. 혹은 입동까지 일까. 책은 10월 말 경 나왔고 11월이면 출고가 된다. 김광석의 <너에게> 속 '아름다운 가을 하늘'은 그렇게 나에게 와 닿았다.


나도 가을이면 책이 나올 수 있다.

내 여린 맘으로 피워낸 나의 글을 독자에게 마음껏 꺾어 줄 수 있길 바라며.

그렇게 누군가에게 자꾸만 고백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7. 김현식의 음악들


방위산업체 할 때 구로역 애경 백화점 뒤에 한 일본식 주점이 있었다. 근 20년 전 이야기. 그곳에선 소주에 녹차 티백을 넣어 얼려주었는데 소주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그렇게 먹으니 먹을 만하더라.

거기 사장님이 김현식의 팬이었다. 가게 가면 항상 김현식 노래가 흘러나오고. 진짜 갈 때마다 줄창 흘러나오는 게 김현식 음악임.


내가 또 김현식을 좋아하고 해서 사장님한테 막 친한 척했다. 어이쿠 저도 김현식을 좋아하는데 블라블라 하면서. 저는 겨울만 되면 <눈 내리던 겨울밤> 듣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너무 블루지 하고 좋지 않나요. <바람인 줄 알았는데>가 양인자 선생 작사인데 가사 너무 좋지 않나요. 뭐, 이런 푼수 가득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사실 그 사장님 나보다 열댓 살은 많았는데, 갓 스물 먹은 애가 김현식 좋아한다고 떠벌리고 다니니 좋았을 거야. 내가 가면 막 서비스 안주 주고 예뻐하고 그랬으니까. 초딩 5년 때였나. 김현식 아플 때 <내 사랑 내 곁에>가 히트하고 했으니, 나는 어쩌면 김현식 세대는 아니고 나이에 비해 예전 음악을 좋아했던 셈인데 이렇게 김현식 덕에 공짜 안주도 얻어먹고 좋았지 뭐.


그리하여 방위산업체 다니는 동안 매년 11월 1일이면, 별일 없으면 그 집 가서 소주 까먹고 했다. 왜냐면 안 그래도 맨날 김현식 음악 틀어주는 그 술집에서 김현식 기일인 11월 1일엔 정말 그 어떤 음악도 아닌 김현식 음악만 틀어주거든.


방위산업체 때려치우고는 그 술집에 발길을 끊었지만 나는 여전히 매년 11월 1일이 되면 그 사장님 생각나면서 김현식 음악 찾아 듣고, 또 가끔은 유재하 음악도 꺼내 듣고 한다. 매년 김현식 음악 찾아 듣던 11월 1일이지만 올해부터는 다른 것을 기념하며 김현식의 음악을 들었다.


출간되는 책의 판권 일은 11월 1일이다.



8. Bruce Springsteen - <Independence Day>


노동자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나,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야. 집 나갈 거야. 독립할 거야. 굿바이. 하는 곡이다.


살면서 아버지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주변의 누군가에게 기대며 살아온 나약한 인간이다. 글쓰기가 좋았던 까닭은 글을 쓰는 행위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글을 쓰고 출판사에 보내 계약을 맺고 출간을 앞두면서 이 곡을 꺼내 들었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꿈에서나 들릴 듯한 멜로디의 곡이라는 거다. 내게는 꿈결 같은 곡이다.


글을 쓰고 출간을 하는 일은, 어쩌면 내 인생에 하나의 독립을. 또 자립을 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인디펜덴스 데이. 독립일이다.



9. Style Council - <It's a Very Deep Sea>


가만히 놔두어도 좋을 과거를 들추기 위해 잠수한다는 곡이다. 다이빙... 다이빙...


원고를 쓰면서 가장 많이 듣고 가장 많이 울었던 곡이다. 200번 넘게 들었을 듯. 실제로 스타일 카운슬의 이 곡을 들으며 많은 영감을 받았다. 나는 바로 며칠 전의 일부터 아주 오래전 기억이 닿는 한 먼 곳까지의 이야기를 들추어내 원고에 녹였다. 어쩌면 가만히 놔두어도 좋았을 이야기였을 텐데.


곡을 쓰고 노래한 영국의 폴 웰러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쌍팔년도에 나온 곡이다.


10. Don McLean - <Vincent>


살아생전 인정받지 못했던 빈센트 반 고흐. 이제야 당신을 이해한다는 돈 맥클린의 곡.

글을 쓰고 출판사에 보내는 일은 누군가 내 글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이해와 인정. 그 두 가지를 위해서 꾸준히 출판사에 글을 보냈다.


출간이 된다는 것은 편집자가 내 글을 이해해주고, 인정해주었다는 것.

참 많이 듣고, 참 많이 울었던 곡이다.

지금도,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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