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보도자료를 쓴 일이 몇 번 있다.
주로 음악 하는 지인들의 앨범 보도자료였다. 따로 원고료를 받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밥을 사주었고, 누군가는 고맙다는 말로 퉁치기도 했다. 나도 무언가를 바라고 쓴 일은 아니라서 아쉬움은 없다. 지인들의 보도자료 외에는 돈벌이로 보도자료를 써본 적은 없다. 보도자료의 특성 때문이다. 음악 앨범의 보도자료라 함은 불특정 다수에게 "이 음악이 끝내주게 좋으니 한번 들어보세요." 하는 거다. 단점을 가리고 장점만을 부각해야 한다.
보도자료를 쓰기 위해 앨범을 최소한 세 번 이상은 돌려 듣는다. 음악이란 게 아무리 좋아도 단점이 없을 수 없다. 지인의 음악을 소개하는 일이라 해도 뻔히 보이는 단점들을 포장해서 좋게 이야기하면, 글 쓰는 사람으로 또 음악 좋아하는 사람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음악 글을 써온 사람으로 신뢰를 잃을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도자료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아도 대부분은 거절하고 만다. 단점을 말할 수 없는 그 특성 때문에.
비단 음악뿐만 아니라 책의 보도자료 또한 마찬가지일 거다. 편집자가 애정을 갖고 편집한 책이라도 칭찬만을 늘어놓으려면 분명 창의력이 필요하겠지. 그저 백지 위 까만 텍스트에 불과했던 글을 책으로 만들고 팔기 위해서는 책이 갖고 있는 온갖 장점을 끌어 모아야 한다. 편집자는 저자와 같은 편. 글과 책의 빈틈을 얘기할 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편집자는 보도자료 쓰는 일이 책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도 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사람들은 책의 보도자료를 얼마나 신뢰할까. 사실 사람들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를 믿지 않을 확률이 높다. 또 그렇게 해야만 독자로서 자신의 취향과 안목을 키울 수 있을 테다. 나 역시 음악이든 책이든 보도자료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보도자료는 그저 뮤지션과 작가 소개 정도만 파악하는 용도로 쓰고, 본 알맹이는 스스로 듣고 본 후에 판단한다.
보도자료를 쓰던 나의 입장이 바뀐 것은 내 이름으로 된 책이 온라인 서점에 뜨고 나서부터다. 소개하는 사람에서 소개받는 사람이 되었다. 저자의 입장이 되어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보도자료를 받아 보는 일은 살아생전 처음 경험하는 일. 전에는 허투루 봤던 보도자료 한 자 한 자가 내 이야기이니, 아무래도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시 한 편집자가 썼던 글이 떠오른다. 그는 담당 편집자가 쓰는 보도자료는 저자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과 같다고 했다. 책을 만들기 위해 오가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마지막 힘을 모아 저자에게 안겨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보도자료 쓰는 일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즐겁다고도 했다. 보도자료는 이렇게 쓰는 이에게 스트레스와 즐거움을 선사한다.
딱히 명예욕이 있거나 유명세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살면서 에고 서치를 했을 때 읽을 게 많이 나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글을 쓰고 출간한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이름이나 작품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본다고 하니, 사람 다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누구라도 악플이나 악평은 반갑지 않겠지만.
나의 담당 편집자가 써준 보도자료는 어쩌면 내가 에고 서치를 하고 결과를 볼 때, 가장 먼저 등록되었을 '정보'일 테다. 책은 항상 저자나 독자보다 편집자가 먼저 보게 되니까. 편집자가 써준 보도자료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아직은 누구도 모른다. 부디 순수한 많은 독자들이 보도자료에 혹하여 조금이라도 책에 호감을 느껴주길 바랄 뿐이다.
앞서 '순수한 독자'라고 독자를 가리켜 우매한 듯 썼지만, 지갑을 열어 돈을 꺼내야만 하는 독자들은 저자나 편집자보다 훨씬 똑똑할 것이다. 조금 더 내 진심을 드러내자면, 부디 내 글이 보도자료에 쓰인 칭찬에 부족하지 않아, 독자에게 객관적인 지표가 될 수 있는 진짜 보도자료로 읽히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내 글이 보도자료에 부합하는 좋은 글로 읽히길 바란다.
보도자료를 써 준 담당 편집자에겐 고마움을,
또 보도자료를 읽어줄 불특정 독자들에게 역시 미리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ps. 온라인 서점에 뜨는 보도자료를 확인하면서, 서점마다 보도자료의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교보문고에 올라간 출판사 서평을 올려봅니다. 소설 <작가님? 작가님!>입니다.
출판사 서평 -
“글을 쓰는 일은 어쩌면 나약한 제 자신을 구원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한때는 뮤지션을 꿈꿨지만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작가 지망생의 애절하고 열렬한 작가 도전 이야기.
책을 안 읽는 세상이라지만, 책을 내려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아 보인다. 수백만 원, 많게는 천만 원이 넘는 책 쓰기 강의도 있단다. 그렇다면 내 이름으로 된 한 권의 책을 내는 건 쉬운 일일까?
아이 둘의 아빠이자 평범한 직장인으로 꿈 없이 살아가던 ‘이화경’에게 ‘작가’라는 꿈이 생겼다. 한때 음악인을 꿈꿨던 그답게 음악 에세이를 출간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투고한다. 그가 한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남긴 지 며칠. 한 작가가 그의 글을 구독하기 시작한다. 그 작가의 이름은 배은영, 그가 좋아하고 동경하는 작가였다. 작가 지망생 화경은 들뜬 마음으로 이미 세 권의 책을 낸 작가 배은영에게 댓글을 남기기 시작하는데……
과연 작가가 되려는 이화경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인생이라지만, 제 원고의 미래는 알고 싶네요.”
투고자의 마음, 편집자의 마음, 작가의 마음……
출판을 배경으로 한 서간체 메타소설.
작가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을 화자 이화경의 투고 이야기는 작가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이 될 것이다. 이화경은 “출판사에서 반려 메일 올 때 대부분 출간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얘길 해요. 이게 출판사 입장에서는 가장 정중하고 평범한 내용의 반려겠죠. 그런데 한 출판사에서는 원고가 소략한 면이 있다고 왔어요. 소략이 꼼꼼하지 못하고 엉성하다는 뜻이더라고요.” 하며 자신의 원고에 대한 평가를 곱씹는다. 그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대하지 않는 삶에는 실망도 없는 법이니까. 그러나 투고 회신 메일에 적힌 “글이 참 좋네요.”라는 짧은 문장 앞에 자꾸 가슴이 두근거리며 기대하게 되기도 한다.
이 소설은 원고를 대하는 편집자의 자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든다. 이화경은 편집자의 방향은 옳다던 작가 배은영의 말을 염두에 두며 출판사에서 편집해 온 자신의 원고를 본다. 그러나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문장이 삭제되기도 했고, 불필요해 보이는 문장이 추가되기도 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던 이야기를 쓴 것이었는데, 출판사 수정본에는 “다행이다, 울컥했다, 행복했다” 같은 말이 추가되어 있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담담하고 담백하게 사실만 얘기하려고 했던 그의 의도가 사라진 것이다. “‘다행이다, 울컥했다, 행복했다’는 내가 느낀 감정이 아니라 편집자나 독자가 가질 만한 감정이라고 보냈어요. 글쓴이의 감정선까지 치고 들어오는 편집이 저한테는 의미 없는 작업인 거 같다고요.” 그의 메일에 출판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는 ‘구원의 천사’(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속 소설가는 자신의 편집자를 ‘구원의 천사’라고 불렀다) 편집자를 만날 수 있을까?
첫 번째 책은 글쓰기 플랫폼에서 대상 받으면서 출간, 두 번째 책은 투고, 세 번째 책은 출판사 제안, 그리고 지금 네 번째 책을 쓰고 있는 작가 배은영. 직접적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나오진 않지만 화경의 댓글들에서 그녀의 캐릭터를 짐작할 수 있다. ‘글 쓰고 투고 안 하는 게 바보’라고 말하고 ‘근사한 풍경은 당신이 길 잃고 헤매기를 기다린다.’ 하는 그녀는 이미 앞서 길을 가고 있는 작가로서 작가 지망생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한다.
책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혹은 작가나 편집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책과 삶에 대한 따뜻한 이 책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