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의 꿈
한동안 불안 속에 살았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준비하는 시간이 그랬습니다. 글을 쓰는 누구라도 그럴 거예요. 혼자만의 글이 아닌, 남들도 같이 볼 수 있는 글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불안하겠죠. 나 같은 사람이 글을 써도 될까. 나 같은 사람이 출간의 꿈을 갖고 살아도 좋을까. 그렇게 글을 쓰는 시간에 불안해했습니다.
글을 보낼 때 또한 불안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여준다는 일이 그렇죠. 반응이 없으면 어쩌나. 반응이 있더라도 그게 악평으로 가득해서,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마음에 큰 생채기를 남기면 어쩌나. 글을 써서 세상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아니. 아예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생기지 않았을 불안을 사서 한 셈입니다.
출판사에 글을 보내고 좋은 일이 생기면 좋은 일이 생기는대로, 거절의 답신을 받으면 또 그대로 불안했습니다. 좋은 일이 지속되지 않고 방향을 꺾을까 불안했으며, 거절의 답신이 계속될까 봐 불안했습니다. 이 걱정은 적중했습니다. 계약 제안을 주었던 출판사가 한발 물러선 일도 있고, 한 편집자의 작업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아 계약 제안을 덮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을 몇 번 거치고는 불안에 대한 내성이 생길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더군요.
'출판의 신'이란 게 있을까요. 불안한 마음을 갖고서라도 꾸준히 투고를 하다 보니 이런저런 기회가 생기긴 합니다. 출판의 신이란 게 있다면, 보통은 뒤돌아 서서 눈길 한번 주지 않지만, 아주 가끔은 저를 향해 윙크를 날려주기도 합니다. 저는 가끔 웃고, 많이 울었습니다.
지난 여름날엔 한 출판사와 미팅을 했어요. 언덕길 골목에 위치한 예쁜 출판사였습니다. 등단하지 않은 무명 신인 글쟁이의 글을 좋게 봐준 게 무척 고마웠습니다. 저로서는 과분한 출판사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제 원고와 동일 장르로 꾸준히 책을 내는 출판사였으니까요. 미팅은 자연스레 계약까지 이루어졌어요.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선인세를 받으면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또 그렇지는 않더군요.
출판사에서는 연말까지의 출간 계획이 다 잡혀있고, 제 원고는 끼어들기를 한 입장입니다. 기다림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담당 편집자와 미팅을 하고 선인세로 큰돈을 받고서도 마음은 불안했습니다. 혹시 출판사 대표가 원고를 보고서는 계약을 취소하진 않을까. 혹시 출판사 마케터가 도무지 팔 용기가 생기지 않아 계약이 최소 되진 않을까.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며 살았습니다.
교정지를 받아 들 그 기다림의 시간이 불안했습니다. 이 불안한 마음을 담당 편집자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어요. 정말 제 원고가 책으로 나올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때 담당 편집자님은 저에게 이렇게 얘기해주었어요.
"작가님.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출판사 입장에서 이 원고를 세상에 내보이고 싶다, 고 결정한 것이고.
그것이 곧 담당 편집자와 출판사가 갖고 있는 그 원고와 작가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 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너무 작은 마음으로 하나하나 신경 쓰시진 않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담당 편집자님은 어린아이를 다루듯 저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 주었습니다.
'작은 마음'
저는 언제고 이 작은 마음을 떨쳐낼 수 있을까요.
교정지를 기다리면서는 또 다른 불안이 찾아옵니다. 작업이 늦어지면서, 혹시라도 내가 쓴 원고와 비슷한 주제의 책이 하루라도 세상에 먼저 나오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같은 제목의 책이 먼저 나와버리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책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비슷한 주제의 책은 얼마든지 있을 테고, 같은 제목의 책 역시 존재하겠지만 저는 불안했습니다. 제 원고가 누군가의 아류로 보일까 봐 불안했습니다.
교정지를 기다리는 그 몇 달의 시간 사이 김서령 작가가 쓴 <교정지>라는 글을 읽었어요. 김서령 작가는, 교정을 보는 일은 원고와 작별 인사를 나누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저 또한 교정지를 받으면 그러한 마음이 들까 봐 마음이 애틋해지기도 했는데요. 교정지를 빨리 받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서도, 막상 교정 작업할 때 원고와 작별을 나누는 마음이 들면 어쩌나 싶기도 했습니다. 저... 제가 쓴 원고와 정이 많이 들었거든요.
물론, 책이 나온다고 불안이 가실리 없을 거예요. 저의 작은 마음이 단숨에 덩치를 키우지는 못할 거예요. 이거 정말 저 같은 사람이 책을 내도 되는 걸까요. 이렇게 두려운 마음을 갖고 글을 써도 되는 걸까요.
책이 나온다면 얼마 간은 책이 서점에 누워있겠죠. 넓은 표지 전체가 사람들 눈에 가득 담기겠죠. 하지만 그 책은 시간이 지나 언젠가는 매대에서 서가로 향하는 운명을 맞이할 겁니다. 어떤 서점에서는 아예 책이 빠질지도 모르죠. 그때 저는 또 얼마나 마음 아파할까요.
책이 나오면 매일같이 온라인 서점에 들락날락 거리며, 판매지수를 살펴보곤 할 겁니다. 판매 지수가 올라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추어있거나 떨어지면 그때는 또 얼마나 마음 아파할까요. 책이 나와도 여전히 저는 불안해할 겁니다. 그때는 얼른 새로운 글을 쓰면 해결될까요. 그래야만 할 겁니다. 그래야만 해요.
9월부터 들어간 편집은 몇 차례 교정을 거치고, 며칠 전에는 표지 시안이 나왔습니다. 저의 불안했던 마음은 책 표지 시안을 보는 순간만큼은 조금씩 녹아들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정말 책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마음을 갖고, 불안해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
그런 사람의 책이 곧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준비하는 과정은 불안의 연속이었습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불안이에요.
글을 쓰고, 세상에 책이 나가 있는 그 모든 시간에 불안은 영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책이 나오면 좋기는 하겠죠.
좋기는 할 겁니다.
분명, 좋을 거예요.
책은,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지금 불안하면서도 좋은,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