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마흔이 되었다.
내가 마흔이라니.
내가.
마흔이라니.
실감 나지 않는다.
세상 살다 보면 실감 나지 않는 일들이 있다.
부모님과 줄곧 함께 살다가 서른이 되던 해, 결혼을 하고 출가를 했다. 처음으로 얻은 신혼집은 강서구 가양동의 한 복도식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 가장 구석진 곳에 집이 있었다. 결혼을 하고 한동안 퇴근길에 그 복도를 걸으면 문득 내가 결혼을 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두 해가 되어서는 아들 1호가 세상에 나왔다. 역시 퇴근길 집으로 가는 아파트 복도에서 문득 나에게 아이가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아들의 눈빛을 보고서는, 아 고것 참 신기하네. 너는 대체 어디에서 온 거니. 너는 대체 누구니. 하는 생각을 했다.
엄연히 현실세계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지만, 오랫동안 실감이 나지 않던 일들이다. 결혼 생활이 오래되고 아들 1호에 이어 아들 2호까지 보고서야 나는 내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다는 사실이 익숙해졌다.
올해 마흔이 된, 그러니까 나와 같은 81년생들을 모아 설문조사를 한 기사를 봤다. 40대에 이루고 싶은 소망으로 2.4%의 사람들이 "내 책을 써보고 싶다."라고 대답을 했단다.
내 책. 내가 쓴 책.
나는 30대의 마지막 해에 출판사에 투고를 하고 계약을 하고 책을 냈다. 2.4%의 사람들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조금은 앞서 이룬 것이다.
책이 나온 지 이제 두 달이 넘었지만 사실은 여전히 내가 쓴 책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도, 오프라인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내 책을 만날 수 있다는 일도 실감 나지 않는다. 나를 모르던 누군가가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는 것도 아직은 어색하고 생경한 일이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익숙해질 때쯤이면 내가 책을 내었다는 사실이 익숙해질까.
올해 마흔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내가 응했다면, 나 역시 2.4%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 책을 써보고 싶다."라고 얘기했을 것 같다. 첫 책이 아니라 두 번째 책이 되겠지마는.
어린 시절 40대의 나를 상상해본 적이 있었던가 떠올려봤다. 없다.
어렴풋이 그저 40대 정도가 되면 살아온 세월이 얼굴에 묻어나겠지, 라는.
그러니까 40대의 나는 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겠지, 하는 생각 정도만이 있었던 것 같다.
20대 초반 술집에 가면 날 모르던 누군가는 "음악 하게 생겼어요."라는 말을 종종 했다. 마흔이 된 지금의 내 얼굴은 어떠할까. 글을 쓰게 생긴 관상 따위 따로 정해진 바 없겠지만, 누군가 나를 볼 때 "아 이 사람. 글 괜찮게 쓰는 사람." 정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40대를 보내고 싶다.
2020년, 마흔, 출간.
실감 나지 않는 삶에서 선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하나라면,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소망이다.
40대에는 그렇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