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사실 작년) 나는 일산의 지인 댁에서 하루를 묵고서는 다음날 파주 출판도시에 들른 적이 있다. 출판도시 안에 있는 도서관 '지혜의 숲'에서 최승자 시인의 시집을 열어보고서는 그 첫 페이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시인의 직업적 능청이라니.
이 시절의 나는 데뷔작의 계약도 맺기 전이라, 앞이 막막하던 때이다. 아, 파주 출판도시의 누군가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삶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때, 눈에 들어온 능청스러운 글쓰기라니.
나는 도저히 생각지도 못할 경지다.
나는 끝까지 담백한 문체로 데뷔작을 출간해 보이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담백한 글로 독자들을 유혹하겠다. 뭐, 이런 생각으로 최승자 시인의 글을 읽었다.
며칠 전 같은 집에 사는 여성이 나에게 말했다. 요즘 SNS에서 올리는 내 글이 굉장히 능청을 떨고 있다고. 예의 그 담백함은 어디 갔냐고.
내가 요즘 쓰는 글에서 능청을 떨고 있는 것은 이처럼 같은 집에 사는 여성도 알고, 나도 알고, 지인들도 알고, 독자들도 알고 있겠지. 아아, 나는 어느새 이렇게 담백함을 놓치고 능청능청하고 있었구나. 그래도 내 마음의 디폴트 값은 '약간 우울'의 상태이고, 내 글의 디폴트 값은 '담백함'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당분간만 조금 더 능청스럽게 글을 쓰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삶에 따라 글의 온도가 변할지. 나는 어쩐지 삶에 따라 글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쓰고 있는 글에 따라 삶의 기운도 변하는 사람이다. SNS에서 쓰는 문체가 예전과 달라진 것은 요즘 쓰고 있는 글이 이런 식의 능청을 떨고 있기 때문이다.
데뷔작 출간 이후 나는 부쩍 능청을 떨게 되기도 했는데, 그러니까 책을 홍보하기 위해서는 다소간의 뻔뻔함이 필요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글 쓰는 사람이 직접 책을 홍보하는 일이 어쩐지 부끄럽고, 이렇게까지 홍보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담백한 글쓰기든, 능청스러운 글쓰기든, 누군가 내 글을 보고 관심을 보여준다면. 그리하여 책이 한 권이라도 더 팔린다면 나는 좋겠다. 나는 앞으로 조금만 더 능청스럽게 글을 쓰겠다. 능청능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