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손댈 것인가

by 이경



이은혜 <읽는 직업>의 '얼마나 손댈 것인가'라는 꼭지에는 작가 레이먼드 카버와 편집자 고든 리시의 일화를 언급하며, 글을 고치는 편집자 이야기가 나온다.


책을 쓴 이은혜 편집장은 글항아리 출판사에 적을 두고 있고, 글항아리는 문학동네의 임프린트로 시작하면서 지금도 몇몇 문학동네의 계열사와 같은 건물에서 근무를 하는 듯하다.


지난여름 파주 출판도시에 들렀던 나는 괜시리 글항아리 출판사가 있는 건물 근처에도 어슬렁거리면서, 아 이곳이 벽돌책에 일가견이 있는 글항아리군 흠흠, 했던 적도 있다.


여하튼 그런 연유로 이은혜 편집장은 가끔 계열사 편집자의 교정지를 엿볼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단다. 어느 날은 붉은 펜으로 심하게 얼룩져 원본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타출판사 편집자의 교정지를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원고가 많이 안 좋구나,

저렇게 많이 고쳐도 되는걸까. 라는.


이 이야기는 책 <읽는 직업>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아니고, 이은혜 편집장의 페북에 올라온 내용이다.




2018년 나는 음악 에세이를 출판사에 투고하고 T편집자를 만났다. 그는 계약을 했으면 좋겠다며 내 원고 두 꼭지를 샘플삼아 편집하여 보내주었는데, 내가 쓴 글과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여러 방식의 종결어미로 문장을 끝냈던 글은 대부분 ~~ 다.라는 어미로 수정되어 있었다. 아무리 봐도 내 글 같지가 않았고,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없었다.


당시 T편집자는 오랜 시간 교육서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다가 독립을 한 상태였는데, 이런 교육서를 만들던 습관이 고스란히 원고 수정에 묻어나는 듯했다. 나는 결국 T 편집자와 계약하지 않았고, T는 독립 1년 만에 폐업한 것으로 보인다. T의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출간된 책은 몇 개월 만에 절판이 되었고, 나는 그때 계약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편집자마다 꼭 고치고 싶은 단어나 표현이 있을 테다. <읽는 직업>을 쓴 이은혜 편집장은 세 번 이상의 중복 단어, 동어반복, 생략한 접속사(예- 때문에)를 보면 고치고 싶다고 썼다.




나는 스스로 작가로 부르긴 좀 민망하고 지금도 누군가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면 부끄럽다. 그럼에도 내게 쥐똥만큼의 작가정신이란 게 있다면, 그러니까 내가 최소한 작가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독창성을 발휘하고, 원문에 가깝게 책이 나올 만한 필력을 갖춰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면 그때는 작가라는 호칭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스로를 '천재 작가'라고 칭하는 글쓰기 아카데미의 이상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와서 생긴 기제다.


지난여름 세 번째 책을 맡은 편집자 S와의 미팅 자리에서 동어반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겹치는 이야기가 있으면 빼자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그러면서 나는 S에게 조심스레 여쭤보았다.


"편집자님, 지금 제 원고를 손 보신다고 가정할 때 빨간펜을 많이 쓰실까요?"


물론, 누구라도 글쟁이를 앞에 대놓고 "네, 끔찍한 원고네요. 아주 피바다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답하는 편집자는 없겠지만.



나는 S의 대답에 안도했다.




글을 지키려는 글쟁이와 글을 고치려는 편집자의 싸움은 건강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필요한 소모전처럼 보일 때도 있다.


나는 대체로 편집자의 의견에 따르는 편이다. 다만 그 수정 내용이 많지 않았으면 하는 욕심은 있다. 편집자가 손댈 게 많이 없는 그런 글을 쓰면, 그때는 스스로 작가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겠다는 생각.


내가 레이먼드 카버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 여러모로 싫었을 것 같다.


나는 며칠 전 세 번째 책의 퇴고 원고를 S에게 보냈고, 초조한 마음으로 피드백을 기다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책 <읽는 직업>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