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출간이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책 두 권을 내고, 세 번째 책을 준비하고 있지만 글쟁이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 궁금해서 알고는 싶은데, 알 수가 없을 때는 역시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해보는 것이 좋겠지. 요 며칠 휴머니스트 출판사 김학원 대표가 쓴 <편집자란 무엇인가>를 계속 읽고 있다.
<편집자란 무엇인가>는 확실히 편집자 지망생이나 편집자들이 보면 좋은 책인 듯하지만, 글쟁이가 보아도 도움이 되는 구석이 있다. 김학원 대표는 책에서 신간 기획안 한 장은 최소 일천만 원이며, 보통 3~4천만 원이라고 했다. 출판사의 출간 목록은 그 자체로 출판사를 나타내기 때문에, 어떤 이의 글을 책으로 만들지 말지 결정하는 일은 출판사의 가장 중요한 결정이라고도 했다.
글쟁이가 책 작업을 하면서 알 수 없는 것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편집자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출판사에서 출간 결정을 하는 회의 시간에는 어떤 이들이 참석하며, 어떤 대화가 오갈지를 떠올려 보는 것이다. 출판사의 대표가 참여할 것이고, 편집장이 참여할 것이고, 편집장 아래의 편집자들이 참여할 것이고, 홍보팀에서도 참여하겠지.
나는 원고 세편을 모두 출판사 투고로 출간하고 계약을 했다. 처음 투고 원고를 본 편집자는 최소 일천만 원이라는 신간 기획안을 작성하고는 출판사 사람들과 회의를 하겠지. 담당 편집자는 원고가 맘에 들어 기획안을 올렸겠으나, 출판사 마케터가 반대를 할 수 있을 테고, 어쩌면 편집자와 마케터 모두 원고를 맘에 들어하더라도 출판사 대표가 어깃장을 놓을 수도 있을 테다.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1인 출판사가 아닌 이상, 신간 기획을 하는 출판사의 회의실에서는 그야말로 심사숙고의 시간이 흐를 것이라는 상상이 든다.
글쟁이는 글을 써서 출판사에 보내기만 할 뿐, 출판사 직원은 아니라서 그런 회의 시간, 특히 출간을 결정하는 회의 시간에 어떤 대화가 오갈지는 알 수 없다. 회의실에 몰래카메라나 도청 장치라도 달아서 내가 쓴 글에 대해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지 몰래 훔쳐보고, 들어보고 싶지만 글쟁이는 결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인 것이다.
물론 투고 원고를 검토하는 담당자나 편집장에게 출간의 결정을 모두 맡기는 출판사도 분명 있을 테고, 때로는 심사숙고가 아닌 가볍게, 이거 한번 책으로 만들어볼까, 해서 출간이 되는 책들도 존재할 것이다. 결국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진리의 케바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내가 결코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상상할 때는 수많은 압박과 험지를 떠올린다. 투고 원고가 출판사의 최초 검토자 눈에 들어 신간 기획안으로 만들어지고, 이런저런 출판사 사람들의 의견을 통해 그 어렵다는 '신간 목록'에 더해졌을 거라고 여긴다. 나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그 험한 과정을 내가 쓴 글은 잘도 헤쳐나갔구나 싶을 때가 있다. 언제나 그렇듯 글은 글쓴이보다 나은 법이니까.
책을 읽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지만, 책을 내려는 사람들은 늘어나버린 기형적인 구조가 되어버린 지 오래. 한 해에 나오는 책이 6~8만 종 정도가 되니 때로는 책을 하나 내는 것이 별 거 아닌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내는 게 책인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걸까 싶을 때도 있다.
그러다가도 <편집자란 무엇인가> 같은 책을 읽고 나면, 나는 내가 책을 낸 것이 하나의 기적이었다고 다시 생각을 고쳐 먹는다. 신간 기획안 한장은 최소 일천만 원. 이 이야기는 책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최소 일천만 원의 자금이 든다는 얘기일 테니까. 내가 살면서 언제 나에게 (정확히는 내가 쓴 글에) 일천만 원이 넘는 돈을 투자받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연달아서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출간이 기적이라고 여기는 데에는 하나의 수치도 기반한다. 편집자 한 사람이 일 년에 보통 만들 수 있는 책은 여섯 권, 두어 달에 한 권 정도로 말한다. 한 편집자가 일 년에 겨우 여섯 작가의 책을 만드는 데 그중에 하나가 나라고 생각하면, 특히나 그 편집자가 국내서 뿐만 아니라 외서도 함께 작업하는 사람이라서, 1년에 겨우 두세 명의 국내 작가 글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내가 한 사람의 담당 편집자를 만나 두어 달 동안 책을 만드는 과정은 분명 기적에 가까운 것이다.
두 권의 책을 내고, 세 번째 책을 작업하는 지금까지도. 또 앞으로도 출판사에서 일해보지 않는 이상 글쟁이들은 알 수 없는 세계가 존재한다. 가끔은 글쟁이가 결코 알 수 없는 그런 세계를 상상하며 내가 쓴 글에 애정이 생기기도 하고, 글을 써온 일에 자부심을 얻기도 한다. 상상하지 않는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결과다.
어제는 다음 책의 담당 편집자에게서 PC 교정이 얼추 마무리되어간다는 연락을 받았다.
상상의 나래 끝에 기적은 현재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