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란 무엇인가>를 대충 훑고

by 이경
편집자란1.jpg <편집자란 무엇인가> 개정판



김학원 휴머니스트 출판사 대표가 쓴 <편집자란 무엇인가>는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고서 못 본 책인데 개정판이 나왔길래 주문했다.


헌사 페이지에는 얼마 전 생을 달리 한 어크로스 출판사의 故 이환희 편집자 추모 문구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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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머리말을 보면, 생각하고서 쓴 독자가 편집자 지망생, 1~5년차 편집자, 6~10년차 편집자란다. 10년 넘어가는 편집자는 대부분 아는 내용이라는 뜻일 테고... 그나저나 나는 편집자도 아니고, 편집자 지망생은 더더욱 아닌데 왜 이런 책을 보고 있나.


재밌으니까 보지 뭐. 책을 내고 싶어 하는, 특히 출판사 투고로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되도않는 작법서 말고, 편집자 관련 책을 보는 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라고 적을 알아야 이기는 법이고 편집자가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야 투고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물론 편집자가 글쟁이의 적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지. 투고하면서 가끔 웬수 같은 편집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내가 만나본 편집자들은 대부분 인성이 좋고, 나보다는 나은 사람들이었다.


좋은 편집자란 어떤 편집자인가... 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좋은 편집자는 무조건 내 글을 좋아해 주는 편집자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할 수 있는 존재 아닌가. 담당 편집자님들, 충성충성.


나는 안 좋아해 줘도 되니까, 내 글만이라도 좋아해 달라, 하는 심정이랄까. 글이란 보통은 글쟁이보단 나은 법이니까. 사실 편집자가 글만 좋아해 줘도 감지덕지지. 편집자에게 글 말고 나도 좀 좋아해 주세요! 하는 것은 과한 욕심이 아닌가 싶고.


책을 처음 받아 들고서는 머리말과 목차를 보고, 편집자가 만나고 싶은 저자 꼭지만 보는데 "정서적으로 안정된 저자. 매우 드물다."에서 울어야 되나 웃어야 되나 싶다. 일단 울면 억울하니까 웃자.

으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편집자란3.jpg 편집자가 만나고 싶어 하는 저자


정서적으로 안정된 글쟁이가 되고 싶지만 쉽지 않다. 글쟁이들 다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책을 아무 페이지나 펼쳐 보는데도 막 진상 저자들에 대해 나온다. 갑질 하고 꼰대질 하고 정신 나간 글쟁이들. 실제 이런 인간들이 있을까... 싶은데 그래 뭐 다들 정서적으로 불안한 인간들이니까.




어제 책을 받고서 집에 가서 <편집자란 무엇인가>를 대충 훑어보다가 인상적인 내용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저자 증정본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한국이 타국에 비해 증정본이 많다는 내용이었다. 책이 집에 있어서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뭐 영국은 5권, 일본은 2권이랬나. 암튼 10권 미만이었다. 국내는 보통 저자가 책을 내면 증정본으로 10부 정도를 받는 거 같다. 주변에 다른 분들은 책 내면 출판사로부터 얼마나 책을 증정받나 찾아보았는데 대체로 10권 정도인 듯. 나도 10권 이상 책을 받았는데, 주변에 친구 없는 아웃사이더라 아직도 책이 남아있다능.


나는 책을 조금 더 받은 거 같기도 한데, 얼굴이 좀 불쌍해 보여서, 없어 보여서 그런 건 아닐까 추정 중인데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나는 몹시 착하고 불쌍하게 생겨서 주변에서 좀 많이 챙겨주는 타입이다. 중딩 때는 체육선생님이 애들 줄 세우고 뚜드려 패다가 내 앞에서 딱 멈추기도 했다. 센세! 왜 그러셨죠! 제 얼굴이 그렇게 안쓰러웠나요! 센세!!!


글쟁이가 책 쓰면 출판사로부터 정가의 70% 정도 금액으로 책을 살 수 있는데, 나는 친구도 없고 내 책을 수백 권 살 수 있는 재력가도 아니라서 출판사에서 책 산 적은 없고, 책 필요하면 그냥 서점에서 사곤 한다. 그래야 뭐 서점도 먹고살고 배본사도 먹고살고 택배사도 먹고살고 위아더월드 할 거 아닌가 싶어서.


어쨌든 <편집자란 무엇인가> 보면서 아, 국내는 저자 증정본이 많은 편이구나. 정이 넘치는 나라라서 그릉가 싶기도 하고.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홍보할 테니 책 공짜로 더 보내달라는 진상 저자가 있다는 얘길 보면서, 염치없는 저자도 많구나 싶고.


인상적인 나머지 하나는 투고 원고를 검토하는 각국 편집자의 연차나 직급에 대한 내용. 대체적으로 연차가 낮은 편집자들이 투고 원고를 검토한다는 내용이었다. 국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은데 나는 희한하게도 투고 원고에 대해 좋은 피드백 주신 분들은 다들 업계에서 10년 넘은 편집자, 대표들이었다.


처음으로 글이 좋다고 연락 주신 분은 한 출판사 대표였는데 출판 경력 30년 넘은, 곧 환갑이 되는 분이었고, 그 후에도 연락을 준 편집자는 보통 10~20년 이상 경력의 편집자 분들이셨다. 아니, 투고 검토는 연차 낮은 편집자들이 많이 한다는데 연락은 왜 다 베테랑에게서 오는 겁니까.


연차가 오래된 편집자에게만 피드백을 받다 보니 혼자 막 생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두 가지 측면을 생각했다. 하나는 아, 경력이 오래된 편집자 눈에만 들만큼 내 글은 신선하구나!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드는 한편, 내 글이 혹시 매너리즘에 빠진 편집자 눈에만 드는 구닥다리인가! 하는 우려가 들었던 것. 연차가 오래된 편집자에게만 연락이 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던 건데, 지금에 와서 보면 그냥 뭐 진리의 케바케인 것이다.


다음에 나올 책 담당 편집자님과 미팅할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좀 묘해서 넌지시 질문을 해보았더랬다.


"편집자님, 굽실굽실, 제가 말이지요. 에... 이제 투고를 하면 꼭 연차 10년 이상의 편집자 분들에게만 피드백을 받거등요. 이건 왜 그런 걸까용." 라는 질문을 한 것인데, 사실 이 질문의 함의에는 "허허허 이보게 글쟁이 양반, 그만큼 자네 글이 탄탄하고 신선하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하는 칭찬을 받고 싶다 하는 얍삽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글쟁이들이 이렇게나 칭찬받길 좋아합니다. ㅇㅇ


근데 담당 편집자님은 내가 던진 질문에 활짝 웃으시며, "글쎄요. ^^ 왜 그럴까요. ^^" 라고 대답하신 것. 아하하하하. 그 후로는 그냥 쓸데없는 생각 안 하고, 아 뭐 그냥 진리의 케바케이겠지 생각한다. 연락 오는 편집자의 연차가 낮고 높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싶달까.


<편집자란 무엇인가>에서 편집자가 바라는 저자로, 편집자가 a를 얘기하면, a만 받아들이는 저자가 좋고, a를 얘기했는데 b, c, d까지 생각하는 과대망상 저자는 싫다는 글이 있었다. ㅋㅋㅋㅋㅋ 책 곳곳에 웃음 터지는 요소들이 있다능.


근데 보통의 글쟁이라면 누군가 a를 얘기할 때 b, c, d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많긴 할 듯. 나도 그렇고.

글쟁이들이 과대망상하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대망상 환자를 접하는 주변 사람들은 피곤하겠지만. ^_^


그래도 앞으론 편집자가 a를 얘기하면, a만 받아들여야지, 다짐해보는 것입니다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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