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본가에 들렀다. 엄마는 오래전에 내 방에 있던 낡은 책들을 내다 버리려고 박스에 넣어두었는데, 아들이라는 놈이 책을 내었으니, 훗날 기념이 될지 모르겠다며 버리려던 책들을 다시 책장으로 옮겨놓는 수고를 하셨단다. 근데 보았더니 그 책들, 내가 산 거 아니고 거의다 형이 사다 놓은 책이었다. 엄마, 엄마 아들은 어릴 때 책 많이 안 봤던 거 같아. 엄마 미안.
가끔 글쓰기라는 재능에 대해 생각한다. 생각 하나마나 답 없는 질문 같고, 뻘 생각이긴 한데, 그럼에도 자주 생각하는 질문이다. 재능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보면 '재주와 능력'으로 나오고 이것은 타고난 능력과 획득된 능력을 아울러 말한다고 쓰여있다. 그러면 '재주'와 '능력'이라는 단어도 사전에서 찾아봐야 할 텐데, 귀찮아. 아무튼 '재능' 자체가 타고난 것과 살면서 익히는 것을 다 아울러 말하는 거구나. 그럼 글쓰기는 타고나는 게 클까, 익히는 게 클까.
책 보다 음악을 가까이 두고 살아온 나는, 노래하는 데 있어서는 90% 이상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다고 확언할 수 있다. 타고난 재능은 다른 걸 말하는 건 아니고 음색이다.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목소리가 평범하면 매력이 없거든. 야, 인마 목소리는 노력으로 어떻게 고치기가 애매한 부분인데 너무한 거 아니냐?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만화 <슬램덩크> 보면 능남고 센터 변덕규를 가리켜 타고난 재능러로 이야기하는데, 그에게 타고난 재능은 다름 아닌 '키'다. 160cm로 클 사람이 우유 먹고 피똥 싸가며 노력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165cm 정도 될 수 있지 않을까. 180cm이 넘는 키는 보통은 분명 타고나는 거겠지. 안 먹어도 클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농구선수에게는 타고난 재능.
그러면 글쓰기는 어떨까. 나는 글쓰기도 타고난 재능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예술이나 운동 분야에 비해서는 후천적인 노력으로도 조금은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난 분명 타고난 글쟁이는 아닌 거 같고. 보통 유명한 작가들 보면 어릴 때부터 싹을 보이지 않던가.
학창 시절 학교에서 반기별로 간행물이 나왔는데 고교시절 나오던 책의 제목은 <아리수>였다. <아리수>를 보면 아해들이 에세이든 뭐든 이런저런 글을 써서 이름을 싣곤 했는데, 나는 초6 중3 고3 도합 12년 동안 그런 책자에 내 글을 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독후감 수상 전무. 백일장 수상 전무. 반장 전무. 부반장 전무. 12년 동안 착한 어린이상 한번 받았고, 학예부장 한번 했다. 한마디로 공부 머리가 영 아니올시다, 였던 것 이외다. 아이고, 부끄럽습니다.
책을 두 권 냈어도 여전히 인터넷에 '원고 투고', '출판사 미팅', '출간 계약', '편집자' 같은 키워드를 자주 검색해 본다. 그런 거 보면 재밌거든. 최근에 두 출간 작가의 글을 재밌게 읽었는데 한 분은 나와 마찬가지로 출판사에 소설을 투고해서 책을 내신 분이었다.
그런데 이분이 출판사와 계약하기 전부터 퇴고를 많이 했는데... 무려 18교까지 보았단다. 18교?! 18교!!! 아니, 같은 글 열 번만 봐도 오장육부 뒤틀리고 토할 거 같은데, 글을 18번 넘게 고쳤다는 말입니까?! 이 분의 일화를 보면서 아, 나는 글 수정을 너무 적게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번 글 쓰면 맞춤법 검사 돌려보고, 그 후로는 손 잘 안 댄다. 출판사와 계약 후에는 편집자 분이랑 같이 룰루랄라 교정하면서 글 고치긴 하는데, 18교를 보았다는 작가 분의 글을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글 많이 안 고치지? 혹시 나는 글쓰기를 타고났나? 싶은 거다. (아닙니다.)
다른 한 분은 투고로 에세이를 낸 분이었는데 교정하면서 편집자가 문단도 막 들어내고 글도 너무 많이 고쳐서 충격을 받으셨다고. 그래서 주변에 물어봤단다. 원래 편집자가 이렇게 글을 많이 고치는 거냐고. 그랬더니 다른 초보 작가들은 편집자들이 글을 너무 안 고쳐줘서 불만이라던데, 대체 뭐가 불만이냐는 투의 대답을 들으셨다고.
글 쓰면서 편집자 분이 칭찬 한 마디씩 해주면 자신감 쑥쑥 상승하고는 하는데, 다음 책 준비하면서는 편집자 분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작가님 원고는 크게 손볼 것이 없다." 나는 이 이야기 듣고서 기분이 되게 좋았는데, 막상 편집 들어가고는 내가 생각했던 거보다는 글이 많이 수정됐던 것이다. 편집자님 분명 손댈 거 많이 없는 원고라고 하셨는데, 혹시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 다른 저자들에 비해 유연하지 못한 걸까? 보통은 이것보다 훨씬 많이 교정이 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정말 글쓰기를 타고 난 걸까? 싶은 거다. (아닙니다.)
원고에 깊이 관여했던 편집자와 작가로는 보통 고든 리시와 레이먼드 카버를 이야기한다. 편집자 고든 리시는 레이먼드 카버의 글 절반을 덜어내고 상당 부분을 수정했다고. 훗날 레이먼드 카버는 편집 전의 글을 다시 출간하기도 했는데, 나라면 애초에 그렇게 많이 들어내고 수정되었다면 책 안 냈을 거 같다. 그렇게 많이 수정된 글이라면 그건 작가의 글이라기보다는 편집자의 글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아! 이런 생각을 하다니. 역시 나는 타고난 글쟁이인 걸까!(아닙니다)
여전히 작가는 무엇일까, 작가는 타고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는 가끔 내가 어쩌면 타고난 글쟁이가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어릴 때 그런 싹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타고난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면 만들어진 것일까! 싶으면서도 또 그것도 아닌 거 같고. 그럼 나는 뭐지. 나란 인간, 너는 뭡니까?
결국 이런 질문의 끝에서는 '나란 인간은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으로 귀결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야말로 답이 없는 뻘 생각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글쓰기 재능도 진리의 케바케가 아니겠는가 하는 뭐 그렇고 그런 뻔하디 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