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었다. 남부지방으로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는 어느 날이었다.
오후에 점심 먹고 공원을 좀 걷는데 소나기가 내렸다. 예전 같으면 어지간한 비는 맞아가며 뛰었을 텐데, 요즘에는 감기라도 걸릴까 싶어 공원에 있는 정자에 앉아 잠시 비를 피하기로 했다.
정자에는 나와 노인 한 사람과 대학생 청년 세명이 있었다. 노인은 소나기가 내리기 전부터 정자에 앉아있었다. 청년 세명은 평소 할머니들이 게이트볼을 치는 곳에서 캐치볼을 하다가 소나기가 내리자 나와 같이 비를 피하러 정자에 앉은 것 같았다.
청년 셋은 건강해 보였고, 특히 캐치볼을 할 때 포수 역할을 하던 청년 하나는 아예 상의를 벗고선 공을 받았다. 내가 공원에서 상의를 벗거나 배를 까고 다니면 마누라는 아마도 중국인 같다고, 당장 옷 입으라며 나무랐을 텐데. (이걸 보고 중국인 혐오 멘트 아니냐고 따질 사람은 없겠지. 울 마누라는 중국 유학생 출신입니다만...)
청년 셋과 등을 맞대고 앉았더니 원치 않아도 그들의 대화가 들렸다. 셋은 아무래도 같은 고등학교 출신으로 각자 다른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 같았다. 그들에게는 '야구'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듯했다.
"아, 진짜 야구는 뭔가 심장을 뛰게 하는 게 있다니까. 이거 한번 해보면 계속 생각난다니까." 라며 야구 예찬론을 보인 학생이 있는가 하면.
"우리 학교에는 야구부 있어서 나 가입할라고."
"진짜? 너네 학교 야구부 있어? 야, 나도 너네 야구부 가입하면 안 되냐?"
"야구부 가입? 그럼 우리 학교 들어와야 돼. 너 우리 학교 입학해야 돼."
"야구부 때문에 학교 옮겨야 하나? 근데 너 학교 어디지?"
하는 젊은 시절 특유의 머저리 같은, 몹시 부러운 대화들이 들렸다.
"야, 이렇게 연습하는 거보다 실전이 최고라니까. 무조건 실전 뛰어보면 도움이 돼. 근데 나중에 우리가 수비할 때 만루 위기도 맞을까?"
"존나 병살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냥 병살도 아니고, 존나 병살?"
라며, 그들은 미래에 있을 위기와 극복까지도 논하고선 낄낄 웃었다.
청년 셋의 야구 수다는 그 후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정자 바닥 위로는 어느새 자그마한 애벌레 하나가 나타나 슬금슬금 기어 다니고 있었다. 비가 그치진 않았지만, 애벌레와 함께 있고 싶진 않아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자리에 일어나서 등을 돌리곤 목소리로만 듣던 청년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청년들의 수다는 멈출 줄 몰랐고, 청년들 옆에 앉아 있던 노인은 고개를 숙인 채 단 한마디의 말도 없었다.
남부지방으로 장마가 시작된다던 어느 비 내리던 오후의 공원.
청춘들은 신나 보였고, 노인은 쓸쓸해 보였다.
오후에는 그렇게 비가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