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빈트 부흐홀츠의 신간을 보고.
오늘 알라딘에는 어떠한 책이 새로 들어왔나, 살피는데 크빈트 부흐홀츠의 책이 나왔다. 뭔가 의리로 하나 사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신간 <시간의 의미> 표지가 익숙하여 기억을 떠올려 보니 몇 해 전 문동에서 나온 심보선 시인의 산문집과 같은 그림이다.
같은 그림에도 한쪽은 흰 글씨, 한쪽은 검은 글씨를 쓴 게 재밌다. 사람은 자기의 영역이 아닌 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동경하기도 하는 듯한데, 나는 특히나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책을 세 권 쓰고 냈지만 그 과정은 대개 지난하고, 초조하고, 두렵고, 불안하고 그렇다. 그 과정에서 온전히 딱 하루 즐거운 날을 꼽으라면 책의 표지를 만나는 날이다. 나는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상상이 결과물로 만들어지는 '표지'를 만나고 싶어서라도 또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다. 거기엔 어쩔 수 없는 편집자의 애정과 고민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디자인 등 시각적인 능력을 요하는 재능이 젬병인 나는 내가 쓴 글을 읽고서도 거기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상상하지 못한다.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서로의 상상력을 더해 하나의 표지를 만들어 낼 때, 편집자는 몇 번이나 내가 쓴 글을 따라가, 그 끝에서 가장 어울리는 이미지를 떠올릴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많이 고민했겠구나, 하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크빈트 부흐홀츠는 편집자 S가 <난생처음 내 책>의 표지로 염두에 둔다며 알려준 작가였다. 난생처음 시리즈의 전작들은 모두 국내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이 표지로 쓰였던 터라, 나는 어떤 작가님이 그림을 그려주실까 상상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독일 작가의 그림을 표지로 쓴다고 하였을 때, 조금은 당황스러웠던 기억이다.
책이 나오고 나서 나는 농담 삼아, 바다 건너온 표지라고, 현대미술을 좋아하는 분들에겐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쓸 수 있는 책이라고, 홍보했다.
아마도 까치발을 하고서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소년과 책탑, 보름과 거북이의 모습에서 나는 작가 지망생과 작가, 그리고 편집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책을 내지 않았더라면, 편집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쩌면 크빈트 부흐홀츠라는 작가를 평생 알지 못한 채 지냈을지도 모르겠다.
크빈트 부흐홀츠의 신간 <시간의 의미>가 나왔고, 나는 세 번째 책의 표지를 만났던, 그때의 시간의 의미를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