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고 산책길에 만난 표어.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뒤늦게, 어머 이건 사진 찍어야 돼, 하고서 찰칵찰칵 내 맘속에 저장. '안전하지 않으면, 작업하지 않는다'의 본뜻은 '우리는 안전하다.' 일 테고, 표어 앞에 가만히 서서,
그렇담 '작업하지 않으면 안전하지 않다.'는 참일까, 아닐까를 따져보고, 작업하고 있다면 안전하다는 걸까, 아닐까를 따져본다. 머릿속에 문장 여러 개가 들어와서, 문장의 오류를 읽어나가는 건데...
아, 나는 비싼 밥 처먹고 왜 길바닥에서 이런 걸 생각하고 있나. 그것은 제가 타고난 글쟁이여서가 아닐런지, 뭐 아님 말고요.
강한 부정은 긍정이고, 이중부정도 긍정이라 배웠다. 어린 시절 나를 괴롭혔던 것은 겉과 속이 다른 단어를 접했을 때다. 그러니까 어려서부터 흑인음악을 즐겨 들어서 유독 그런 괴로움을 일찍 접한 거 같다. 최근 읽고 있는 흑인음악 관련 책에서 흑인들은 유독 이중부정을 즐겨 쓰며, 단어의 뜻을 전복시켜 쓰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가령 마이클 잭슨이 부른 <Bad>의 배드는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아주 좋은 것이라는 해석이다.
비슷한 단어로는 뭐 sick 같은 게 있겠다. 누군가 'i'm sick' 하면, 아, 저 사람은 아픈 게 아니라, 스스로 멋지다고 말하는 거구나, 할 수 있겠다. 우리말로는 '미쳤다' 정도가 비슷하려나. 와, 대박 너 완전 미쳤음. 이런 식으로.
흑인들이 실제 단어의 겉과 속을 달리 말하는 게, 그들이 살아온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처럼 영어가 서투른 인간들은 이런 단어들을 만나면 괴로운 것이다. 그중 오랜 시간 이해가 안 갔던 단어가 'Doggone'이었다. 마이클 잭슨과 폴 메카트니가 함께 부른 감미로운 곡인데 한마디로 '저 여자 내 거야, 너 시간낭비 하지 마' 하는 곡이다.
흑인과 백인, 미국과 영국 대표가 붙어서 한 여자를 두고 싸우는 곡이니 그 자체로 어마무시한 곡 아닌가.
이 곡에서 'the doggone girl is mine'이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나는 오랜 시간, 아니 왜 서로 가지려고 싸워대는 여자를 두고 doggone이라고 표현하는 걸까 싶었다. Doggone은 딱 보기만 해도 뭔가 부정의 느낌이 전해지는 단어 아닌가 싶었으므로. 실제 사전을 봐서도 부정의 뜻이 담긴 단어인 것이다. '빌어먹을, 망할' 뭐 그런 뜻.
누군가는 삶의 좌우명이 '개 가까이 가지 말자'라고 했다. 개와 같이 달리기를 했을 때, 개를 이기면 개보다 더한 놈이 되고, 개보다 느리면 개보다 못한 놈이 되고, 개와 비슷하면 개 같은 놈이 된다고. 아주 어린 시절 한 코미디언의 말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다지 재미는 없는 농이었다. 개의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여하튼 한국에서는 개를 먹기도 하고, 표현 앞에 개가 붙으면 뭔가 부정의 이미지가 강해지는데, 미국은 그렇지 않은 걸까... 마이클 잭슨과 폴은 왜 여자를 두고 doggone이라고 부른 걸까... 오랜 시간 고민했던 것인데, 결론은 이거 뭐 그냥 흑인 특유의 단어 뜻 전복이었던 거다.
마이클과 폴이 부른 'the doggone girl is mine'의 뜻은 '저 빌어먹을 여자 내 거야'가 아니라 '저 멋진 여자 내 거야'라는 뜻이라고 보면 되겠다.
강한 부정은 긍정인 것도 알겠고, 이중부정도 긍정이라는 걸 알겠는데, 겉과 속이 다른 단어를 만나면 이게 당최 긍정인지 부정인지 헷갈린다.
그리고 이건 사람도 마찬가지다. 삶이 어려운 까닭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데, 특히나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나는 그 앞에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전하지 않으면, 작업하지 않는다'라는 표어를 보고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른 나는 역시 타고난 글쟁이가 아닐까. 아님 말고.
I'm bad, I'm sick, i'm ill.
내가 날 가리켜 쓰는 이 문장의 뜻을, 대부분은 알 수 없다.
나 또한 때론 겉과 속이 몹시 다르므로.
아무튼 산책길 공사장에서는 공사 소리가 한창이었고, 그걸 보아 현장은 오늘도 안전한 하루를 보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