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리기의 예술

by 이경


되살.jpg


어제 편집자 한 분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었다. 어찌어찌하다가 페친 신청을 받은 건데, 몇 년 전 가끔 몰래몰래 계정에 찾아가 게시물을 훔쳐보던 분이라서 감회가 새롭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편집자 계정도 맘 편하게 팔로잉하게 되는데, 페이스북에서는 왠지 편집자 분에게 친구 신청하기가 어렵다. 뭔가 '저는 글 쓰는 사람인데 저를 좀 주목해주세요오오오 징징징징' 하는 느낌이라, 아아, 이분이랑 페북 친구 하고 싶은데, 하는 편집자가 생긴다면 미리 여쭤보고 친구 신청을 하는 편이다. 제가 이렇게나 소심합니다.


어제 페친을 맺은 분은 유유출판사에서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을 내신 정상태 편집자다. 책을 내야지, 출판사에 투고해야지, 생각하고 보았던 책 중에 가장 콤팩트 하면서도 유익해서, 비슷한 처지의 작가 지망생 분들에겐 추천도 많이 했던 책이다.


내책.jpg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은 150페이지가 안 되는 얇은 책으로 하루면 완독 가능한 책이니, 이 책을 시작으로 뭔가 심화과정에 들어가고 싶다, 하는 분들은 이어서 양춘미의 <출판사 에디터가 알려주는 책쓰기 기술>을 보면 좋겠다.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이 좋았던 까닭은 출판사 투고로 책을 내기 위한 기본 프로세스 파악 외에, 책 말미에 붙은 관련 추천 책 리스트 때문이었다. 실제로 나는 이 책을 통해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소설>, <악평>, <작가의 시작>, <편집자란 무엇인가>를 보았다.


그러니 내가 작가 지망생의 분투기를 그렸던 데뷔작 <작가님? 작가님!>을 쓰는 데에는 정상태 편집자의 책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두 번째 책 <힘 빼고 스윙스윙 랄랄라>라는 골프 에세이를 쓸 때는 이런 운동 에세이가 읽힐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이 시기에 <농구 좋아하세요?>라는 에세이가 출간되어, 농구도 나오는데 골프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원고를 쓰기도 했다. 물론 <농구 좋아하세요?>는 손대범이라는 농구 쪽에서는 유명하고 유능한 분이 쓰신 책이긴 하지만. 어쨌든 <농구 좋아하세요?>의 담당 편집자가 바로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을 쓴 정상태 편집자였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다.


그 정상태 편집자가 독립을 하신 것 같다. 벌써 두 번째 책이 나왔는데 다이애나 애실의 <되살리기의 예술>이다. 2006년 열린책들에서 <그대로 두기>라는 제목으로 나왔다가 절판 후 새로운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다이애나 애실은 50년간 편집자로 살다가 101세의 일기로 생을 달리했다는데, 이 책을 쓰게 되었다는 계기가 재밌다.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모두 사라지겠구나, 커다란 지우개가 한 번 지나가듯 지워지겠구나 싶어 책을 쓰게 되었다고. 이 문장을 보고 커다란 지우개가 내 머리를 훑고 지나 가는 모습이 상상되었으니 다이애나 애실은 편집자뿐만 아니라, 작가로서의 재능도 뛰어났던 거 같다.


위의 문장을 읽으면서는 빈지노의 '오늘 밤이 만약 내게 주어진 돛대와 같다면 what should i do with this? Mmmm maybe 지나온 나날들을 시원하게 훑겠지' 하는 가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빈지노 - If I Die Tomorrow 中)


책의 원제인 <STET>는 교정지에서 '되살리다'라는 뜻으로 책에서는 '生'으로 번역했다. 실제 나는 편집자 분과 주고받은 교정지에서 몇 차례 '生'을 만났는데, 아 편집자님이 이 부분에서 고민을 하셨구나, 결국엔 내가 썼던 내용 그대로 두기로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고맙고 감동적인 마음이 들기도 했다.


책은 오늘 아침 사무실로 와서, 이제 추천사와 본문 몇 페이지만 읽어보았다. 편집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 그리고 편집자와 작가의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들에겐 재밌게 읽힐 수 있겠다.


책의 추천사는 글항아리 출판사 이은혜 편집장님과 문학동네 강윤정 편집자님이 쓰셨는데, 추천사만 봐도 재밌습니다. 네네. 그럼 저는 책을 읽고서 그때 다시 감상문을 남기든 독후감을 남기든, 오늘은 이만 총총.


글을 다 쓰고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을 후루룩 들춰보는데 책에 '다이애나 애실'의 문장이 쓰였다. 아, 정상태 편집자 (이제는 출판사 대표님)는 원래 다이애나 애실을 좋아했었나 보다, 싶다. 1인 출판사로 독립하셨으니 이제 자신이 좋아하는 책 많이 내시고, 출판사가 번창할 수 있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겉과 속이 다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