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가 산책 삼아 좀 걷는데 한 아파트 나무 앞에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 보였다. 시인의 시 뒤에 있는 나무가 대추나무인지 무슨 나무인지는 모르겠다. 차가운 도시 남자라 나무를 봐도 구분 못한다. 나무도 모르고 시도 잘 모르지만 <대추 한 알>은 좋아하는 시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크게 두 가지가 아닐까.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데에 있어서의 아름다운 인고의 시간.
-나머지 하나는 인과관계.
전자로 해석하면 아름다움이 가득하지만 후자로 받아들이면 아름다움만 있지는 않다. 인과관계라는 건 원인에 따라서든 결과에 따라서든 때론 서글퍼지기도 하니까. 어쨌든 대추가 절로 붉어질리는 없단다.
SNS를 하다가 불광문고가 25년 만에 폐점을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러니까 사반세기 역사의 서점이 절로 폐점을 할 리는 없다. 거기엔 임대료 상승, 인건비 상승,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온라인 서점의 발달, 대형서점의 지역 진출 등이 맞물렸을 거다. 서글픈 인과관계다.
불광문고를 자주 가본 것은 아니지만 갈 때마다 큐레이션이 좋았던 기억이다. 지난 3월에는 세 번째 책 <난생처음 내 책>을 내고서 혹시 책이 입고됐을까 싶어 들른 적이 있는데, 문학이론 - 글쓰기, 책읽기 매대의 좋은 자리에 여러 권이 놓여있어서 감사했던 기억이다. 다른 서점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편집/번역 관련 서가도 좋았다.
가끔 외국에 있는 오랜 역사의 서점이 폐점 위기에 놓였다가, 서점에 추억을 갖고 있는 손님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주어 폐점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기사를 보곤 하는데, 불광문고에 그런 기적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 정신 나간 재벌 하나가 나타나서 책을 옴팡 사들이거나, 임대료를 대신 내주거나 하지 않는 이상.
내가 불광동 주민이라면 불광문고가 되게 자랑스러웠을 거 같다. 지역주민도 아닌데 불광문고의 폐점 소식은 아쉽다. 다음 달 초까지 영업을 한다는데 그전에 한 번 들릴 수 있으면 좋겠다. SNS에 뻘글 하나 쓰는 데에도 이게 절로 쓰일 리 없다. 여기엔 읽은 책 몇 권, 생각 몇 개, 고민 몇 개, 타이핑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의 글을 쓰는 데에는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과 불광문고의 폐점 소식이 있었다.
날이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