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바이브를 만끽하며
지난 주말 토요일, 처가에 갔다가 산책을 나섭니다. 아들 1호 2호, 와이팡 모두 동행을 거부하여, 나 홀로 외로이 타지 인천 산책. 전형적 사십 대 한남 국밥충은 자유를 찾아 간만에 인천 바이브를 느껴봅니다. 인천 바이브가 뭐냐면, 뭐 그런 게 있어요. 서울과는 뭔가 묘하게 다른, 인천 특유의...
처가에서 젤 가까운 독립서점을 검색해보니, 2.8km 거리에 '연꽃 빌라'라는 서점이. 그래! 결심했어! 산책의 목표는 연꽃 빌라다! 근데 구글맵 켜고 도보로 길 찾아보니까 경로를 찾을 수 없다고... 왜죠? 저 서울 사람이라 길 잃으면 곤란한데영.
처가에서 연꽃 빌라 가는 길엔 고가 도로가 있어서 경인고속도로를 건너야 합니다. 그래서 구글맵이 헤매었는가. 도보로 갈 수 있겠지요?
첫 번째 난코스로 가파른 오르막을 만납니다. 인생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지요. 근데 오르막 다 오르면 무릎 연골이 다 닳아서 내리막도 힘든 것, 그것이 바로 인생. 라이프 이즈 소 하드! 쏘 뻐킹 하드!!
계단을 오르기 전 다리 밑에서 철갑을 두른 용사를 만납니다. 깜짝이야. 여기서 노숙 중이신가 봐요. 아저씨 이런 데서 자면 얼어 죽어요, 입 돌아가요, 일어나세요 용사여... 말을 걸어도 철갑을 두른 용사는 묵묵부답. 녹이 슨 철갑의 용사는 왜 이런 곳에서 누워 지내는가. 사연이 궁금합니다. 뭔가 인천 바이브가 물씬 풍기네요.
고가 다리를 넘어, 경인 고속도로를 지나오니 사료공장이? 사료를 만드는 곳일까요? 공장과 아파트가 겹쳐 보이니 뭔가 디스토피아 느낌이 납니다.
인천 스카이캐슬도 보이고, 홍다방도 보이고. 옆에는 '유린당한 약방'이 있길래, 흐음 약방 이름이 참 오묘하다, 약방 주인에게 기구한 사연이 있는가, 했는데 '유림당 한약방'이었습니다. 암 쏘 쏘리 유림당 한약방...
여기가 굴포천 공원인가, 그랬던 거 같습니다. 길 이름이 백세누리길이군요. 백세누리길 걸으면 백세 살 수 있나영? 어느 날 어린아이가 한 할머니에게, 할머니 오래 사셔요, 100세까지 사셔요, 했는데 할머니가 "나 102살인데?" 했다는 뭐 그런 우스개 소리도 생각나고 그렇네요.
굴포천. 여긴 예쁘네요. 분수도 나오고. 나중에 아들 원투 끌고 와얄듯.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잠자리도 엄청 많습니다. 인천에 있는 잠자리들 다들 굴포천에서 정모라도 여는 걸까요. 가끔 결혼식장 가면 사회자가 "오늘의 신랑이 가장 좋아하는 곤충이 뭔지 아십니까? 잠자리라고 합니다. 하하핫 하하하하핫." 하는 더럽게 재미없고 썰렁한 유머를 치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런 유머를 볼 때마다 저는 아주 가슴이 철렁철렁합니다. 예비 신랑 신부들은 그런 유머감각을 가진 이에게 절대 사회를 맡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목적지인 독립서점 연꽃 빌라가 가까워집니다. 근처 NH 농협 은행 앞에는 커다란 돌덩이가 있습니다. 이 돌덩이의 의미는 무엇일까. 몰라요 몰라.
아 이거, 혹시, 대형 맷돌일까요? 어이가 없네.
디기리디기리디기리디기리디기리디기리디기리디기리디기리디기리디기리디기리디기리나는프리스타일엠씨이제부터내가랩을한다모두다내랩을들어봐난모든리듬을갖고놀수있는디기리라한다디기리디기리디기리.
아, 그냥 디기리라는 단어를 만나니까 예전 허니 패밀리의 디기리 랩 가사를 적어보았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디기리는 Blackstreet가 부른 <No Diggity>입니다. 아주 명곡이죠.
암튼 디기리, 여기는 파스타집인가 그랬던 거 같습니다. 빌라촌 1층에 이런 카페 식당들이 모였는데 이 길을 부평 청리단 길이라고 부르나 봅니다? 이 동네 젊은이들 다 이곳에 모인 듯. 서울에서 온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한남 국밥충은 이방인의 기분이 듭니다. 암 쏘 론리.
청리단길, 벌거벗은 여인 옆에서 말리고 있는 붉은 고추. 역시나 뭔가 오묘한 분위기입니다. 뭐랄까. 조금 예술적인 느낌인 것 같으면서도 뭔가 퇴폐적인 느낌인 것 같기도 하고... 음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조금만 더 걸으면 오늘의 산책 목적지인 인천 독립서점 연꽃 빌라가!!
이곳이 바로 오늘의 목적지!! 연! 꽃! 빌!... 음 근데 문을 닫았...? 네? 왜죠?
저기요? 분명 목요일 휴무라고 알고 왔는뎅. 구글맵에 쳐보니까 영업 중이라고 되어 있던뎅... 뒤늦게 연꽃 빌라 앞에서 연꽃 빌라 인스타 계정에 들어가 보니 당분간 둘째 넷째 토요일도 휴무라고... 흑.
서울에서 온 외로운 아재 이방인은 인천 독립서점을 볼 수 있을까요?...
인천 독립서점 '연꽃 빌라'가 휴무라서 어쩔까, 하다가 주변에 다른 서점을 둘러보니 몇 군데가 나옵니다. 그중에 가장 괜찮아 보이는 곳을 향해 고고고. 그곳은 바로, 북! 극! 서! 점!
여기가 '신트리공원'인가. 처음에 공원에 있는 백마들을 보고, 뭐여 이거, 아 난다 난다 인천 바이브... 했는데 이 백마들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뭐 아무 이유 없이 백마들이 있는 건 아닐 테고 어떤 사연이 있겠죠? 전쟁 때 백마부대가 여기서 승리를 했다거나.
암튼 말들은 달리고 싶다 다그닥다그닥. 나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탁탁타다다닥.
북극서점은 한 초등학교를 지나 주택가가 있는 골목길에 있었는데요. 처음엔 간판이 잘 안 보여서 지나쳤다가 구글맵을 보고 유턴하였더니 교회 간판 아래에 북극서점 간판이 보입니다. 교회 이름은 함께 이루는 교회인데, 간판 크기는 교회가 혼자 너무 압도하는 거 아닌가... 전혀 함께 이루지 않고 있지 않은가... 지쟈스여...
북극서점은 건물 2층에 있었는데 두터운 철문으로 되어있었습니다. 약간 열어보기 무서운 느낌이랄까요.
이거, 정말 이런 곳에 서점이 있는 게 맞을까. 문 열면 막 안에서 문신한 아저씨가 담배 뻑뻑 피면서, 아저씨 책 사러 왔어? 드루와드루와 하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일단 왔으니 문을 열어봅니다. 끼이이이익.
가게 들어갔더니 사장님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굉장히 반갑게 맞아주시고, 안에는 손님이 한 분 계셨어영. 구경하는 동안 먼저 와계시던 손님이 나가셨는데 사장님이 굿바이 인사도 너무 친절하게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하셔서 좀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장님한테 사진 찍어도 되냐고 여쭈었더니 너무나 흔쾌히 많~~~이 찍으시라고. 그래서 많이 찍었습니다. 내 맘속에 저장 찰칵찰칵.
가게 들어가면 자개장 위에 마이클 잭슨도 보이고 스머프도 보이고 인천 지역을 노래한 컴필 앨범도 보이고 카세트테이프도 보이고, 고스트 버스터즈도 보이고, 비디오테이프도 보이고 그렇습니다.
한쪽에는 중고책들 공간이 있었는데, 책의 반값 혹은 희귀한 책은 정가보다 더 비싸다는 사장님 설명. <사진으로 보는 한국 문단 80년> 책을 펼쳐 봤는데, 완전 젊은 시절의 이외수 작가, 故최인호 작가 사진이 따악. 근데 저는 이상하게 중고책을 만지면 몸에서 가려움을 느낍니다. 제가 뭐 엄청 깔끔하고 그런 인간은 아닙니다만. 하하핫!
타자기도 보이고요. 탁탁타다닥, 두드리고 싶네요. 북극서점은 기존 일반 출판 서적과 독립출판 서적이 한 8 : 2 정도로 나눠진 거 같아요. 독립출판물은 따로 큐레이션 되어있고요.
사장님이 구경하면서 혹시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라고 하셔서, 사장님 혹시 이경이라는 작자의 <난생처음 내 책> 입고 계획은 없으십니까? 하고 주접을 떨고 싶었지만 참아봅니다. 아, 그러니까 <난생처음 내 책>은 제가 쓴 책입니다만. 네네.
타자기 아래에는 서점 관련 책들이 모여있습니다. 아, 반가운 군산 배지영 작가님의 <환상의 동네서점>도 보이네요. 여기가 낮은 서가라서 쪼그려 앉아 보았더니 사장님이 의자 갖다 놓고 봐도 된다고... 사장님 너무나 친절하고 세심하시네요.
요 몇 년 간 저는 쪼그려 앉았다 일어나면 어질어질해서 서점 낮은 서가는 잘 안 보는데 말이졍. ㅋㅋ
북극서점에선 책 두 권 계산하고 나오는데 사장님이 인천 지역화폐가 있으면 10% 할인해준다고 마지막까지 친절을 베푸시길래, 엣헴, 저는 서울 사람입니다, 처가에 들렀다가 연꽃 빌라라는 서점을 찾았는데 문이 닫혀 이곳에 당도하게 되었습니다, 엣헴, 했습니다. ㅋ
사장님한테 주변 다른 독립서점도 물었더니, 한 다섯 군데가 모여있다고 그중 <사각공간>이라는 서점은 인문서 위주의 서점이라길래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근데 <사각공간> 사장님 외출 중. ㅋㅋㅋ 인천 독립서점 3곳에 들렀는데 한 곳만 볼 수 있다니. 저한테 왜들 이러세요? ㅋㅋㅋ
오래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아 문 안으로 서점 분위기만 한번 쓰윽 보고 다음을 기약합니다. 서점 유리에 최승자 시인의 시구절이 적혀있는 게 인상적입니다.
북극서점 사장님이 주변에 맛집 정보도 공유해주셔서 와이팡 빵셔틀 차 '실리 제롬'이라는 빵집에 들러봅니다.
가게는 조그마한데 안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되게 많네요. 분위기가 "ㅇㅇ 우리 빵 맛집이야." 하는 느낌.
와이프 빵셔틀 해주고 몇몇 빵을 먹어봤는데 특히나 도쿄앙버터가 맛있었습니다. 거북이 등껍질을 빵 모양으로 만든 로고가 멋지네요.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정성스럽게 빵을 만드는 뭐 그런, 빵 발효와 관련된 문구가 있던데 저는 보통 먹을 줄만 아는 녀석이라 모르겠습니다. 하하핫!
북극서점에서 들고 온 책과 엽서들입니다.
우세계의 <우아한 세계>, 젠 왕의 <스타게이징>. <우하한 세계>는 독립출판으로 책을 낸 작가의 이런저런 이야기가 담긴 만화네요. 이후진 프레스 출판사에서 나온 책입니다. 이후진 프레스가 독립서점 이후북스의 출판사로 알고 있는데요. 다음에는 이후북스에도 한 번 들러보고 싶네요.
북극서점 카운터 앞에는 무료로 제공되는 엽서 등이 있었는데요. 사장님이 마음껏 가져가도 된다고 하셔서, 눈에 띄는 두 장을 들고 왔습니다.
독립서점을 많이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북극 서점만큼 친절한 곳은 처음인 거 같아영.
이 정도면 북극서점 사장님 제가 아는 인천 분 중에 젤 친절한 사람 탑텐 안에 들 것 같습니다. 하하핫!
연꽃 빌라가 휴무라서 들른 곳이었는데 즐거운 기분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다음에 시간을 내어 재방문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곳이었습니다. 북극서점 추천!
간만에 인천 바이브를 만끽할 수 있어서 좋은 산책이기도 했습니다. 다음에는 아이들 손잡고 굴포천에도 들러보고, 와이프 손잡고 청리단 길도 가보고 싶군요. 혹시, 나 집에서 왕따인가... 흐음 그렇진 않겠죠.
이상 전형적 사십 대 한남 국밥충의 인천 독립서점 투어기 끄읕.
그럼, 오늘은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