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전 토요일, 간만에 혼자만의 시간이 생겼다. 결혼 후에는 항상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덕에 혼자 노는 법을 잃어버린 사십 대 유부남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결국 평소 가보고 싶었으나, 발길이 닿지 않았던 몇몇 독립서점에 들르기로 했다.
그렇게 신촌을 시작으로 경의선 책거리를 지나, 연남동과 망원동에 있는 몇몇 서점에 들렀다. <아크앤북>, <책방연희>, <서점, 리스본>, <이후북스> 등. 서점마다 큐레이션이 다르고 나름의 특색이 있어서 구경 후에는 책을 하나씩 들고 왔다.
경의선 숲길의 끄트머리에 있는 <서점, 리스본> 1층에는 소설과 시집 등 문학 분야의 책이 눈길을 끌었고, 나는 그곳에서 시인 최승자의 시집 <즐거운 일기>를 들고 왔다.
소설과 에세이에 비해, 시를 읽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내가 80년대에 쓰인 이 시집을 들고 온 데에는 어떤 까닭이 있었을까. 거기엔 최승자 시인의 자서와 능청이 있다. 오래전 생긴 마음의 빚이 있다.
출판사에 투고를 하며 작가 지망생의 시간을 보내던 몇 년 전의 나는 파주 출판단지에 있는 도서관 '지혜의 숲'에서 우연히 최승자 시인의 <즐거운 일기>를 열어보고서는 그가 쓴 자서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던 일이 있다.
'이 시집 중의 어느 시에서부턴가 내가 직업적으로 능청을 떨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참, 벌써 능청이라니, 하고 말하면, 그것도 능청스럽게 들린다. 그렇다면 더욱 더 시적으로 능청을 떨든가 아니면......'
최승자 시인이 쓴 자서를 처음 읽었을 때 좌절로 가득한 지망생이던 나는 시인이 말하는 '능청'이 너무나 경이롭고도 부러웠다. 그건 작가 지망생으로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동경이자, 질투였다.
작가는 이렇게 능청을 떠는구나.
시인은 이렇게 능청을 떠는구나.
능청스러운 글쓰기라니.
후에 데뷔작 소설 <작가님? 작가님!>을 내고 지혜의 숲을 찾았을 때 나는 자석에 끌리듯 다시 최승자 시인의 <즐거운 일기>를 찾아 자서를 읽었다. 시집은 처음 열었을 때보다는 조금은 더 해진 듯했다. 책의 낡음과는 상관 없이, 작가 지망생 딱지를 떼고서 다시 읽어 본 자서에서도 시인의 능청은 역시나 멋스러움을 풍기고 있었다.
내가 쓰는 글에서 조금이라도 '능청스러움'이 있다면 그건 모두 최승자 시인의 시집 <즐거운 일기> 속 자서의 영향 아래 있다고 여겨진다. 특히 올 3월에 출간한 에세이 <난생처음 내 책 ; 내게도 편집자가 생겼습니다>는 총 네 개의 파트로 나뉘었는데 마지막 파트의 제목은 아예 '조금은 능청스럽게'이다.
특히 책의 마지막 꼭지라고 할 수 있는 '작가라는 부업'은 최승자 시인의 자서가 있었기에 쓰인 글이나 다름없다. 마음먹고 능청을 떨어보자 하고서 쓴 글이니까.
그런 연유로 최승자 시인에겐 항상 마음의 빚을 진 기분이었다.
언젠가 작가가 되면 나도 능청을 떨며, 시답잖아 보이는 농담을 툭툭 던져대는 그런 글을 써야지, 그러니 나는 꼭 작가가 되어야지, 꼭 책을 내야지, 했던 결심을 하게 해주었으니까.
이주 전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을 때 이런저런 서점을 돌며 최승자 시인의 <즐거운 일기>를 들고 오면서 이제야 그에게 가지고 있던 마음의 빚을 조금은 덜어낸 기분이다. 시집은 시간이 날 때마다 천천히 조금씩 읽고 있지만, 어떤 책은 본문보다 서문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내겐 <즐거운 일기>가 그런 책인 셈이다.
시인의 능청이 담긴 '자서' 한 페이지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