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작가와 여럿의 독자

작가의 의도대로 글이 읽히지 않을 때

by 이경



안녕하십니까, 어제도 무명이었고, 오늘도 무명인, 변치 않고 변함없는 그리하여 변변찮은 무명의 글쟁이, 이경입니다. 그 뭐냐, 브런치에 <무명 글쟁이의 글쓰기 비법>이라는 브런치북을 발행하고 추가로 글을 더 쓰려고 하는데 매거진도 없어지고, 브런치북에 추가도 안되고, 그런 상황입니다.


브런치 공모전 심사야 지금 관계자들께서 눈 빠지게 심사 중일 테고, 공모전에는 붙을 확률보다 떨어질 확률이 수백 배 높으니까능, 그냥저냥 될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지내면 마음이 편하겠지요. 저도 그러고 있습니다. 설마 되겠는가. 되면 좋겠지만, 그게 될 리가 있겠는가. 그래도 되면 정말 좋겠지만, 그래도 그게 정말 될 리가 없잖은가. 브런치 공모전 떨어지면 글 모아다가 출판사에 투고나 해봐야지, 그럼 정신 나간 편집자 한 명쯤은, 내 글 재밌어해주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입니다.


여하튼 이 글은 브런치 공모전에 제출한 <무명 글쟁이의 글쓰기 비법>에 해당하는 글이다, 이 얘깁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떠들어볼까 하다가, 작가와 독자의 사이. 개중에 작가의 의도가 제대로 읽힐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작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떠들어볼까 합니다.


글쓰기 아포리즘 책을 읽어보면 작가가 생각하는 독자라는 것도 각기 다릅니다. 어떤 작가는, 독서 그거는 독자들이 알아서 하는 거고, 나는 모른다, 배 째라, 하는 작가도 있고, 또 어떤 작가는, 아아 독자님들 위대한 독자님들은 대부분 창작자보다 똑똑하심, 독자가 그렇다면 그렇다는 거야, 독자가 짱이야, 하는 작가도 있습니다. 독자를 생각하는 작가도 결국은 뭐 제각각입니다.


어떤 분들은 쓰는 것은 고통이요, 그저 남들이 쓴 글을 읽는 게 재밌다,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또 어떤 분들은 아아 나는 책 읽는 거 진짜 못하는데 글 쓰는 게 오히려 더 재미나다 하는 사람들도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읽는 걸 잘하는 것과 쓰는 걸 잘하는 건 분명 다른 영역인 것 같습니다. 저는 약간의 난독 증세랄까, 책을 읽다가 문장을 놓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고, 스스로 좋은 독자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쓰는 거야 뭐, 제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이야기들 정리해서 타이핑하면 그만이니까, 저는 굳이 구분하자면 쓰는 쪽이 더 수월합니다. 아아, 무명 글쟁이 이경 오늘도 주접을 떨며 제 자랑을 하고 있구나 지청구를 놓으셔도 사실이 그러하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어? 뭐. 왜. 뭐.


각설하고, 글이라는 게 보통은 의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 얘기가 무엇이냐, 작가가 전달하려는 이야기가 분명 있다는 거죠. 문제는 모든 독자들이 작가의 의도대로 글을 읽어준다면 오늘도 세상은 위아 더 월드, 피스 평화롭겠지만, 어디 독자가 그렇게 단순한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야구 해설가 故 하일성이 "야구 몰라요"라고 말했듯, 독자도 몰라요 몰라,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글을 쓰고서는 책을 낸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요즘은 책을 내면 서평 이벤트라는 걸 자주 하죠. 출간과 전후하여 서평단을 꾸립니다. 독자 선발대라 할 수 있는 서평단에게 책을 보내주고, 자자 이 책 좋으니까 한 번들 읽어보시고, 이런저런 서점 사이트에 리뷰를 올려주십셔, 하고 홍보를 시작합니다. 출판사의 마케터나 담당 편집자들은 이런 초기 서평단의 리뷰를 보면서 책의 반응을 살피고, 앞으로 이 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판단을 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쓴 작가는 담당 편집자가 써준 보도자료 이후, 실 독자의 리뷰를 받아 들게 되는 겁니다. 작가와 담당 편집자는 한마음 한 뜻으로 책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담당 편집자는 작가의 의도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을 사람입니다. 보도자료는 그러하니 별 문제가 없을 테지만, 실 독자들의 리뷰가 올라오는 순간 글을 쓴 작가는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글쟁이는 자기가 쓴 글을 자신과 동일시하게 여깁니다. 누군가 내 글을 욕한다면 그건 마치 나를 욕하는 것과 같습니다. 리뷰가 올라온다고 칩시다. 거기에 내가 쓴 글의 욕이 올라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리뷰를 올린 사람이 내가 쓴 글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자기 멋대로 해석을 해서 욕을 합니다. 작가도 사람인지라, 뒷골이 땡기고 혈압이 올라가면서 이를 바득바득 갈아가며 씩씩 거리게 됩니다. 으으, 독자 네놈의 IP를 추적해서 아주 그냥 혼구녕을 내주겠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거죠. 작가가 책에 "1+1 = 2" 라는 문장을 썼다고 칩시다. 독자들이 아아, 이 작가가 말하기를 1+1 = 2라고 하더라, 해석한다면 문제 될 게 그다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독자들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누군가는, 아아, 이 작가가 말하길 1+1 = 1 이라더라, 혹은 1+1 = 3 이라더라, 하고 해석을 하는 이가 있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 같진 않습니다. 작가의 의도에서 뭐 그렇게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으니까요.


그럼 어떤 독자가 문제인가, 아아, 이 작가가 글을 쓰기를 1+1 = -54824 이라더라. 뭐 이런 식의 해석을 하는 이가 작가에게는 문제의 독자가 되겠습니다. 마이너스 54824 라는 숫자는 그저 키보드의 아무 숫자나 때려 넣은 거니까 이 숫자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독자의 해석은 이렇게까지 엉뚱할 수 있다는 걸 말하고자 하는 거니까요.


책을 내보니까는 어떤 독자가 가장 좋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일단 책을 사주는 독자가 좋습니다. 읽지 않아도 사주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읽어주면 더 좋습니다. 책을 읽고서는 책을 좋게 평가하여 인터넷 서점에 별점 만점을 찍어주고는, SNS에 예쁘게 책 사진을 찍어 올려주고는, 독후감, 서평, 책 리뷰 등등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며 주변에 입소문까지 내준다면 작가는 이 독자에게 사랑의 감정까지 느끼게 될지도 모릅니다. 작가가 쓴 다른 책들까지 찾아서 읽어봐 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반면에 똑같이 책을 읽어주고 SNS에 서평이며 리뷰며 다 해주는데 작가의 의도에서 벗어난 해석을 하는 독자를 만날 때에 작가는 조금 곤란함을 겪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건 분명 사랑의 감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작가가 일일이 그런 독자들의 게시물에 댓글을 달아가며, 어, 음, 흠, 제가 쓴 글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만,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작가로서는 어쩐지 찌질해 보일 것 같기도 하고, 독자 입장에서도 이 사람 뭐야, 무서워,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독자의 해석에 작가의 의도는 그다지 중요치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쓰는 이는 하나지만, 읽고서 해석을 하는 이는 여럿이니, 어쩌면 하나의 글과 책은 독자가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대평가, 과소평가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닐 테니, 누군가는 글의 의도대로 해석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누군가의 글은 이상한 방향으로 과하게 확대, 축소 해석되어 좋거나 나쁘게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글을 쓰는 누구라도 '악플'을 받길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악플'이 달릴 수도 있겠다, '악플'이 달릴지도 몰라, 하는 걱정 우려의 마음을 가지고 글을 쓸 수는 있겠지만, 글을 쓸 때부터, 후후후 독자 놈들아 기다려라, 내가 아주 개소리를 심하게 해 줄 테니 나와 함께 투닥투닥 오늘 아주 그냥 전쟁을 벌여보자, 하는 글쓴이는 거의 없을 겁니다. 물론 그렇게 싸우자는 식의 의도를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도 분명 있긴 할 겁니다. 그 조차도 글쓴이의 '의도'가 심어진 글이라고 봐야 할 테니까요.


다만 대부분의 글쓴이들, 특히 에세이 같은 장르의 글을 쓰는 이들은 독자에게 공감을 바랄 테지, 전투를 바라진 않을 것 같습니다. 내가 쓴 글에 악플이 달린다면 작가는 분명, 으으으 이것은 나의 의도가 아니었다, 으으으, 생각하게 될 테지만,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게 마음이 편합니다. 우리의 독자들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엉뚱한 해석을 늘어놓는 독자에게 피해만 보아야 하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힘을 길러야 합니다. 자신의 의도가 독자에게 잘, 그것도 아주 자아아아알,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 무엇이냐. 글을 잘 쓰는 겁니다. 글을 아주 잘 쓰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아아 이 작가가 지금 1+1은 2라고 틀림없이, 분명히, 명백하게 얘기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명 글쟁이의 글쓰기 비법에 글 잘 쓰는 방법 따위는 없다고 계속 말해왔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 게 있을리가요. 그런 거 없어요, 없어.


그렇지만 글쓰기의 기본 중 하나만 잘 지켜도 글의 의도는 독자에게 잘 전달될 수 있습니다. 이건 분명합니다. 그 기본이 바로 '주술호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독자가 작가의 의도를 오해하고 곡해하고 오독하여 오도도독 씹게 되는 경우의 대부분은 이 주술호응이 애매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봐도 좋겠습니다. 그러니 글을 쓰는 이들은 글을 쓰고 퇴고를 할 때에 이 주술호응을 잘 다루어야 합니다.


설마, 이보게 무명의 글쟁이 양반, 주술호응이란 게 무엇인가? 묻는 분들이 있지는 않으시겠지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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