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언어 감수성 관련 내용만 만나면 뭔가 이야기하고픈 게 많을 정도로 어떤 말의 변화, 움직임을 지켜보는 걸 좋아한다.
살면서 국립국어원의 선택을 보며 가장 반가웠던 두 가지 사례를 꼽으라면, 첫째로 '짜장면'을 짜장면으로 쓸 수 있게 해 주었던 것.
나머지 하나는 '너무'에 긍정의 뜻을 입혀준 것.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너무'는 부정의 뜻으로만 쓸 수 있어서, 맛집 방송 인터뷰 등에서 누군가 "너무 맛있어요"라고 말하면 방송 자막에서는 '정말 맛있어요.' 등으로 고쳐서 나왔다.
아무리 부정의 뜻으로만 쓸 수 있는 '너무'라고 해도 대다수의 대중이 긍정의 뜻으로 쓰면 어쩔 수가 없는 법이다. 결국 국립국어원은 몇 년 전 '너무'를 부정과 긍정 모두 쓸 수 있는 단어로 수정했고, 나는 국립국어원의 포용력에 리스펙트!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뜻을 달리해서 쓰게 되면 말은 자연스레 변하는 법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단어의 뜻이 이렇게 변한다고? 싶었던 것은 단연 '현타'라는 신조어다.
어떤 단어는 특정 집단만이 이해할 수 있기도 하다. 내가 '현타'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가 그랬다. 인터넷에서 처음 접한 '현타'는 남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단어였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현타'는 '현자 타임'의 준말이었다.
남자들은 (보통 마스터베이션 때의) 사정 후에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괴물 같은 성욕이 모두 사라지며, 허무와 허탈을 맛보고, 결국은 우주의 탄생, 만물의 진리 등을 생각하게 되는 이른바 공자 맹자 장자 순자 여러 자자 등의 현자와 같은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 현타가 왔다는 것은, 남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어떤 허무함에서 현명할 수 있는 시간을 뜻하는 거였다. 남자들이 여성의 임신과 출산, 생리 등의 단어는 알지만 어떤 느낌인지는 결코 알 수 없듯이, 현타 역시 남성들만이 알 수 있는 단어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현타'라는 단어가 어쩐지 어감이 입에 잘 달라붙고 재미가 있는지, 어느샌가 부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현타현타 하더니, 방송계 마저 진출, 나는 아직도 방송에서 '현타'라는 단어를 보면, 흠칫, 저거 방송 사고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드는데, 방송을 포함하여 이제 대부분의 사람이 쓰고 있는 '현타'는 '현실을 자각한다.'라는 뜻으로 변한 듯하다.
현자 타임의 허무함은 그대로 유지한 채, 현명할 수 있는 심리의 상태는 빠진, 뜻이 줄어든 단어가 된 것이다.
결국 남성들을 위한 단어라고 생각한 '현타'는 성별을 막론하고 퍼져 나가며 최초의 뜻마저 변해버린 셈이다.
뜻은 사라졌지만 대중성은 취하게 된.
특정 집단에서 쓰는 단어가 다른 집단에서 사용하기 시작하며, 애초의 뜻마저 변해버리는 것.
'현타'의 경우 한국이란 나라에서 남녀 집단에 따라 변한 에피소드라면, 이런 게 특정 인종이나 국가에 따라 옮겨 변한다면 그때는 이제 '문화적 도용'이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현타'의 뜻이 변하는 걸 보고서도 몇몇 남성들은 '으으으 우리의 단어를 여성들에게 빼앗겼다. 문화적 도용을 당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
가령 올해 박재범이 드레드 헤어를 하고 뮤비를 찍었다가, 몇몇 흑인들이 너는 흑인도 아니면서 왜 우리를 흉내 내냐, 하는 일이 터졌고, 결국 박재범은 뮤비를 내려버리기까지 했는데.
박재범은 단순 예를 든 거고, 이렇게 특정 집단이 말하는 문화적 도용이란 게 따로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패션, 음악, 말의 확장성 등등 다 조금씩 조금씩 연결 연결되어 있어서 이게 되게 어려운 문제 같다.
그러니까 우리가 얼굴을 까맣게 흑인 분장을 하는 건 흑인 혐오이니 하지 말아야 한다, 하는 인식은 생기는 거 같은데, 헤어스타일이나 패션, 음악이 연결되면 피 터지는 갑론을박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
가장 최근에는 중국에서 따라 하는 <오징어 게임>을 예로 들 수 있겠고.
집단의 사용에 따른 말의 변화, 문화적 도용, 표절 뭐 이런 게 다 따로 보기 힘든 이야기이다.
나는 너무의 뜻이 변한 것도 반갑고, 현타의 뜻이 변한 것도 괜찮은데, 이러한 확장성에 따른 변화가 어떠한 집단에 따라서는 분명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하고서 오늘도 잘난 척 한번 떠들어 보았습니다.
가끔 여성 분들이 '현타현타'하면 흠칫하는 마음이 들어서 그런 마음에서 떠들어 본 글이라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