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처음 출판사에 음악 에세이 원고를 보내면서 엑셀 파일을 만들었다. 출판사 명과 메일 주소, 답변의 유무, 비고란을 만들고 가장 좌측에는 순번 칸을 만들었다.
딱 100번까지만 해봐야지. 그러고도 답이 안 나오면 미련 없이 그만두어야지, 생각했으면서도, 어느새 순번 칸은 200번이 넘어갔다. 누군가 이런 글로는 절대 책을 낼 수 없다고 매몰차게 말해주면, 차라리 마음 편하게 포기했을 텐데, 출판사 사람들은 그만둬야지 싶을 때마다, 어쩌면, 어쩌면 하는 생각을 품게 해 주었다.
그건 희망이었고, 고문이었다.
그러니까 작가 지망생으로 살던 그 시절에는 꿈 때문에 버티면서 꿈 때문에 죽을 것만 같은 시간들이었다. 그때 김윤아의 <꿈>을 들으면서 많이 울었다. 내가 느끼던 '꿈'의 양면을 노래해주었으니까. 김윤아의 목소리는 서늘하면서도 따뜻했다.
한편으로 김윤아의 <꿈>을 들으면서 많은 위안을 받기도 했다.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안 될 수도 있겠구나, 책을 못 낼 수도 있겠구나, 나는 평생 작가 지망생의 딱지를 떼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싶을 때 이뤄지지 않는 꿈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으니까. 김윤아의 <꿈>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자주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글쓰기는 자신을 돌아보게 해 주고,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억지로 글을 쓰지 않는다면야 즐거움으로 가득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이게 책을 목표로 하게 되는 순간부터 즐거움은 괴로움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첫 책을 내기까지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고 거절의 답변을 받을 때마다,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바닥이 어딘지 모르는 채, 자꾸만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책이 되지 못한 음악 에세이 원고와 데뷔작 소설 원고를 합쳐 총 300번 정도 투고하고서 나는 첫 책을 낼 수 있었다. 늘 양면을 보여주던 꿈의 모습이 점차 밝아지는 순간이었다.
세 번째 책 <난생처음 내 책>의 마지막 꼭지 (꿈, 깰까요 꿀까요)는 김윤아의 <꿈>을 듣던 시간을 떠올리며 쓴 글이었다. 꼭 책이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글을 쓰면서 지내면 좋겠다고 적었다. 그렇게 글쓰기를 하다가, 누군가 문득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이 생겨버린다면, 응원은 하겠지만 꼭 잘 될 거라는 장담은 할 수 없다고 적었다.
작가 지망생이 작가가 되는 일.
그건 아무리 간절해도 이뤄지지 않을 확률이 더 높은 일이니까.
그렇게 이뤄지지 않은 꿈이라도, 소중하지 않은 게 아니니까.
현실은 늘 끔찍하니까.
꿈의 양면이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할 때,
그저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랄 뿐.
김윤아 - <꿈>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거운 짐이 되지
괴로워도 벗어둘 수 없는 굴레
너의 꿈은 때로 비길 데 없는 위안
외로워도 다시 걷게 해주는
때로 다 버리고 다 털어버리고
다 지우고 다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서운 거울이라
초라한 널 건조하게 비추지
너의 꿈은 때로 마지막이 기대어 울 곳
가진 것 없는 너를 안아주는
간절히 원하는 건 이뤄진다고
이룬 이들은 웃으며 말하지
마치 너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소중하게 품에 안고 꿈을 꾸었네
작고 따뜻한 꿈
버릴 수 없는 애처로운 꿈
간절하게 원한다면 모두 이뤄질 거라 말하지 마
마치 나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마치 나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