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판사 분들과 미팅을 하는데, 편집자님이 묻습니다. 글을 쓴다고 하면 주변에서 어떤 시선으로 보시나요? 아내 분께서는 응원을 해주시나요? 편집자 분들은 대체로 이런 걸 궁금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앞선 책의 편집자님도, 제 글에 대한 아내의 반응을 궁금해했는데 말이죠. 사실 저도 궁금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을 쓰고 나면 자신의 아내에게 글을 보여준다고 하던데, 저는 그게 참 남사스럽기도 하고, 부끄럽습니다. 저는 출간 작업을 목표로 쓰는 글은 한글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쓰는 편인데, 이 작업을 할 때만큼은 아내는커녕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쓰는 편입니다. 딱 한 번 <힘 빼고 스윙스윙 랄랄라>라는 에세이를 쓸 때는 꼭지가 모이면 아내에게 보여주곤 했는데요. 그때 아내는 제 글을 분명 재밌어해 주었던 것 같긴 합니다.
그때 외엔 아내가 글을 쓰는, 또 책을 쓰는 저를 응원하는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책이 나오면 SNS 등에 출간 소식을 알리며 주변에 홍보도 해주고 그러는 것 같긴 한데, 책에 대한 피드백이랄까, 뭐 그런 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제 책을 보았을 때 어떤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아내는 제가 쓰는 글을 좀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정확하게는 제가 쓰는 글을 싫어하는지, 아니면 글을 쓰는 저를 싫어하는지, 혹은 그냥 저를 싫어하는 건지... 아, 이렇게 생각하니 좀 슬퍼지는군요.
말씀드리자면 제가 글과는 달리 평소에는 말도 거의 없고 내성적이고, 조용하고, 과묵한 사람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아내는 어느 쪽이 실제 저의 모습인지 좀 헷갈려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배신감이랄까요. 내가 아는 남편은 말이 거의 없는 사람인데, 온라인에서는 왜 이렇게 나불나불 떠들어대는가, 입에 모터라도 달았는가, 싶어서 조금 꼴사납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 가끔 아내를 희화화하며 글을 쓰기도 하고, 또 가끔은 오래전 구여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글로 쓰기도 하니까, 아내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이 충분히 들지 않겠습니까, 이 새끼는 뭐하는 새끼인가. 남편인가, 웬수인가. 그러니 글을 쓰는 남편을 응원해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어느 날은 “글에서 한 번만 더 내 이야기를 하면 죽여버리겠어.”라고 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힘든 일이 있으면 글로 써봐” 하기도 하고 말이지요. 상황이 이러니 저도 아내가 던져주는 장단에 어떤 춤을 추어야 할지 조금은 헷갈립니다. 어떤 날은 브레이크 댄스고, 어떤 날은 블루스고, 또 어떤 날은 지르박이랄까.
집에서는 가사와 육아에 큰 도움도 안 되는 인간이 책을 냈답시고, 온라인에서 몇 안 되는 독자와 소통을 한다며, 아이고 독자님, 제 책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고 작가님, 글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글이 너무 좋아서 작가님은 왠지 목소리도 근사하고,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기셨을 것 같아요, 사랑해요 작가님, 작가님이 최고예요, 하며 주고받는 댓글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역시나 조금은 꼴불견이 아니겠습니까. 실상은 팬티 차림으로 소파에 누워서 마치 대단한 인기 작가인 것처럼 어깨를 으쓱으쓱 거리고, 낄낄낄 거리며, 배를 벅벅 긁고, 코를 훅훅 후비던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것일 텐데, 역시 그렇게 생각하면 아내 입장에서는 확실히 남편이라는 작자가 재수 없어 보일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는 가끔 SNS에서 저를 차단하기도 하고, 언팔하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설마 아내가 남편을 차단하려고, 하고서 농담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말이지요. 제 아내는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다. 제 아내의 결단력을 과소평가하지 말아 주세요.
이러니 가끔 편집자 분들이 “아내 분은 작가님 글을 좋아하시나요? 응원하시나요?” 물어보시면, 저는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고, 아내가 내 글을 좋아하는가, 어떤가 하는 생각에 빠져 답변을 머뭇머뭇하는 겁니다. 아, 그래도 인세가 나오는 날, 아내 통장으로 이체를 해주면 그때만큼은 아내도 분명 웃음을 보이고는 하는 것 같던데 말이죠.
참고로 말씀을 드리자면 아내와 저는 생년월일이 같습니다. 그러니까 태어난 날이 같아서 연애 시절부터 누나도 동생도 아닌, 친구 같은 사이로 지냈는데, 그래서 그런가, 다투기도 자주 다투고, 그런 다툼 속에서 또 사랑은 피어나고, 부부 사이라는 게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속내를 알 수 없는 아내와 달리 부모님은 제가 책을 내었다고 하니, 분명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자랑스러워하시는 것 같달까요. 서점에 가셔서 책도 좀 사주시는 것 같고, 여기저기 입소문도 많이 내주시는 것 같습니다.
친구의 시선은... 제가 친구가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몇 안 되는 친구들의 시선을 나눠보자면, 책을 사주고 응원해주는 고마운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완전 무관심한 나쁜 놈들도 있고 말이죠.
뭐, 저뿐만 아니라 주변에 글 쓰는 분들 보면 다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책에는 별 관심이 없다더라,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책이 너무 좋다고 응원을 해주어서 놀라웠다, 뭐 이런 이야기 말입니다. 그만큼 책은 좀 독특한 물건이 아닌가 싶어요. 좋아하는 사람은 되게 좋아하면서도, 관심이 없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무관심 한. 그전에 생각했던 지인과의 친분이랄까, 친밀도에서 책이라는 게 끼어들면 완전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느낌입니다.
뭐,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도 확실한 것 하나는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에 대한 기사를 보았는데요. 어린 시절 자신의 글을 무시했던 어머니에게 단 한 푼도 주지 않겠다,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겠다, 하는 기사였습니다. 그러니까 글을 쓴다는 인간들은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척하면서, 아주 옛 일들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서는 또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고도 복수를 하고야 마는 그런 족속들입니다. 그러니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주변에 작가를 지망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들이 비록 한심해 보이더라도 따뜻한 시선과 말 한마디를 건네주길 바랍니다. 먼 훗날 복수를 당하지 않으려면 말이죠.
“작가님, 글을 쓰실 때 주변의 시선은 어떠한가요?” 라는 질문을 편집자님이 하였을 때는, 뭔가 따듯하고 아름답고 힘이 되는 그런 주변의 시선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그 시선에 대해 막상 글로 써보니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뭐, 글을 쓴다는 사람들은 역시나 대체로 한심한 족속들이라 어쩔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