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 전 장혜진 30주년이라고 셀프 커버 음원이 나와서 들어봤다. 30주년 음원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젊은 시절의 목소리 쌩쌩한 장혜진이 더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장혜진 곡 중에 가장 좋아하는 두 곡을 뽑으라면 <우(비)>와 <키작은 하늘>
여기에 두 곡을 더 뽑으라면 <1994년 어느 늦은 밤> 그리고 <꿈의 대화>
특히 <雨>에서 느껴지는 쓸쓸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마른하늘에서 주책도 없이 비가 내리고, 내 눈에서도 주책없이 눈물이 나오고.
하늘에서 자신의 감정으로 이어지는 이 주책없음과 흘러내림이 좋다.
문득 주책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예전에는 '주책없다'만 표준어였다가, 2016년부터 '주책이다'도 표준어로 인정됐단다.
그러니까, "저 인간은 주책도 없이, 주책이네, 아주 주책 떨고 있네." 하는 문장도 말이 된다는 얘기인가 보다.
가끔 나는 글쓰기의 대부분을 노랫말에서 배웠다고 말하곤 하는데, 장혜진의 <雨>를 좋아하는 나는 역시 '주책없다'가 가장 익숙한 표현이다.
2. 며칠 전 기사를 하나 봤는데 친할머니 외할머니 명칭 대신에 지역명+할머니를 쓰자는 식의 주장이었다. '친', '외'가 가지고 있는 단어의 뜻이 차별적이니 평등하게 맞춰보자는 의도다.
그렇게 치면 아이들한테 울 엄마는 '구파발 할머니'고 장모님은 '작전 할머니'가 되는 건가. 할머니들이 이사를 하면 그때는 또 명칭이 달라지는 건가.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같은 동네에 살면 그때는 또 어찌해야 하나...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어릴 때 단어의 뜻을 찾아보다가 헤게모니가 너무 차이 난다 싶어 놀랐던 단어가 있는데 바로 '여야'였다. 정치 단어라고 할까. 여당 야당 할 때 그 여야.
여는 참여할 여(與)를 쓰고, 야는 들 야(野)를 쓰니까, 이거 너무 한쪽 무리를 초라하게 표현하는 게 아닌가 싶었던 거. 근데 또 '재야인사' 같은 단어를 접하면 뭔가 멋스러운 느낌도 나고.
나는 '친 외 할머니' 논란(?)을 접하면서 야당 사람들이 "여야 단어는 차별이다 고치자!!!" 하는 망상을 해봤다. 그러니까 뜯어고칠 수 있는 단어의 불편함은 어디까지일까 싶다. 언어 감수성을 초특급으로 예민하게 굴면 살아남을 단어가 얼마나 있을까.
'외할머니'라는 단어를 없애면, 외할아버지라는 단어도 없애야 할 테고, 외탁이라는 단어도 없애야 할 테고, 외갓집이란 단어도 없애야 할 테고, 외삼촌이란 단어도 없애야 할 테고, 외숙모라는 단어도 없애야 할 테고...
이렇게 사어가 많이 생길 일이라면, 한자를 사용하는 나라들과 조속한 협의를 거쳐 사전에서 外자를 도려내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보니 역시 과한 망상이라 주책이 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