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이네. 비 오네. 어제는 잠들기 전에 장혜진의 <雨>를 들었는데. 그때는 비가 올 줄 몰랐는데, 아침에 눈을 떠보니 비가 내리네. 11월에 비 내리면 건스앤로지스의 <노벰버 레인>을 들어야 제철 제맛인데. 오늘은 별로 듣고 싶은 마음이 들지가 않네. 브런치 공모전 당선작 발표까지는 보름이 남았으니, 이제 슬슬 당선자들에게 전화를 돌리지 않았을까. 전화가 울리지 않는 걸로 보아, 혹시나가 역시나고, 이번에도 나는 물을 먹었으렷다. 하지만 나는 울지 않지롱. 비코즈, 왜냐하면, 어째서냐하면 브런치 공모전에 응모한 글을 보고서 연락을 준 출판사가 이미 있으니까능. 어제는 그 출판사 대표님과 잠깐 시간을 내어 만났다. 벌써 두 번째 만남. 첫 만남에 대표님이 좀 떨면서 얘기를 하셔서, 아니, 대표님, 왜 그렇게 떠세요. 떨지 마셔요, 제가 너무 이상하게 생겼어도, 해치지 않아요, 그러니 그만 떠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잘 떨어지질 않아서, 속으로 같이 막 떨었다. 달달달달. 대표님이 책도 쓰신 분이라 나는 마음껏 아부를 떨어야지, 하는 마음에 책을 가져가서는 대표님, 작가님, 편집자님, 저기요, 여기요, 해주세요, 싸인, 했더니 싸인을 해주셨는데 글쎄, 2021년도에 2011년이라고 적어주셔서, 아니, 대표님, 과거에서 오셨어요? 묻고 싶었지만, 역시나 묻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어제는 대표님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면서, 내가 뭘 가져왔을까요, 하셔서, 흐음, 뭘 가져오셨나요, 혹시 계약서?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나는 좀 설레발을 떤 거 같기도 하고, 너무 앞질러서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켜버린 게 아닐까 싶어서 부끄럽기도 하고, 대표님 보시기에 너무 속물처럼 보였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뒤늦게 들기 시작했는데, 그도 그럴 게 대표님이 꺼내신 것은 계약서가 아닌, 내가 쓴 책 3종 세트였다. 대표님왈, 세 권 다 싸인받고 싶지만, 하고 싶은 책 한 권에만 싸인을 좀, 하셔서, 속으로 또, 아아, 정말 내 마음 같아서는, 싸인 그게 뭐라고, 세 권이 뭐야, 삼십 권이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나는 손에 펜만 잡으면 손도 떨리고 심장도 떨리고 머리도 떨려서 결국엔 진짜로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의 면지에만 싸인을 해드렸다. 이경이라는 글자를 한자로 먼저 적고서는, 뭔가 메시지를 써드려야지 했는데, 아마 그때부터였는지, 말이 뭔가 꼬이고 생각 정리가 안되고, 아니 거꾸로 말하면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런 건가, 앞에 계신 분이 A를 얘기하고 있는데 나는 갑자기 B를 물었다가, C를 물었다가, 그렇게 막 정신이 없다가, 아이 참 이게 뭐람, 싶다가, 결국 어느 순간 입이 잘 떨어지질 않아서, 어어어, 음음음, 흠흠흠 하였더니, 출판사 대표님이 뭐라 그랬더라, 괜찮아요, 천천히 얘기하세요, 라고 하셨던가, 아니면. 아무튼 그때 나 좀 마치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들어서, 아, 나 왜 이렇게 말을 못 하지, 속상하네, 눈물 날 것 같네, 하는 생각이 들었달까. 그 왜 어릴 때 어린아이들이 그렇잖아, 뭔가 뱉어내야 할 말이 있는데, 입안에서 맴돌고 툭툭 튀어나오지 않아서 답답한 기분. 근데 그런 어린아이 달래듯, 괜찮다고 얘기해주셔 좋긴 좋았는데, 그러니까 오늘이 말일, 비 오는 11월 30일이고 어제는 분명 11월 29일이었는데, 나는 어제 싸인을 하고서 날짜를 2021. 11. 30이라고 적어버린 거지. 출판사 대표님은 10년 앞선 날짜를 적고, 나는 하루를 앞당겨 날짜를 적었으니, 이거 마치 과거에서 온 편집자와 미래에서 온 글쟁이가 아닌가 싶더라니까. 서로가 그렇게 정신없이 또 막 덜덜덜 떨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