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잡담

by 이경



1. 늦은 점심으로 샐러디에서 할라피뇨치킨웜볼을 포장해와 사무실에서 처묵처묵하고 편의점에서 파는 2,500원짜리 투플러스원 이디야 돌체 콜드브루로 카페인을 채워놓으니 몹시 졸립다.

카페인이 들어가면 비루한 몸뚱이라도 각성이라는 걸 좀 해야 할 것 아닌가. 너무 졸린 관계로 대충 아무 말이나 좀 떠들어보겠다는 이야기.


2. 20년 전 <타이의 대모험>이라는 만화책을 무척이나 재미있게 봤는데 이게 작년인가 <다이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으로 새로 나왔다. 원제가 <드래곤 퀘스트 다이의 대모험>인 거 같은데, 아무래도 '다이'의 어감이 좋지 않으니까 오래전에 '타이'로 이름이 바뀌어 나온 게 아닐까 싶다.


암튼 20년 전에는 너무 재밌게 봤는데, 이거 내 추억보정인지, 아니면 실제 재밌었던 건지 궁금해서 주말에 1권만 사서 보았는데, 재밌다, 재밌어. 추억보정은 아니었구나.


근데 만화 속에서 '타이밍'이라는 단어가 '다이밍'으로 쓰였다. 아마도 귀차니즘이 발동한 편집자가 20년 전 원고에서 '타이'로 쓰인 단어를 싸잡아서 '다이'로 일괄 수정을 한 게 아닐까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타이밍이 다이밍으로 쓰였을 리가. 다이밍이라니, 뭔가 다이와 타임이 합쳐져 죽어야 할 시기라는 단어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님)


심지어 2쇄인데도 '다이밍'이란 단어로 나와있다능.

편집자는 각성하라!

<다이의 대모험> 대원씨아이 편집자 보고 있나?

저랑 같이 각성하실래영?


3. 나는 원래 SNS에서 다소 우울한 톤으로 글을 쓰던 사람인데, 첫 책을 출간하고 나서, 어떻게 해서든 책을 좀 알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드니까능 몇 년 전부터는 우울을 벗고서 이런저런 주접을 떨면서 글을 올리고 있다. (주접을 떠는 것에 비해 책 판매는 형편없다.)


근데 인간이 언제나 주접을 떨 수는 없는 노릇이고 가끔은 원래 캐릭터 찾아서 다시 좀 담담하게 글도 쓰고, 얌전도 떨고, 우울해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문제는 한참 주접을 떨던 시기에 온라인 칭구가 된 분들이 담담하게 쓴 글을 보고서는 "아니 이경이경, 자네 무슨 일 있는가?" 하고서 적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분들은 내 글을 읽으며 기본적으로 유머를 기대하는 것인데, 나라고 언제나 웃길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걸 어쩌나, 저쩌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만담집이라도 하나 내봐야 하나 싶은데 모르겠다.


저, 실제로 만나면 되게 조용해요. 말 한마디 안 해요, 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서, 강제로 성격을 뜯어고쳐야 하나 싶기도 하고... 아몰랑.


4.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몇몇 이유가 있겠지만 문체만 놓고 보면 역시 다자이 오사무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글 쓰면서 나름의 반골기질이랄까, 작법서 같은 거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놈이고 저놈이고 맨날, 짧게 써라, 간결하게 써라, 단문으로 써라, 하는데 나는 그거 보면서 싫은데 싫은데, 나는 정신없게 길게 쓸건데, 블라블라 어쩌고저쩌고 궁시렁궁시렁 떠들어댈 건데, 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다자이 오사무의 문체를 흉내내기도 하고, 그러면서 또 여차저차 어기여차 하다 보니까능 손가락에 만연체를 장착하게 된 것이다.


<문장강화>를 쓴 이태준은 만연체의 단점으로 글이 만담화 될 수 있다고 지적했는데, 아니 그렇담 만담을 하기 위해선 만연체가 좋다는 뜻이잖아, 하고서 거꾸로 생각할 줄도 알아야 되겠다.


5. 페북에서 보여주는 스폰서 광고의 대부분은 글쓰기, 책 쓰기 관련 광고인데, 아주 꼴 보기 싫어 죽겠다... 페북생키야, 알고리즘 힘 좀 써봐라... 내 마음을 좀 알라달라규.


요즘엔 월 이천 번다는 한 에세이 작가가, 책 반드시 내게 해주겠다며, 책 못 내면 전액 환불해주겠다는 광고가 자꾸 뜬다.


책은 내가 알아서 낼 테니까, 월 이천 반띵 해주시면 앙대영?


6. 인스타처럼 맞팔 기능이 없는 곳에서는 출판 편집자들 그냥 팔로잉하고 피드 들여다보곤 하는데, 페북은 왠지 출판 관계자들 상대로 페친 신청할 때 자꾸만 멈칫, 주춤하게 된다. 며칠 째 '알 수도 있는 사람'에 한 출판 편집자가 뜨는데 페친 신청할까 말까 이럴까 저럴까 어쩔까 싶다.


7. 전체적으로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은 모두 '자의식과잉' 상태에서 쓰이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자기 검열을 하면서, 아, 이거 남들이 보면 좀 재수 없어 보이지 않을깡, 에잇, 부끄럽다, 올리지 않겠어! 지워야지, 했을 텐데, 요즘에는 머릿속에서 음, 심각하다 심각해,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역시, 아몰랑 하고서 올리게 되는 것이다.


8. '시간낭비'라는 독립출판사에서 이강원이라는 50대 아재가 <첫사랑 그때, 노래들>이라는 책을 냈다. 첫사랑과 관련하여 그룹 들국화와 동아기획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책이다.


아직 완독 전인데, 좋은 글인지는 모르겠고, 책을 읽으면서 주말에 '들국화'를 꺼내 들었다. 글을 읽고 음악을 찾아들었으니, 좋은 글인가.


주말에 들국화 라이브를 들었는데, 홀리스의 <히 에인 헤비, 히스 마이 브라덜>에서 "더 로드 이즈 로옹~" 하는 가사를 "길은 멀어~"로 개사하여 부르는 부분은 언제 들어도 좋다.


세상엔 다시 오지 않을 아름다움이 있으니 그중 하나가 젊은 시절의 전인권 목소리다. 인권이형이 멤버 소개할 때 멘트 치는 거 듣고 있으면 나는 그게 그렇게 좋더라. 드럼 치는 주찬권에게 '너 이가 왜 빠졌니' 묻는 거 말이야.


이제 찬권이형도 없고, 성욱이형도 없고, 덕환이형도 없고, 동아기획도 없고. 인권이형 목소리는 많이도 나이 들어서 젊은 시절의 날카로움도 사라졌다. 역시 생각하면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9. 향음악사 홈페이지 영업 종료를 맞아 마일리지를 소비하기 위해 마지막 주문을 했다. 엉엉엉.

근데 막 딱히 당장 사고픈 앨범은 없었는데, 뭐 살까 보다가...

검정치마 [굿 럭 투 유, 걸 스카우트!] 3인치 CD 9,500원이랑 아이유 5집 15,400원을 장바구니에 담아보았다. 도합 24,900원. 저기요, 25,000원부터 배송료가 무료인데요...


딱 백원이 모자르네. 이런 거 금액 정하는 거 누가 공부해서 정하는 건가. 어쩜 이럴 수가 있나 싶어서... 에바 캐시디의 [타임 에프터 타임] 앨범까지 추가해봅니다. 배송료 2500원을 아끼기 위해 16,000원을 더 지르는 향음악사의 호구. 3인치 CD 돌릴 플레이어도 마땅찮으면서도 일단 지르고 보는 호구.


여하튼 공식적으로 향음악사에서 마지막으로 주문하는 앨범은 이렇게 에바 캐시디가 되겠습니다. 너무나 그럴듯한 마지막 주문 아닌가. 고교시절 향음악사 가서 제일 처음으로 산 CD가 싸이프레스힐이었던 걸 생각하면, 마무리 주문은 아주 상큼 애틋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친구 둘과 함께, 야야 신촌에 향음악사라는 곳에서는 수입음반을 판대, 하면서 갔던 게 아직도 기억 생생인데, 인생무상이다. 으으.


향음악사, 할 때 '향' 하면 음향할 때의 그 향이지만, 나는 자연스레 향기 할 때 향이 떠오른다. 향음악사의 정식 매장, 홈페이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만, 그 향기만큼은 오래도록 남을...


땡큐 향음악사, 엉엉엉.


10. 지난여름에는 들국화의 <걷고, 걷고>를 들으며 산책하는 시간이 많았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산책이 용이하지 않아서 곤란하다. 따듯한 봄날이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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