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책의 3교를 보고 있다. 편집자와 작업하면 깨닫는 것도 많고, 반성도 하게 되고, 여하튼 좋은데, 그중 가장 좋은 점 하나를 꼽으라면, 편집자들은 글쓴이의 과한 유머를 잘 잡아준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감동을 주는 글보다 웃음을 주는 글이 훨씬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의 코드는 대개 비슷한 반면 유머 코드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인데, 글을 쓰다가 글빨이 좀 올라온다 싶을 때면, 깊은 생각을 하기 전에 손가락이 먼저 주접을 떨면서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과한 유머를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편집자는 활어회처럼 팔팔 날뛰는 나의 핏줄을 지그시 눌러주며 흥분을 가라앉혀 주는 것이다. 이보게, 작가 양반, 이따구 유머는 곤란하다구. 정신 안 차릴 텐가? 그러면 나는 무릎에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반성을 하게 되고 조금 더 괜찮은 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아아아아아아아.
글쓰기란 과거의 나를 반성하는 행위 아니겠는가.
근데 글을 쓰다 보면 글쟁이는 직감적으로 알기도 한다. 한 30 꼭지의 원고를 가지고 책 작업을 하다 보면, 몇 꼭지는 고쳐 쓰게 되기도 하고, 몇 꼭지는 덜어내기도 하고, 몇 꼭지는 아예 책에서 빠지기도 하는데, 글쟁이는 책에서 빠질 몇 꼭지를 어느 정도 미리 예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글쟁이는 출판사나 편집자의 포용력은 어느 정도일까 하면서, 부러 좀 과한 글을 던지기도 하는 것 같다. 가령 작가가 독자에게 '5'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편집자에게 까일 것 같다 싶으면 '5'보다 더 심한 '6'과 함께 '8' 정도의 이야기도 같이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편집자는 사실 6과 8을 모두 없애고 싶은데, 둘 다 없애면 속 좁은 글쟁이가 삐칠 게 확실해 보이므로, 8은 없애고, 6은 5 정도로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러면 작가는 목표 달성.
하지만 나는 이렇게 계산적이고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타다다닥 원고 쓰고 편집자에게 '짠!' 보여주고 편집자가, 이건 좀 과하군요, 하면 무릎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반성을 하게 되는 인간이랄까. 그렇게 책 작업하면서 이 꼭지는 빠지겠지, 이 꼭지는 무난하게 책이 되겠지, 하는 예상과 결과는 어느 정도 일치하는데 이게 어긋나는 경우도 간혹 있다.
가령 현재 3교를 보고 있는 책에는 '어쩐지 글이 매우 두서없습니다, 지금.' 하는 굉장히 메타메타한 문장이 있다. 보통 글쟁이가 두서가 없는 글을 쓰게 되면 고치고 고쳐서 두서를 잡아 책으로 내기 마련인데, 이렇게 스스로 두서없음을 이야기하는 문장이 과연 살아남아 책으로 될 수 있을까, 나는 조마조마, 두근두근, 이보게 작가 양반,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하는 피드백이라도 날아오면 어쩌나 싶었는데, 3교를 보는 동안 이 부분에 대해서 출판사에서는 단 한마디, 일언반구가 없으니, 두서가 없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글이 재밌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네?
아, 이거 원래 글쓰기 버튼을 누를 때는 이런 식으로 마무리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기승전책광고가 되었습니다. 담달에 네 번째 책이 나올 예정인데, 글에 얼마나 두서가 없는지, 그럼에도 어떻게 책이 되었는지, 확인을 좀 해봐 달라 하는, 네?
그럼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