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작가의 목소리>에는 '문인상경'이라는 사자성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꼭지 써두었는데요. 누군가 무명 글쟁이 이경은 사자성어 중 어떤 걸 가장 좋아하는가 물어보면, 엣헴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무병장수, 불로소득, 일타쌍피, 안마의자 모두 좋지만, 그중 최고는 문인상경이 아닌가, 하는 대답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말이지요.
뭐랄까, 가끔 다른 글쟁이를 보며 가지는 질투심과 시기심, 배아픔, 오장육부의 뒤틀림, 열받음, 기립성 저혈압, 비틀거림, 분노와 빡침, 증오의 감정을 느낄 때마다 아아 나란 인간은 왜 이리 대범하지 못하고 한심한가 싶을 때, 문인상경이라는 성어를 떠올리며, 아아 그래그래 이건 비단 나만의 잘못이 아니라, 글을 쓰는 인간들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인간들이다 하며 위안을 삼고서는 빌어먹을 안도감이 드는 것이다, 이겁니다.
그렇다면 무명 글쟁이 이경은 과연 누군가에게 그런 열받음을 접하느냐, 또 물으신다면 그 왜 sns의 잘생긴 멋쟁이 감성시인들, 단 몇 줄의 뻔하디 뻔한 이야기를 달밤 배경에 끄적이고는, 프로필에는 문인이니 시인이니 작가이니 롸이터니 올려놓고는, 공유나 인용이나 차용이나 사용이나 저장을 하려거든 자기에게 꼭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마치 저작권 협회 정회원이라도 되는냥, 얼토당토않은 자신감 빵빵의 메시지를 떠억하니 올려놓고는, 수백수천의 좋아요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아이구야 나는 a4 빡빡하게 두어 장을 써야만 겨우 독자 누군가를 한번 울릴까 말까, 웃길까 말까, 하는데 저 사람은 단 몇 줄의 간단한 글로도 잘도 저렇게 사랑받으며 살아가는구나 싶어서, 세상은 불공평하다, 이것은 조리에 맞지 아니한 일이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하지만 이걸 대놓고 드러내면 제 자신이 무척이나 찌질해 보일 것이 틀림없음으로, 보통은 뭐 아무렇지 않은 척, 배알이 꼴려도 꼴리지 않은 척, 그렇게 살아가지만 사실 속에서는 천불이 나고 있는 것이다, 아아 내 마음속에 하나의 꺼지지 않는 지옥불이 있어 섭씨 천도의 온도로 불타고 있구나, 싶은 겁니다.
나는 왜 이리 글솜씨가 부족한 것인가, 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내가 분명 저런 녀석들보다 얼굴은 못생겼지만, 글은 또 괜찮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저에게로 하여금 꾸준히 글을 쓰게 만들지 아니하는가.
질투는 나의 힘. 하지만 저는 결코 다른 글쟁이에겐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편집자나 독자.
한 편집자가 내가 아닌 다른 이의 글을 읽으며, 아아, 웃음이 난다, 아아, 울음이 난다, 하고 있으면 저는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다, 편집자님! 저는요! 저의 글은 어떻습니까! 따져 묻고 싶으며.
한때 저의 글을 좋아해 주던 독자가 새로운 작가의 글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독자님! 저는요!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 포겟-미-낫을 외치며 독자의 마음속에 아름답게 포장한 물망초 한 다발을 안기고 싶은 심정이다, 이겁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책 홍보.
일본의 국민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마음 흔쾌히 다른 사람 칭찬해보고 싶다, 하는 단카를 썼듯 저 역시 언젠가는 순수한 마음으로 다른 이의 글을 칭찬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내 마음의 평화가 우선이고, 역시 그럴려면 일단 내 책이 잘 팔려야 가능한 일이겠습니다.
마음 흔쾌히, 다른 글쟁이를 칭찬할 수 있도록 일단은 제 책을 읽어달라 이거예요. 엣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