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좁은 세계의 아이덴티티

by 이경


제목은 그냥 좋아하는 만화책에서 따와봄.


페북을 거의 안 하다가, 몇 달 전부터 좀 살려서 하고 있는데, 페북에서 제공하는 가장 재미난(?) 정보는 '함께 아는 친구'가 아닐까 싶다.


나는 항상 출판업계에 엄지발가락 정도 담그고 참방참방 물장난 치고 있는 수준이라고 말하는데, 그래도 최근 몇 년 간은 계속 이쪽 세계에 발을 들이려고 노력을 해서인지 요즘 페친을 맺는 이들은 다들 글과 관련된 분들인 것 같다.


근데 이제 출판 업계가 워낙 좁다는 말을 많이 들어오긴 했지만, 페북에서 제공하는 '함께 아는 사람' 정보를 보고 있으면 아, 이 세계는 진짜 좁구나 싶어 진다. 서로서로 거미줄처럼 연결이 되어 있는 느낌이랄까. 다들 스파이더맨이신가영. 뭐, 웹의 세계란 게 그러라고 만들어진 거 같긴 하지만.


여하튼 함께 아는 친구가 막 스물 넘어가는 분들 보면, 아 이분은 이 좁은 세계에서도 특히나 엄청난 인싸, 마당발이시구나, mbti 검사하면 'E' 나오시나영? 묻고 싶기도 하고, 함께 아는 친구가 적은 분들을 보면 아 선생님은 다소 소극적이고 내향적인 아싸이신가보네요, 싶어진다.


나는 친구 신청 버튼 누를 때 머뭇머뭇 주춤주춤 혹시나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싶어, 보통 페친 신청은 받기만 하는데 (제가 먼저 페친 신청한 거라면 제가 엄청난 호감을 보였다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사랑 고백할지도 몰라영.. ㅇㅇ) 이름이 이렇다 보니 나를 여성으로 알고서 페친 신청을 하시는 분도 계시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온라인에서 한참 댓글 주고받고 울고 웃고 떠들다가, 뒤늦게, 아니, 자네, 남자였는가? 하는 분들 종종 봐온 터라... 최장 6개월 정도 나를 여자로 알고 지내신 분도 계시다. 여하튼 오프라인 실친구 얼마 없는 현실 아싸로서 요즘 페친들이 좀 늘어나서 좋다.


본명 이경화가 너무 여성스러워서 화짜를 탈락시키고 책을 내고 있는데, 이경화나 이경이나 두 녀석 모두 무명인 것은 매한가지라 이름을 바꾼다고 이렇다 할 효과는 없는 것 같다.


책은 이경으로 냈는데, 페북에서의 이름은 이경화이니까 나를 뭘로 불러야 할지 고민이신 분들 혹여나 계시다면 편한 대로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경도 좋고, 이경화도 좋고, 그냥 못생긴놈이라고만 안 불러주시면 좋습니다. ㅇㅇ.


이경이라는 이름은 어쩐지 소설가들이 좋아하는 이름 같아서 그것도 좀 마음에 든다. 박완서, 정미경, 최은영의 작품 등에 등장하는 이름이기도 하니까. 물론 동명의 이름이 너무 많은 것도 조금은 불편하긴 하다. 같은 이름의 소설가 선생님도 계시고, 민주당 대변인 이경 씨가 백분토론에 나온 다음날에는 내 책 기사에 토론 연습이나 더 하고 나오라는 댓글도 달렸었다... -_-;; 이경 대변인님, 힘을 내주십시오...


책을 내고 전에 알지 못하던 새로운 분들과 많이 친구가 되었는데, 이분들이 이제 나의 프로필을 봐주시고는, 음, 이 녀석 책을 쓴 녀석이군, 그렇다면 작가라고 불러주어야 하나? 생각을 하시고는, 이보게 이작가, 하고 불러주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음 이분은 나를 모르셨을 텐데, 언제 보았다고, 또 어째서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시는 건가... 싶어 부끄러운 마음에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기도 하다. '작가'라는 호칭이 익숙해지려면 역시 책이 많이 팔리는 수밖에 없다. 책 사달라는 기승전홍보의 빌드업을 이런 식으로?...


여하튼 이 좁은 세계에서 아이덴티티를 지켜가며 열심히 물장구를 참방참방 쳐보도록 하겠습니...


아, 참고로 페북에서 제공하는 정보중 가장 무서운 건 '알 수도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가끔 깜짝깜짝 놀라는 사람들 튀어나오고 그런다. 예를 들어 거래업체 과장님이라든가...


------------------------------------------


며칠 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브런치에서 페북 이야기하는 사람, 나야 나...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