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좋아하고 따르던 형이 있었다. 내게는 음악 스승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음악들을 많이 소개해준 형이다. 지금도 즐겨 듣는 크리스-디-버그(Chris De Burgh)는 순전히 형의 추천으로 알게 된 뮤지션이다.
어느 날의 술자리였을까. 형은 나에게 자신의 누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누이가 자신의 매형과는 더 이상 살지 못하겠다며, 이혼을 말했을 때 딱 두 번을 말렸노라고. 그 후에도 이혼을 말하는 누이 앞에서 형은 말리지 않고 이유를 물었다고 했다. 매형과 같이 살지 못할 까닭이 무엇이냐고.
"사랑이 없어, 우리 사이에."
누이의 말에 형은 더 이상 말리지도, 묻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때 나는 겨우 스물두 해쯤의 삶을 지나고 있었다. 그땐 지금처럼 이혼이 아주 흔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오랜 부부들을 보면 사랑이 아니라 의리나 우정으로 살아간다는 농담도 하던데, 사랑, 그거 꼭 있어야 되는 건가 싶었다.
형의 누이 이야기를 들은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므로, 형의 누이가 어찌 살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제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 있을런지는.
권순일이 작사, 작곡한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를 들으면 그 어릴 적 형이 들려준 누이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다른 이유는 없이 그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사랑이 없다는 것. 그게 헤어짐의 전부라는 것.
헤어짐의 순간을 노래하는 가사는 이처럼 서글프면서도 서늘하다. 무엇보다 한때는 사랑했을 이의 눈물 흘리는 모습에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장면에는 둘 사이에 커다란 무관심 덩어리가 놓여있는 것만 같아 그야말로 이쯤 되면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싶다.
나 또한 살면서 몇 번의 무관심 덩어리를 만났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것을 원하더라도 그 무관심의 덩어리는 그 사람으로부터 나를 튕겨내었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는 기어코 이별을 만들어냈다.
스물두 해를 살고서 스무 해를 더 살게 된 나는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를 듣고서야 그 누이의 결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이 없어, 우리 사이에."
사랑이 없다는 것.
그게 누군가에겐 다른 어떠한 이유도 없이 헤어짐의 전부가 될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