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여섯 시 롯데디팔트먼트 지하 홍대개미덮밥집인가 하는 곳에서 포크슬라이스덮밥, 그러니까 얇게 썬 돼지덮밥이라는 것을 맛있게 처묵하고서 고작 한 시간쯤이 지난 오후 일곱 시 멸치국수를 처묵하였으니, 이건 그야말로 '연달아'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식사인 것이다. 처묵. 처처묵.
왜 노원에만 오면 이렇게 배가 고픈 것인가. 오늘은 일이 바빠 전략적으로 점심을 건너뛰었다는 추정 가능의 이유가 있겠지만, 다른 이유에서의 허기, 그래 이건 분명 또 다른 이유에서의 허기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허기란 무엇인가. 바로 책 판매에 대한 허기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이란 물건은 어찌나 신통방통 오묘기묘한 물건인지, 예스24의 판매지수 오름을 지켜보고 있으면 알라딘의 지수가 쑥 오르고, 아 그렇담 내 책은 알라딘에 잠재 고객이 많은 것인가 하고서 이제는 알라딘에 시선을 두고 있으면 그때는 또 예스24의 지수가 오르는 것이다. 알 수 없다, 책!
노원에 올 때마다 들르는 노원문고에는 봄을 맞아 핑크가 가득이다. 봄꽃이 흐드러진다. 보기 좋다. 근데 핑크 가득 매대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글쓰기' 매대로 운용이 되었던 곳이다. 아뿔싸 저뿔사 내가 한 발 늦었구나. 여전히 글쓰기 매대였더라면 내 책이 이곳에 놓일 수 있었을까.
그렇담 내 책은 노원문고 어디에 자리 잡았는가 하니 눈치도 없이 국내 수필 서가에 들어가 외로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으으으, 배신감이 몰려온다, 내가 노원문고에 쌓아둔 적립금이 얼마인데...(사실 얼마 앙댐. ^^)
노원문고는 출판사 명대로 책을 두어, 마누스 옆으로 마음산책에서 나온 박용만 전 회장의 책과도 붙어있다. 내가 책이나 쓰니까능 이런 재벌과 한 자리에 놓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박용만 회장과 나의 저치와 입장과 주머니 사정과 아무튼 간에 여하튼 간에 기타 등등은 하나같이 모두 다 천양지차, 무명의 글쟁이인 나에겐 서가행이 이토록 배고픈 것이다. 으으으으.
허기가 진다고 슬퍼할 수만은 없으니 예쁘게 책이 진열된 곳도 보자면 교보문고 울산점에서는 <작가의 목소리>가 주목 에세이 매대에 올랐다. 자리도 이 정도면 센타 정중앙 한가운데 베스트오브베스트가 아닌가. 나는 태어나 울산에 가본 적도 없거니와 이렇다 할 지인도 없는데 어째서 울산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인가, 이유 막론, 주목을 받든 주먹을 받든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여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랑해요 교보 울산.
영풍문고 여의도점에서도 여전히 에세이 신간 매대와 글쓰기 매대에서 자리를 잘 잡고있다. 알러뷰 영풍 여의도.
누군가 <작가의 목소리>는 어떻게 쓰신 거냐, 물은 적이 있어, 헤헤헤헤 가벼운 웃음과 함께, 아, 이건 말이죠, 그저 제가 잘난 척을 하고 싶어서 쓴 책입니다, 하고 대답을 하였다. 이런 대답을 하고 놓으면, 사람들 무명 글쟁이 이경 저놈 보소, 잘난 척하려 책을 썼다니 실없는 농담도 잘하네, 싶겠지만 실은 그게 농담이 아닌 것이다.
나란 인간 애초에 가볍기 그지없어서 베셀 작가가 된다면 잘난 척의 '척'을 떼내고 마음껏 어깨에 힘을 주며 뒷짐을 지고서는 엣헴 엣헴 다닐 생각인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허기가 몹시 지는 것이다. 으으. 스틸 헝그리...
생각하면 나는 그야말로 애매하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무명의 출간 글쟁이가 아닌가. 인터넷 서점 판매지수만 보더라도 그렇다. 수만수십만 판매지수의 숫자 속에서 날아다니는 베셀 작가가 보기에 겨우 몇 천의 숫자 속에서 일희일비하는 이경의 신세 우스워보일지 몰라도, 책을 내려는 작가 지망생, 혹은 자비출판 POD 출판 등으로 판매지수가 일백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들은 나를 부러워할지 모를 일이니 나는 그야말로 어중간하기 그지없는 애매하고도 모호하고도, 아 두 끼 먹어서 배아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