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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역열차를 읽었다

by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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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사망한 니시무라 겐타의 아쿠타가와 수상작 <고역열차>를 읽었다. 중3 때 아버지가 성범죄자라는 사실을 알고서, 등교 거부, 중학교를 졸업하곤 고등학교 진학 없이 가출, 그 후로는 막노동 aka 노가다를 하며 하루 벌어 하루 살던 이의 사소설이다.


<고역열차> 속 주인공의 이름은 '간타'


사소설이니 만큼 겐타가 간타고 간타가 겐타로 읽힌다. 간타든 겐타든 타타타든.


여하튼 간타는 위의 작가 소개와 같은 일을 겪었던 만 19세로 부두 하역장에서 노가다를 하며 하루 5천5백엔 정도를 벌어서는, 그마저도 매일 일하지도 않고, 하루 일 하면 하루이틀 놀고, 그렇게 게으름 떨며, 차비 정도 남을 정도로 돈이 떨어지면 그때부터 다시 노가다, 일용직으로 번 돈으로는 담배 사고, 술 사고, 딸딸이 치고, 가끔은 안마방 같은 곳에도 들르고, 특기로는 집세 떼먹고 이사하기, 여하튼 밑바닥 인생을 사는데, 어느 날 일터에서 동갑내기 남자를 만나게 된다.


중학교 이후 이렇다 할 친구가 없던 간타에게 동갑내기의 친구 비슷한 게 생겼으니 뭔가 인생이 아름다워지면 좋으려만, 간타는 자신을 둘러싼 열등감을 친절하기 그지없는 친구에게까지 내뿜는다.


친구의 여자친구와 함께한 술자리에서 대차게 술꼬장을 부리기도 하고, 밀린 방세를 위해 돈을 빌리는 민폐를 끼치기도 하고, 대학생 친구에게 중졸인 자신의 우월함을 보이려 부리는 수작이란 게 겨우 안마방 소개 정도인 그야말로 답이 없는 답답한 인물.


그러니까 이건 보고 있으면,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기본 이하 평균 이하 열등감 덩어리의 노가다 일기 되겠다.


그런데 이 노가다 일기라는 게 그렇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중학생에게 아버지가 강간범이라는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낙인이 되어 평생의 상처를 주었을 터..


간타든 겐타든 그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서부터 그의 인생은 밑바닥을 기게 되었으니, 보고 있으면 짜증스러우면서도 애잔하고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재미난 건, 이게 3인칭의 소설인데, 시종일관 간타를 한심하게 묘사하던 소설가가 어느 부분에서는 소설 속으로 개입하여 자신과 동일한 간타(겐타)를 감싸고도는 장면이 나온다. 이걸 보며 아아 감쌀 걸 감싸야지, 진짜 이 인간은 글러버린 녀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래절래...


글도 만연체로 쓰여, 내가 아는 이로는 다자이 오사무나 때로는 김승옥의 문체가 떠오르기도 한다.


<고역열차>를 다 읽고서 느낀 점은, 아쿠타가와에서는 잘도 이런 작품을 수상작으로 뽑았군, 하는 점인데 겐타도 자신이 상을 받을 거란 생각은 못해서 풍속점이나 가려다가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다는데, 축하해줄 친구도 연락할 사람도 없었다는 소감을 남겼다고.


실은 보면서 많이 찡했다. 으아아아, 하고서 목놓아 오열하진 않았지만, 간타든 겐타든 그가 가지고 있던 열등감 나에게도 어느 정도 있는 것이라, 낄낄낄 거리다가도, 슬퍼지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책 뒤에 붙은 한줄평만 봐도 그렇다. 아마존 독자의 왈, '아직 괜찮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라는 느낌이 들었다.' 라니. 인간들 모두 나보다 못한, 남의 불행을 보며 위안을 삼고, 평화를 얻고, 재기를 하려는 거구나.


인간들이란 사악하다.


그런 점에서 그래, 소설가란 무릇 이런 것이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고역열차>와 함께 실린 <나락에 떨어져 소매에 눈물 적실 때>는 사소설의 색이 더욱 짙어, 가와바타 야스나리 수상작 후보에 오르고서의 며칠 간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실력파 소설가로서 아무것도 모르는 편집자에게, 아무것도 몰라도 좋으니 무작정 대접받고 싶었다.'

하는 문장을 보면서, 나는 농담 삼아 에두를 만한 이야기도 겐타/간타는 그대로 표현했구나 싶다.


인정받고 싶다. 출판사의 청탁을 받아가며 소설가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 하는 겐타의 소설 속에 쓰인 마음, 결코 나와 다르지 않다.


<고역열차>는 10년 전 아쿠타가와 수상작으로 요즘 한국에서 이런 소설이 나온다면, 욕을 많이 먹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이야기가 사실과 같다면 겐타는 하루 다섯 갑의 담배를 태웠을 것. 노가다와 글쓰기, 술 담배로 절었을 삶을 생각하면 그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을 것.


그의 사망원인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병원에서 생을 달리했다고 하니, 그 마지막만큼은 길바닥에서가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추천을 하겠지만, 호불호는 극히 갈릴 작품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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