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덱스가 많은 책

by 이경


독서가는 보통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뉘는 거 같다.


책에 줄도 긋고, 색도 넣고, 접기도 하고, 침도 묻히고, 코도 묻히고, 그렇게 가열차게 공부하며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고 마치 새 책과 같이 보는 사람이 있을 텐데, 나는 전적으로 후자에 속한다.


그래서 그런가, 책을 하나 완독하고 나서도 기억에 남는 문장이라곤 단 하나도 없고 그저 아, 이 책은 좋았다, 아, 이 책은 별로였다 하는 느낌 정도만이 남는다. 책의 리뷰랄까, 독후감이랄까, 서평이랄까, 뭐 그런 거 남길 때만 겨우나마 책의 내용이 어느 정도 떠오르고 그렇지 않으면 대체로 느낌만 남은 채 모두 잊어버린다.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가사 전체를 외우는 곡은 또 거의 없어서, 그냥 머리가 안 좋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여하튼 아주 가끔, 잊기 싫은 문장이 있을 때 도그지어 aka 댕댕이 귀때기(Dog's Ear)라고 부르는 모서리 접기 정도만이 내가 책에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격적인 행위인 것이다.


책을 깨끗하게 읽어서 좋은 점이라면, 중고 서점에 내다 팔았을 때 최상 등급으로 책정될 수 있다는 것 말고는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중고 서점에서 책 팔아봐야 어차피 똥값이긴 매한가지라, 그냥 책에 줄도 좀 그어가며 공부하면서 보면 머리에 기억되는 것도 많을 텐데, 이상하게 책을 더럽히는 게 나는 좀 어렵다.


근데 인간이란 또 얼마나 간사한지, 남이 쓴 책을 볼 때는 이리도 깨끗하게 보면서, 내가 쓴 책을 누군가 읽어주었을 때 인덱스가 덕지덕지 붙어 있으면 나는 그게 또 그렇게 좋다.


아니, 미천하기 그지없는 한 인간의 생각을 활자화시켜 책으로 내었을 뿐인데, 뭘 그렇게 표시를 해둔 거죠, 하고서는 꼬치꼬치 캐묻고 싶을 정도다.


세 번째 책 <난생처음 내 책>의 원고를 투고하고서, 담당 편집자님과 처음 미팅을 하던 날, 편집자님은 나의 첫 책 <작가님? 작가님!>을 들고 오셨다. 책에는 여러 색상의 인덱스 표시가 되어 있어서, 자꾸만 대화 중에 묻고 싶었다. "편집자님, 뭘 그렇게 표시해두신 거예요?"


편집자님이 테이블에 인덱스로 가득한 책을 꺼내 놓았을 때부터, 아, 이 이분이랑 같이 책 작업을 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인덱스로 가득한 책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인덱스 하나에 호감 하나, 인덱스 하나에 호기심 하나가 생겨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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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책이라면 인덱스가 많이 붙는 게 좋을 거야.

가끔 생각이 나서 다시 한번 열어볼 수 있는 뭐 그런,



인덱스.jpg 어느 <작가의 목소리> 리뷰에 올라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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