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림에 대하여
누군가 이슬아의 장점으로 구린 걸 구리다고 말하는 것에 있다고 했다. 구린 걸 구리다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고도 쉬운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구린 걸 구리다고 말하였을 때, 누군가는 네가 뭔데 구림을 정의 내리느냐며 빼액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 구린 것과 그 주변으로부터 직접적인 공격의 대상이 될 수도 있으니 여간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정치, 종교, 젠더 등의 문제를 놓고 이야기할 때에는 보통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기 마련이고, 이런 주제를 놓고 어느 한쪽을 구리다고 말할 때는 구림을 지적당한 패거리로부터 다구리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글을 쓰는 이라면 누구나 명심하고 유의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명예훼손이니 뭐니 해서 소송을 불사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이란 제각각이고 좋은 것과 구린 것을 판단하는 것 역시 제각일 것이니, 자기가 생각하는 구린 것을 구리다고 말할 줄 아는 것에는 이렇게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슬아가 구린 걸 구리다고 말할 줄 알아서 팬이 많은 것인지, 팬이 많아서 구린 걸 구리다고 말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미움받을 용기가 없다 보니 평소에 구린 것을 구리다고 말하지 못하고 다니는 경향이 있다.
내가 평소 구린 걸 구리다고 당차게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장르는 음악 정도였다. 음악을 듣고 자란 시간이 오래되었고, 과거 꽤 오랜 시간 음악 웹진 등에서 글을 써오기도 했고, 누군가 이게 왜 구린 거죠? 하고서 묻는다면 나름 그 구림의 타당한 이유를 대고서 논리적 설명이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아몰랑'의 태도가 욕을 먹는 데에는 대체로 비논리의 바탕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리하여 평소 아무리 구리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어도 음악 말고는 구리다는 말을 안 하고 살아왔다. <작가의 목소리>에서 내가 생각하는 많고 많은 구린 것들도 '나라면 하지 않을 것들'이라는 소제목을 붙여 나름 돌려 돌려 말을 하였지만, 고백하자면 거기 적어 놓은 것들은 평소 모두 구리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다. 개중 구림 오브 구림, 대구림, 개구림, 왕구림, 절대적 구림을 꼽아보자면, 역시나 자비출판이다.
내가 자비출판을 구리다고 말할 때, 나를 공격할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해본다. 일단은 수많은 자비출판사들이 있겠다. 삶은 결국 제 밥그릇 챙기기 싸움이고 자신의 입장이 중요한 법이기에, 내가 자비출판사의 사장이라면 당장 이경의 손모가지를 분질러 놓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골다공증이 오지 않은 내 손목은 다행히도 아직 멀쩡하다.
다음으로는 이미 자비출판으로 책을 낸 사람들이 있겠다. 이경 저 자식이 내 삶을 무시하고 있다, 으으, 길거리에서 마주친다면 이경 네놈의 배때기를 쑤셔버리겠어, 하고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유감이지만 나는 지금 미움받을 용기를 채우고서 이슬아로 빙의가 되어 구린 것을 구리다고 말하고 있다. 내 배때기의 안위가 걱정되더라도 자비출판은 구리다.
이쯤에서 출판의 종류를 좀 알아봐야겠다. 크게 세 가지.
1. 저자의 비용이 하나도 들지 않는 출판사 기획출판.
2. 저자 스스로 글 쓰고 디자인하고 혼자서 책 하나 뚝딱 만들어내는 독립출판.
3. 저자가 글만 쓰고 돈 주고서 출판사에 책 만들어달라고 하는 자비출판.
일단 나는 1번의 형태로만 책을 내왔다. 정통적인 출판의 방법이며 출판사에 투고를 하거나 출판사의 청탁으로 책을 내오고 있다. 자비출판 구리다, 하는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기획출판으로 책을 냈으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두 번째 독립출판은 구린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나는 독립출판을 하는 이들은 하나하나가 아티스트의 성향이 있다고 믿는 편이다. 그들은 구림보다는 멋짐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종종 독립서점 등에 들러 이런저런 독립출판물들을 사서 보곤 한다. 어떤 독립출판 책들은 출판사의 눈에 띄어 기획출판물로 재탄생하기도 하고.
그렇다면 세 번째, 저자가 돈을 내고서 책을 내는 자비출판은 어떤가. 역시 구린 것인가. 자비출판의 목적에 따라 달라지겠다. 저자와 저자 주변 사람들이 간직할 기념용 자비출판물이라면 그걸 누가 구리다고 할 수 있겠는가. 가령 칠순을 맞은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에세이로 풀어써서 가족들에게 나누기 위한 책이라면, 그것 역시 구리다기보다는 오랜 시간 간직할 수 있는 아름다움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면 어떠한 자비출판이 구린 것인가. 바로 작가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자비출판. 자비로 책을 내고서, 아 드디어 책이 나왔습니다, 제가 이제 작가 지망생의 딱지를 떼어내고서 작가가 되었습니다, 하는 그 모습에서 나는 구린내를 맡는다.
꿈이라는 게 그렇다. 간절히 원하면서도 막상 이루어지면 허탈해지기도 하는 것. 그렇기에 사람들은 오랜 시간 이루기 힘든 꿈을 간직하고 살면서, 언젠가 이룰 그 꿈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원동력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의 꿈을 갖고 사는 많은 작가 지망생들은 자신의 꿈을 재빨리 이루기 위해서 자비출판이라는 유혹에 넘어가곤 한다. 그렇게 하였을 때 '작가'의 꿈은 이루어진 걸까, 혹은 깨어진 걸까.
자비출판이 구리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이다. 수십수백 곳의 출판사에 글을 보내어도 단 한 사람의 편집자만 설득할 수 있다면 기획출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자비출판은 그 어떤 편집자도 설득시키지 못한 글이라는 편견이 설 수밖에 없다. 내 글을 지지해줄 사람, 1과 0. 디지털의 세계가 1,0으로 이루어졌듯이 내 글을 지지해줄 수 있는 편집자가 있느냐 없느냐는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출판업에 관심을 가지고 오랜 시간 발을 담그고 있는 이라면 어느 정도 자비출판사와 기획출판사를 구분할 줄 알게 된다. 가끔 자비출판으로 책을 낸 사람들의 SNS를 보면 출판사의 로고를 가리고서 책 사진을 올리는 모습을 본다. 편집자를 설득시키지 못한 채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책을 내었다는 점에서 당당하지 못한 부끄러움의 발현이겠지. 그렇게 포토샵으로 출판사의 로고를 지우던 사람들이 지금 이 글을 본다면 역시 이경의 배때기를 쑤시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책에 당당하지 못한 이가 작가라고 할 수 있을지 되묻고 싶다.
'자비출판'이라고 딱 잘라 말하진 않아도 자비출판의 형태를 띠는 경우도 많다. 천만 원이 넘는 고액 책 쓰기 아카데미를 통해 책을 내는 일이나, 출간 후 저자가 수백 권의 책을 사야 한다는 조건의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면, 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자비출판이나 다름없구나, 아주 개똥망 같은 상황이구나 생각하면 되겠다. 요즘에는 기획출판이라기엔 뭣하고, 자비출판이라기에도 뭣한 '반기획출판'이라는 묘한 변이도 생겨났다. 출판사 사정이 워낙에 어려워서 초판 인세는 못주고 2쇄 때부터 인세를 주겠다는 정신 나간 출판사도 있다.
이슬아로 빙의되어 용기를 내어 말하자면, 하나같이 다들 구리다.
'작가' 소리 듣는 거 말고, 진짜 작가가 되어서 오래오래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다면, 힘들 때마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자비출판의 유혹을 이겨내어 한 사람의 편집자라도 설득하길 바란다. 0과 1은 한 끗 차이 같지만, 그 한 끗이 어마어마하게 크다. 때로는 이뤄지지 않는 꿈을 계속 가지고 사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 그냥 책 하나 내고서 당장 '작가' 소리 들으며 잘난 척하고 싶으시다면야, 그렇게들 하시고.
덧) 자비출판으로 낸 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가. 언제나 구림만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원작 소설은 자비출판한 이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자비출판하여 성공을 바랄 바에야 주말에 사놓은 로또 당첨을 기대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