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얼웅얼... 중얼중얼... 220427

by 이경


1. 어제는 집에서 책을 전혀 읽지 못했다. 흔한 일인데 무얼, 새삼스레.


2.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에 나오는 '사랑, 이라고 썼더니 그 뒤로 쓸 수가 없었다.' 하는 문장을 좋아한다. 단어 하나를 떠올리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쓰려다가도, 너무나 많은 감정들이 내 안에서 휘몰아쳐서 더는 쓸 수 없게 되는. 감정이 이성을 심하게 앞질러서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


다자이가 낭만적으로 써서 그렇지, 이런 상황을 현실에 비추어 비낭만적으로다가 말하면 단순히 '글럼프'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음악 에세이 원고를 쭉쭉 써야 하는데, 나름의 글럼프일까.

트랙을 선곡하고는 그 뒤로 쓸 수가 없는 요즘이다.


뭐라도 타이핑하다 보면 다시 원고지로 가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며칠만 웅얼웅얼, 중얼중얼, 메모 같은 짧은 이야기들을 써보면 어떨까 싶다. 그냥 콤푸타 켜놓고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떠들어대겠다는 말.


3.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읽기 전에는 이게 당연히 '거절'을 뜻하는 사양인 줄 알았는데, 해질 무렵의 해를 뜻하는 '사양'이었다. 그러니까 '사양산업'할 때 그 사양.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말하는 사양산업으로는 역시 출판업이 있겠다.


출판업을 가리켜 사양산업이라고들 할 때, 아아, 나는 저무는 해를 따라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4. 잠들기 전 밤에는 야구 하이라이트 방송을 보고는 하는데, 어제 NC다이노스의 용병 투수 '루친스키'가 원정 유니폼을 챙기지 않아, 같은 팀 동료 '파슨스'의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야구선수가 유니폼을 챙기지 않았다니, 흔히 말하는 '너는 전쟁 나가면서 무기도 안 챙기느냐.' 하는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학창 시절 체육시간에 체육복을 빌려주기도 하고, 빌려 입기도 했을 텐데. 한여름 이런 일이 있으면 누군가는 땀에 절은 체육복을 입어야 했다. 그때는 다들 친구였고 어려서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이제는 생각만 해도 몹시 찝찝하네. 루친스키는 파슨스에서 유니폼을 세탁해서 돌려주었을까?


5. 사람마다 생각이 각자 달라서 이에 따른 생각도 다르겠지. 어떤 이들은 유니폼을 빌려 입었으면 당연히 세탁을 해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테고, 어떤 이들은 옷은 그냥 돌려주고 세탁비를 준다든지 밥을 한 번 산다든지 하는 이들도 있을 테고, 어떤 이들은 잘 입었어, 고마워! 하고서 말로만 때울 수도 있을 거다.


각자가 생각하는 '염치'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겠지. 살면서 '염치'라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6. 최근에 나온 책 중에 가장 좋은 제목으로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였다.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제목만큼은 백 점짜리 책이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제 MBC PD수첩에서는 전장연의 시위 등을 다루었다.


7. 어제 산책을 하는데 노인 하나가 마이크를 잡고서 특정 종교를 믿으라며 나름의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다. 노인 앞에는 커다랗고 빨간 글씨로 '멸공'이라고 쓰여있었다. 종교와 어떠한 사상이 결합되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그 관계를 생각하다가 조금 뜨악하다.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는 그 노인의 멘트가 인상적이었다.


"여러분, XXX 믿으시고 천년을 사세요, 만년을 사세요, 억만년을 사세요."


가끔 <한오백년>을 들을 때 사람의 삶이 오백 년 정도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는 하는데. 억만년이라니, 그건 정말 지루해 죽을 숫자군 싶었다.


8. 어제 EBS에서 작가 줄리언 반스가 나왔다. 줄리언이라는 이름만 생각하면 남자라는 생각이 들지만, 뒤에 붙는 반스의 어감 때문이지, 줄리언 반스라고 하면 나는 어쩐지 여성 작가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오랫동안 줄리언 반스를 여성으로 알고 지내기도 했다.


학창 시절에는 '김영랑'이 여성인 줄 알았고, 성인이 된 후로 '김연수'가 여성인 줄 알았다. 줄리언 반스와 비슷한 느낌으로 '록산 게이'가 남성인 줄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줄리언은 누굴까. 줄리언 레논이 아닐까. 비틀스 <Hey Jude>의 주인공, 그 줄리언.


9. 줄리언 레논의 아버지 존 레넌은 <Imagine>을 통해, 천국도 국가도 종교도 없는 모습을 떠올려보라고 했다. 특정 종교와 친미, 혹은 반공, 멸공 등이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존 레넌이 어지간한 신보다 포용력이 넓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0. 이렇게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아무 말도 타이핑하다 보면 하루에 a4 석 장은 나오지 않을까. 20일만 떠들면 책 한 권 분량이 나오겠군 싶다. 유명 작가라면 이렇게 아무렇게나 떠드는 글로도 책이 나올 수 있겠지.


한 자기계발서를 쓴 이는 자신의 책을 5일 만에 썼다는 걸 자랑삼아 얘기했다. 어이구, 그러셨어요. 우쭈쭈 해드릴까영. 대단하시네영 정말. 살면서 '염치'라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사람들이 염치가 좀 있어야지.


11. 학창 시절 작가 김영랑을 여성으로 생각한 데에는 동창 중에 동명의 여자 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랑과는 중학교 시절 같은 학원에 다녔다. 피부가 몹시 하얀 아이였다.


12. 사람들은 글을 쓸 때 어떤 표정을 지으며 글을 쓸까. 재미난 문체로 글을 쓸 때는 낄낄낄 웃으면서 쓰는 걸까. 서글픈 이야기를 쓸 때는 눈에 눈물 가득 머금고 쓰는 걸까.


나는 대체로 무표정이다. 웃기다 싶은 글을 쓸 때도, 슬프다 싶은 글을 쓸 때도.


<난생처음 내 책>에서는 한 편집자에게 이런 글을 띄었었다.


저는 담백한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담담하게, 때로는 무미건조에 가까운 그런 글을, 저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하지만 담백한 글이라고 해도 글 안에 있는 이야기마저 담백한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는 글쓰기 이전 경험했던 수많은 절망과 눈물이 있습니다. 감정의 격동이 있습니다.

저는 눈물이 모두 메마르고 나서야, 눈물을 흘리던 시간을 조금씩 꺼내어 담담하게 글을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난생처음 내 책> 中에서.


다자이 오사무가 사랑, 다음에 쓸 수 없다고 했듯이, 내가 음악 에세이 쭉쭉 써내지 못하는 것도 아직은 마음이 덜 담담해져서 그런 걸까 싶기도 하고.


13. 그나저나 <난생처음 내 책> 오디오북이 나오면 정말 재밌겠다. 어떤 식으로 읽힐지.


14. 여전히 담담한 글쓰기, 무미건조에 가까운 글쓰기를 가장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목소리>는 평소 추구하던 글쓰기와는 완전히 반대 지점에 있는 글이 아닐까 싶다.


가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구분하기란 쉽지가 않다. 사람들은 나의 어떤 글을 좋아해 주는 걸까.


흔히 말하는 '각 잡고 글쓰기'는 대체로 책을 목표로 하는 한글 프로그램에서 이루어진다. 그 외의 것들. 가령 인스타, 페이스북, 브런치 등에서 쓰는 글쓰기는 아주 깊은 고민 없이 그저 손가락이 가는 대로 두들기는 거지 뭐.


<작가의 목소리>를 쓸 때만큼은 sns에서 쓰던 주접 문체로 썼다. 너무 가볍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의외로 재밌어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내가 쓰는 글 중에서 어떤 글을 좋아해 주는 걸까...


15. <난생처음 내 책>은 담담하게 시작한 문체가 뒤로 갈수록 발랄해진다. 첫 파트와 마지막 파트의 톤이 많이 다른 책이랄까.


<난생처음 내 책>의 담당 편집자님과 첫 미팅을 할 때, 편집자님은 "원고를 다 읽고서, 다시 처음부터 읽었을 때 앞부분이 되게 차분하더라고요." 하는 말을 해주셨다.


편집자님이 말해준 그 이야기가 어쩐지 나는 좋았다.


16. <작가의 목소리>가 나온 지 50일이 지났다. 영풍문고 종각지점 신간 에세이 매대에 있던 책은 바로 서가로 들어가지 않고 '인생 에세이'라는 매대로 들어갔다. 지난 주말 서점에 들러 어떤 책들과 붙어 있는지 보았는데 그 면면이 화려하다.


이시형 박사, 김형석 박사, 시인 최승자, 피천득 등의 책과 함께 <작가의 목소리>가 놓여있던 것이다. 매대 위로는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멘토의 말'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아, 멘토라니. 나는 멘토가 아닐진대 어째서 이런 분들과 인생 에세이 매대 위에 오르게 된 걸까. 서점 MD님에게 부끄럽고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영풍 종각지점에서는 책이 나오자 인스타그램에서 책을 소개해주시기도 했고, 오랜 시간 신간 에세이 매대에 책을 놓아주기도 했다.


<작가의 목소리> 바로 옆에는 최승자 시인의 에세이가 놓여있었다. 담백한 글쓰기를 추구하던 내가 능청을 떨며 글을 쓰기 시작한 데에는 작가 지망생 시절 읽었던 최승자 시인의 자서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최승자 시인의 책과 같이 놓여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조금은 꿈결 같은 일이다.


17. 드라마를 잘 안 보는데, <우리들의 블루스>, <나의 해방일지>는 조금씩 보고 있다. 우리들의 블루스가 더 좋다는 사람들도 있고, 나의 해방일지가 더 좋다는 사람도 있어서 그 각각의 반응들을 보는 게 재밌다.


특히 <나의 해방일지>는 드라마 속 '추앙'이라는 단어가 나오면서 호와 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거 같아서 흥미롭다. 나는 '추앙'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마치 순문학, 순문학이라는 단어가 좀 웃기긴 하지만 순문학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재밌었다.


취향으로만 따지면 나는 아무래도 <우리들의 블루스> 쪽이다. 처음에는 옴니버스 드라마인 줄도 모르고, 아 차승원이랑 이정은이 주인공인가 보네 하고서 보다가, 갑자기 이병헌이 몸빼바지를 입고 나와서 놀라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옴니버스 영화도 좋아한다. <러브 액츄얼리>,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같은 영화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특히 좋았던 건 OST로 <Quando, Quando, Quando>가 너무 절묘하게 쓰였다는 점이다. 어릴 때 이 곡을 들었을 때는 <관둬, 관둬, 관둬> 하고서 읽었다. 나는 분명 어느 홍콩영화 OST로 들었던 기억인데, 사람의 기억력이란 까먹으라고 존재하는 것이므로 아닐 수도 있겠다.


OST 외에는 차승원이 바다에 들어가는 장면이 좋았다. 젊은 청춘의 재기 발랄함을 모두 잃은 중년의 서글픔이 이 차승원의 표정에서 묻어 나와 보면서 많이 울컥했다. 텅 비어버린 눈동자.


18. 산과 바다 중에 고르라면 산이다. 수영을 못하기도 하고, 물과 바다에 무서움을 느낀다. 그런데도 죽어가는 사람들은 왜 다들 바다로 가는 걸까.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지는 차승원을 보면서 느꼈다. 절망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 넓은 바다에서 따뜻함을 느끼기도 하는 걸까.


영화 <낙킹온헤븐스도어>의 두 주인공들도 죽음을 앞두고 바다로 향한다. 하나는 뇌종양이고 하나는 백혈병이었나. 아주 어릴 적 영화를 보면서, 바다라는 게 죽음을 앞두고서 마지막으로 봐야 할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인가, 저 사람들은 죽을병에 걸리고 잘도 담배를 태우는군 싶었다.


여러 버전의 <Knockin' On Heaven's Door> 중에 가장 좋아하는 버전은 밥 딜런이 아닌 건스앤로즈 버전이다. 스무 살이 넘어, 친구와 망상 해수욕장을 향하던 밤, <Knockin' On Heaven's Door>를 들었다.


19. 담배를 끊은 지 1년이 넘었다. 창작의 힘은 담배로부터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날도 있었는데, <작가의 목소리>는 담배 없이 썼다.


20.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 제주도에 가고 싶어 진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는 '무사(왜)'가 아닐까 싶다. 요조가 운영하는 책방 무사의 무사가 이 무사였던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책방 무사는 제주도에 있으니까.


요조가 처음 요조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때, 나는 당연히 요조숙녀의 요조인 줄 알았다. 훗날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의 주인공 오바 요조에서 따왔다는 걸 알고서는 요조가 조금 달리 보이기도 했다.


요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전에는 '메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고, 그 전에는 '수진'으로 불렀다. 수진과는 20대 초반 스튜디오에서 두어 번 만나기도 했다. 수진은 나를 기억할까.


영풍종각.jpg 영풍문고 종로본점 인생 에세이 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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