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얼웅얼... 중얼중얼... 220428

by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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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책을 하면서 모교를 지나는데 재미난 현수막 문구가 보였다.


'가까이 보아야 예쁘다 과학도 그렇다'


나태주의 시를 인용하면서 과학중점학교라는 것을 알리는 현수막이었다. 그야말로 이과와 문과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문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KBS의 드라마 <너에게 가는 속도 493KM>의 단어 선택과 표기가 모두 글러먹었다는 이과 선생님, 어르신들의 잇따른 지적에 인터넷에서는 소소한 논쟁이 일었다. 이과 선생님, 어르신들의 날카로운 지적에 따르면 km는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이기 때문에, 이렇게 쓸 경우 속도라는 단어부터가 글러먹었다는 이야기이다.


저명한 과학자들이 이런 걸 지적하면 나는 이게 이과 선생님들이 웃자고서 펼치는 나름의 유머인지, 아니면 정말 진지하게 하는 문제제기인지 조금 헷갈리기도 한다.


2. 모교를 지나며, 모교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무엇이든 극단으로 치닫는 이들의 주장을 경계하곤 하는데, 가령 래디컬 페미니즘을 신봉하는 이들 중에서는 '부모'를 '모부'로 쓰자거나, '남녀'를 '여남'으로 쓰자는 이들도 있다. 남배우, 남가수, 남간호사 같은 단어는 쓰질 않으니 여배우, 여가수, 여간호사 같은 단어도 모두 글렀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 주장을 접할 때, 나는 '모교'나 '모국어', '모기업' 같은 단어들을 생각한다. 단어의 어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라는 인간 자체가 어머니로부터 나왔기에 '母'라는 단어에는 비유의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부모를 모부로 바꾸자는 주장을 접하면서, 반대로 '부교'나 '부국어', '부기업'으로 바꾸자는 헛소리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요새 뉴스 등을 보면 '유모차'를 '유아차'로 쓰기 시작하는 곳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어떤 단어들은 변하고 어떤 단어들은 살아남는다. 어떤 어머니의 단어는 괜찮지만, 어떤 어머니의 단어들은 사라진다.


3. 결은 조금 다른 듯하지만 1번과 2번은 모두 단어의 겉모습을 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과학자의 시선, 페미니스트의 시선, 문돌이의 시선.


4. 모교를 지나 오랜만에 한강둔치를 걸었다. 코로나 거리두기가 사라지면서 평일 대낮인데도 사람들이 많이 몰려다닌다. 삼삼오오라는 단어가 이처럼 어울리는 모습이 있을까. 셋이서, 넷이서, 다섯, 여섯의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서 이야기를 나눈다. 대부분은 이십 대의 젊은이들이었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제법 보였다. 나는 그 모습들이 조금 부러웠다.


5. 한강 잔디밭을 지나 마포대교 아래 벤치에 앉아 강 너머의 풍경을 한참 바라보았다. 바람이 시원했다.


6. 문학이든 음악이든 대부분 예술의 주된 소재와 주제는 '사랑'이다. 어릴 때, 그러니까 십 대 시절의 나는 십 대나 이십 대의 젊은 사랑 이야기만이 아름답다고 여겼다. 삼사십 대 혹은 그 이후의 사랑이야기라고 해봐야 늙고, 힘 빠지고, 불륜에 가까운 지저분한 이야기밖에 더 되겠는가 싶었다.


생각하면 치기였다.


7. SNS에서 무언가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은 사람이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스타든, 페북이든 좋아요를 잘 누르지 않고 다녔다. 내가 너의 글을 읽고 있다, 내가 너의 사진을 보고 있다, 하는 걸 남기고 싶지 않기도 했고.


그러다가 책을 내면서 여기저기에 부러 좋아요를 누르고 다니곤 한다. 누군가를 향한 호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 여기 있어요, 하는 존재의 부각을 위해 좋아요 버튼을 쓰기도 한다.

가령, 영향력 있는 서평가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서, 이 사람이 내 책을 읽어주었으면, 그러고선 책이 좋다고 이야기해주었으면, 하는.


가끔 이런 행운을 바라며 산다는 게 느껴질 때 지리멸렬함이 몰려오고 공허해진다.


8. '공허, 나의 기본 원칙, 공허, 나의 애인'이라고 쓴 페터 한트케의 문장을 사랑한다.

페터 한트케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9. 최근 브런치에 올리는 글을 보고서 누군가 혹시 글태기가 온 것이냐고 물었다. 글태기라고는 생각해보질 않았다. 오히려 하고픈 말이 많아서가 아닐까. 회사 일만 하더라도, 해야 할 일이 하나둘셋넷다섯여섯이 있다면 차례차례 해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쯤이야 일을 몰아서 하곤 한다.


그러니까 나는 해야 할 게 너무 많을 때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아예 손을 놓아버리는 타입이랄까. 머릿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서인지 요즘에는 아무것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며칠간은 이렇게 떠오르는 대로 뱉어보는 걸로.


10. <작가의 목소리>에 우리말은 조사가 중요하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단어가 변하면서 조사가 바뀌기도 하고, 조사가 변하면서 단어가 바뀌기도 한다.


최근 브런치에서 한 분을 알게 되었는데 일찍이 귀촌을 하신 분이었다. 오늘 그분이 쓰신 글을 읽었는데 문장 하나를 요약하자면,

'작년에 고추 300포기를 심었다가 올해는 100포기를 줄였다.' 하는 문장이었다.


글은 독자에게 때로 산수 문제를 주기도 하고, 사회 문제를 주기도 하고, 예술 문제를 주기도 한다.

이 문장은 산수적인 문제를 독자에게 안겨주는데, 문장 안에서 '300 - 100 = ?' 하는 질문을 독자에게 안기는 셈이다.


'작년에 고추 300포기를 심었다가 올해는 100포기를 줄였다.'라는 문장을 나라면,

'작년에 고추 300포기를 심었다가 올해는 200포기로 줄였다.'라고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숫자가 변하면서 조사도 같이 변했다.

이걸 독자가 받아들이는 산수 문제라고 생각하면, '300 - x = 200' 하는 방정식이 된다.


누군가는 글을 쓸 때 정확하게 설명해서 쓰라고도 한다.

'작년에 고추 300포기를 심었다가 올해는 100포기를 줄여서 200포기를 심었다.'라는 문장을 쓰게 된다면 독자에게는 '300-100=200'이라는 문제와 답을 모두 안겨주는 셈이다. 친절한 문장일지언정, 아무리 간단한 산수라도 독자의 생각할 시간을 거세한다는 점에서 재미는 없는 문장이다.


100, 200, 300 등 간단한 숫자로 이루어진 문장이지만, 이런 조사와 단어를 잘 이해하고 읽을 수 있느냐를 놓고 우리는 '문해력'이라고 부른다.


11. 요즘은 문해력이 떨어지는 독자를 만나는 일이 가장 두렵다.


12. 어릴 때는 십 대, 이십 대의 젊은 사랑만이 아름답다고 여겼다. 그런 생각이 치기였다고 해도 사십 대의 결혼을 한 내가 누군가를 향해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면 그건 좀 곤란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몇몇 독자에게서 사랑과 비슷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이해해주고 알아주었을 때.

내가 쓴 글을 좋아해 주고 응원해주었을 때.


13. <작가님? 작가님!>은 작가 지망생과 한 작가의 이야기를 다룬 자전적 소설인데 이 책을 읽은 누군가는 내게 실제 그 작가를 이성으로도 좋아했던 게 아니었는냐고 묻기도 했다. 내가 편집자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 누군가는 그 편집자를 좋아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누군가에 대한 글을 쓸 때, 나는 그 사람에게 푸욱 빠져버리고는...


언젠가는 내 글을 좋아해 주는 독자에게 푸욱 빠져 그와 관련된 글을 쓸 수도 있을까.


14. 페이스북에서 서로서로 알고 지내는 어떠한 집단을 보면 나는 어쩐지 심술이 난다.


15. 일본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이시카와 다쿠보쿠다.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빈센트 반 고흐처럼 살아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죽고 나서야 이름을 떨쳤다. 평생 글을 쓴다면, 그런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살아서 히트작을 내기.

2) 죽고 나서야 히트작을 내기.

3) 살아서도 죽어서도 히트작은 실패.


3번은 끔찍하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3번의 삶을 살겠지.

이시카와 다쿠보쿠나 반 고흐는 2번이다.

내게 2번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나에게 축복일까, 불행일까.


16.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서 부러웠던 장면 하나는 돈이 필요한 차승원에게 이정은이 2억을 이체해준 것. 현금으로 2억을 가지고 있는 이정은도 부러웠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2억을 이체해준 이정은의 담대함도 부러웠고, 그런 친구를 둔 차승원도 부러웠다.


당장 내가 누군가에게 2억은커녕, 이천, 아니 이백만 원이라도 빌려달라고 하면 흔쾌히 빌려줄 수 있을 사람이 있을까 떠올려보았더니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아, 그렇다고 내가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겠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주요 스킬 중에 하나는 빌려주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돈 빌려달라는 편지를 잘 썼다는 점이다. 이시카와 다쿠보쿠는 대체 어떻게 글을 쓴 걸까.


17. <작가의 목소리>와 관련하여 한 기업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글쓴이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그러니까 북토크 비슷한 제안이다. 책을 알리기 위해서는, 또 출판사를 생각해서는 해야만 마땅하겠지만, 선뜻 하겠습니다, 하는 답이 나오질 않았다.


살아서 히트작을 내려면, 이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냉큼냉큼 해야만 마땅하겠지만.


18. 요즘 슈퍼에서 '고추 부각'과 '다시마 튀각'을 사 먹었다. 제품 겉봉에는 칼슘 영양 간식이라고 쓰여있었지만, 나트륨 성분을 읽은 와이프는 불량 식품이라고 못 박았다.


나는 '부각'과 '튀각'의 차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19. 한 은행 안내장을 받았는데 '항상 저희 은행을 아껴주셔서~' 하는 문장이 있다. 원래 이 문장을 똑바로 쓰려면 '항상 우리 은행을 아껴주셔서~'라고 써야 마땅하겠지만, 시중 은행 중에 '우리 은행'이 있으니 이렇게 '우리'를 '저희'라고 쓰는 것이 아닐까 싶어졌다.


요즘 아이유가 우리 은행 광고를 하던데.


20. 올해 페이스북 친구를 맺게 된 한 분은 몸이 좀 불편한 분이다. 휠체어를 타는 분이고, 타이핑하는 것도 쉬워 보이진 않는데, 올리는 글마다 문단의 줄 수가 비슷해서, 내용은 차치하고 보고 있으면 그 형식이 아름답다. 글 내용도 좋고.


나도 한글 프로그램, 그러니까 책을 목표로 하는 글을 쓸 때는 될 수 있으면 한 문단에 세 줄에서 다섯 줄로 쓰려고 한다. 세 줄 미만은 짧게 느껴지고, 다섯 줄이 넘어가면 너무 길어 보인다.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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