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벗는 날

by 이경



1.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날이 왔다.


2. 거리의 사람들을 보니 마스크 벗어도 되는 날이 왔어도 대부분 쓰고 다닌다. 벗을까 말까, 저 사람이 벗으면 나도 벗어야지, 하며 눈치 보는 사람도 있을 것 같고, 습관적으로, 혹은 쓰다 보니까 감기도 안 걸리고, 코로나 감염자도 여전히 많이 나오고 하니까 그냥 써야지 하는 사람들도 많은 거 같다.


3. 실제로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코로나 시대 이후 동네 내과, 이비인후과가 많이 폐원했다는 기사를 언젠가 읽었다. 병원에서는 사람들이 좀 돌아다니면서 감기에도 걸리고 해야 할 텐데, 마스크 쓰고, 개인 청결에 신경을 쓰고, 집콕 생활이 늘어나면서 감기 환자가 줄고 동네 병원이 힘들어졌다는 이야기.


4. 법의 궁극적인 목적이 법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듯이, 많은 것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다 사라지기 위함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 아픈 사람이 없어서 병원이 문을 닫게 되는 세상은... 좋은 걸까?


5. 요즘은 TV에서 마스크 광고도 종종 나온다. 그게 수지가 맞을까. 마스크 몇 장을 팔아야 그 광고비를 뽑을 수 있을까.


6.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날이지만, 벗지 않고 있다. 거리의 사람 대부분이 벗고 다니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쓰고 다니지 않을까. 그게 어떤 이유에서건.


7. 어릴 적엔 '마스크'라는 단어를 들으면 짐 캐리의 영화가 떠올랐는데, 이제는 코로나와 거리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코와 입과 턱을 가린 채 눈만 둥둥 떠다니는, 조금 서글픈 풍경.


8. 빌리 아이돌(Billy Idol)의 <Eyes Without A Face>를 사랑한다. 그냥 눈만 둥둥 떠다니는 거리를 그려보면 빌리 아이돌의 음악 떠오른다는 뜬금없는 이야기.


9. 맨 얼굴과 마스크를 쓴 얼굴 중, 어떤 얼굴이 더 괜찮아(?) 보이는가, 하는 조사에서 마스크를 쓴 얼굴이 더 신뢰 간다는 짧은 영상을 보았다. 다른 말로는 마기꾼이 많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고, 다른 말로는 사람들의 '눈'만큼은 아름답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나는 애초에 눈부터가 동태의 그것처럼 머-엉하니, 못생겨서 마기꾼 소리를 듣진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남아있는 못생김을 가려준다는 점에서 마스크를 쓰는 게 이제 더 편하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쪽이 더 신뢰가 간다고 하니 신뢰를 위해서라도 벗을 이유가 없다.


10.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그저 작가의 글만 볼뿐, 얼굴이나 사생활 따위 궁금치 않은 사람도 있을 테고, 어떤 사람은 작가의 얼굴이나 목소리, 키와 몸무게, 사생활 등을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는 174/80 약간 돼지인데요. 혈압 수치가 아니고 키와 몸무게가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글을 쓰는 인간이 독자를 볼 때도 마찬가지일 텐데, 나는 내 책(글)을 읽어주는 독자분들이 어떤 얼굴일지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상상으로 그들은 대개 천사와 같은 아름답고도 인자한 얼굴로 내 글을 읽고 있다. 나 누군가에게 천사처럼 보이고 싶다, 하는 분들이 있다면 제 책을 읽어달라는 이야기입니다.


11. 보자보자. 5월 2일은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날이면서 <작가의 목소리>가 나온 지 두 달이 되는 날이다. 3월 3일에 책이 서점에 풀렸으니까. 책 출간 두 달이 될 동안 교보문고 광화문 에세이 평대에 아직 누워있는 게 자랑. 제가 지금 자랑을 하고 있으니까 다들 부러워해주시길 바랍니다. 네?


광화문 교보에 두 달 정도 책 남아 있는 게 뭐 자랑할 만한 일이냐 싶으신 분들 많겠지만, 이명박으로 빙의하여 말하자면, 제가 해봐서 아는데, 이게 참 쉽지가 않은 일이다... 하아. 그러니 자랑할 때 부러워해주세요들.


12. 밀리의서재에 들어간 <작가의 목소리>는 여전히 완독률이 6~70%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거 같다. 사놓은 책의 5%도 완독을 못하는 나로서는 굉장히 높은 숫자가 아닌가. 아니, 10명 중에 6~7명이 내 책을 끝까지 다 읽는다고? 왜애애애?


그만큼 제 글이 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술 잘 읽힌다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네? 계속 자랑하고 있는 거니까 계속 부러워해주세요. 빨리빨리.


13. 최근 <작가의 목소리>와 <난생처음 내 책>을 연달아 읽어주신 몇몇 분들의 피드백이 비슷해서 재밌다. 어떤 책을 먼저 읽었느냐에 따라 나의 이미지가 확 바뀌는 거 같기도 한데, 공통의 의견으로는 두 종의 책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는 피드백이다.


<작가의 목소리>가 조금 장난스럽고 수다쟁이 같은 모습이라면, <난생처음 내 책>은 진지하고 담백한, 그렇지만 두 종의 책 모두 술술 잘 읽히고야 마는... 아, 뭐, 제 입으로 이렇게 제 책 이야기를 하는 게 좀 꼴불견인 것 같지만, 실제로 이렇게들 읽어주셨다고 하니, 제가 거짓부렁을 늘어놓는 것도 아니고, 저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네?


14. 어떤 분은 두 종의 책을 읽어주시고는 내 글을 중국의 '변검'에 비유해주시기도 했다. 변검, 저도 참 신기하고 좋아하는데요. '변검'도 결국은 마스크를 계속 바꿔가는 마술 비슷한 퍼포먼스 아니겠습니까.


마스크를 벗어도 되는 날이 왔지만, 저는 마스크를 벗지 않고 있는 겁니다. 네네.

다음에는 어떤 마스크를 쓰고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가면을 슉슉 바꿔 쓰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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