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려고요

by 이경



글을 써서, 투고를 하고,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첫 책이 나오기 직전까지도, 아내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도 첫 책이 나오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책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던 사람은 군산에서 활동하는 배지영 작가님이 유일했다. 데뷔작이던 소설 <작가님? 작가님!>이 바로 배지영 작가님과의 우정을 다룬 이야기이다.


다른 매체가 아닌 책을 목표로 하는 작가 지망생의 글쓰기란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니까, 무언가 될 듯 될 듯하면서도 처음으로 돌아가는 게 많은 일이니까, 절로 말을 아끼게 되었다. 몰래몰래, 사부작사부작, 그렇게 떠벌리지 않고 글을 썼다.


나와 달리 한 책쓰기 아카데미에서는 꼭 사람들에게 '초고 선포'라는 걸 시켰다. 언제언제까지 초고를 쓰겠습니다. 그렇게 초고를 완성하면 나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겠습니다. 천재 글쓰기 코치를 만나 꼭 초고를 기한 내에 완성한다! 한다! 한다! 하는 거였는데, 보기만 해도 병맛이 터져 나왔다.


얼씨구 쪼다들, 대단들 하다 진짜로. 저러고 싶을까, 싶었다. 지금도 '초고 선포'라는 단어를 보면 전쟁이나 계엄령 같은 거 아니면 선포라는 단어 쓰지 말라구요, 내가 다 부끄럽잖아, 하고서 말리고 싶다. 책쓰기 아카데미에서 하는 수많은 이해하지 못할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이 '초고 선포'이다.


언제언제까지 초고를 끝내겠다는 약속, 그딴 걸 왜 시키는 거야? 그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일 뿐이잖아. 작가 지망생이 스스로 정한 기한 내에 글을 쓰겠다고 알리고서 성공해봐야 그저 본전일 뿐이고, 못하면 망신만 당할 뿐이다. 그렇게 완성한 초고가 쓸 만하다는 보장도 없고, 한마디로 그딴 선포는 글을 쓰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당신이 초고를 기한 내에 쓰든 말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저 나는 글 쓰는 사람이야, 하고서 한 번 거들먹거리고는 내가 기한 내에 쓸 수 있도록 응원을 해줘, 그리고 기한 내에 초고를 다 쓴다면 그때는 또 다른 축하를 해줘, 하고서 우쭈쭈를 받고 싶은 거뿐이잖아.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렇게 생각해왔던 나 조차도 이제 어디 가서, 아 저 이경은 언제 언제까지 다음 책의 원고를 꼭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하는 선포라도 해야 하는 걸까 싶다. <작가의 목소리>와 동시에 진행하려 계획했던 다섯 번째 책의 원고를 마지막으로 저장한 날이 꼭 한 달 전이다. 물론 마감이 없는 글쓰기를 하는 중이라 병맛 터지는 초고 선포 따위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해봐야 본전, 못하면 망신이니까.


4년 전만 하더라도 미래를 알 수 없는 글쓰기를 했다. a4 수십 장을 쓰고도 이게 과연 책이 될 수 있을지, 그저 애정과 노력이 담긴 똥덩어리를 만들어 낸 건 아닌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글을 썼다. 다섯 번째 책과 여섯 번째 책은 일단 쓰면 책으로 내주겠다는 사람이 있는데도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원고지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어딘가에서 자꾸만 번잡함을 느낀다. 나는 원고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책을 쓰며 타인의 문장을 자주 인용하는 편은 아닌데, <난생처음 내 책>에서는 도로시 웨스트(Dorothy West)의 문장을 인용해 한 꼭지의 글을 쓰기도 했다.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에서 나온 <작가의 책상>에 실린 글이었다.


내가 일곱 살이었을 때, 나는 엄마한테 말했어. 방문을 닫아도 될까요? 엄마가 대답하셨어. 물론이지. 그런데 왜 방문을 닫으려고 하니? 나는 이렇게 말했어.

생각을 하고 싶어서요.

그리고 열한 살 때 엄마한테 말했지. 방문을 잠가도 될까요? 엄마가 말씀하셨어. 그렇게 하려무나. 그런데 방문을 왜 잠그려고 하니?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지.

글을 쓰려고요. / 도로시 웨스트 (작가의 책상 中)


도로시 웨스트의 이 문장들을 책에 인용했던 데에는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었다. 방문을 닫고 문을 잠그는 것을 허락해준 도로시 웨스트의 엄마도 좋았고, 그 어린 나이에 생각과 글쓰기 속으로 들어간 도로시 웨스트의 모습도 좋았다.


무엇보다, "글을 쓰려고요." 하는 이 짧은 문장 안에 너무 많은 감정과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게 좋았다. 처음 도로시 웨스트의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조금 울기도 했던 거 같다.

글쓰기란 결국 누구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다. 방문을 잠그고, 엉덩이를 붙이고, 생각을 하고, 타이핑을 하고, 한숨짓고, 그렇게 외로움과 맞짱을 떠가며.


언젠가부터 "글을 쓰려고요." 하는 마음을 먹을 때마다,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책을 목표로 하는 글쓰기를 하려 할 때마다 어린 소녀 도로시 웨스트가 방문을 잠그는 상상을 한다. 그 상상 속의 도로시 웨스트는 어느새 나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렇게 잠긴 방문 안으로는 아주 조금의 영감과 약간의 이야기, 그리고 적막함이 있다.


글을 쓰려고요.

글을 쓰려고요.

글을 쓰려고요.


다시 이 방문을 잠그려고 마음먹는 일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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