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퀴즈 온 더 블럭>에 김민섭 작가와 그보다 열 살 어린 동명의 김민섭 디자이너가 나왔다. 5년 전 삼십 대 중반이 될 때까지 해외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김민섭 작가는 한국에서 가까운 후쿠오카 여행을 계획했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되었고, 적은 금액으로 환불을 받느니 조건이 맞는 사람을 찾아 비행기 티켓을 양도하기로 했다고.
여행사에서 알려준 비행 티켓 양수인의 조건으로는 대한민국 국적의 남성일 것과 이름이 '김민섭'일 것, 그리고 여권상의 영문 표기까지 김민섭 작가의 그것과 동일할 것. 그렇게 김민섭 작가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김민섭 씨 찾기 프로젝트를 열게 되었고, 자신보다 열 살 어린 김민섭 씨를 찾아 티켓을 양도하게 되었는데, 또 어째서인지 프로젝트를 지켜보던 이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 티켓 양수인 김민섭 씨를 후원하게 되었고, 나중에 가서는 기업까지 나서 펀딩을 하여 김민섭 씨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이야기였다.
방송을 보고 있으니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훈훈한 사연이었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를 그 누군가를 위해 비행 티켓이며, 숙박비며, 현지 버스 승차권이며, 와이파이 등을 후원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린 김민섭 씨는 자신에게 전해지는 온정의 이유를 알 수 없었고, 나중에는 자신을 후원해준 사람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면서 납득이 가는 답을 얻을 수 있었단다.
그 답은 바로, '나눔도, 베풂도 행하며 세상 여행을 두려움 없이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린 김민섭 씨는 자신이 받은 따뜻한 마음들이 자신에게서 끊기지 않도록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후쿠오카 여행을 계기로 자신의 삶이 달라졌다고. 앞서 김민섭 작가 역시 처음 작가로 발을 내딛을 때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비슷한 내용으로 며칠 전에는 SNS에서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이야기도 보았다. 세상에 '자수성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누구든지 성장을 위해서는 타인의 도움을 반드시 받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어린 김민섭 씨만큼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김민섭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저 혼자 만의 추억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2018년 시월, 김민섭 작가에게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당시 김민섭 작가는 '오늘의 유머'에서 글을 쓰던 김동식 작가를 발굴(?)한 기획자로 알려져 이곳저곳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동식 작가에게도 김민섭 작가는 은인과도 같은 사람이겠지. 그러고 보면 김민섭 작가는 뭔가 '도움'의 아이콘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여하튼 당시 한 인터뷰 말미에 김민섭 작가는 자신의 개인 계정에서 투고 원고를 받고 있으며, 원고를 받고서는 꼭 피드백을 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 나는 '음악 에세이' 출간을 목표로 출판사에 원고를 던지고 있었다. 이미 두어 차례 계약 제안을 받았다가 엎어지면서, 이제 그만두어야 하나 싶을 때 김민섭 작가의 인터뷰를 읽었던 거 같다.
작가 지망생들은 피드백에 고파하니까. 보통의 출판사라면 그저 출판사의 방향에 맞지 않아 반려한다는 복사 하여 붙여 넣기가 뻔한 답을 하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나는, 어쩌면 작은 김민섭 씨나 김동식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김민섭 작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그에게 '음악 에세이' 원고를 보냈다.
김민섭 작가는 하루 만에 답장을 주었다. 살펴볼 원고들이 밀려 있는 상태라고. 10월 중으로 읽고서는 11월까지는 꼭 답신을 드리겠다고. 시간은 흘러 10월이 가고 11월이 지나 해가 바뀔 때까지 김민섭 작가에게서 답신이 오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그때 왜 나에게 답신을 한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나요 하고서 따지려는 것은 아니다.
고백건대 당시 작가 지망생이던 나는 마음이 넓지를 못하여, 답신을 주지 않던 그에게서 조금은 아쉬운 마음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원고를 읽고서 피드백을 전하기가 얼마나 어렵고도 조심스러운 일인지를 이제는 안다. 당시의 내 글이 아주 엉망이었을 수도 있고, 그가 읽고서 피드백을 하기엔 너무나 개인적인 글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가 답신을 했다고 착각을 하였거나, 실제로 답신 전송 버튼을 눌렀으나 통신 상의 오류가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는 없다. 김민섭 작가가 작은 김민섭 씨나 김동식 작가에게 도움을 주었듯이, 나 역시 김민섭 작가와의 접점이 없었을 뿐, 책을 내는 동안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데뷔작을 낼 때까지 꾸준히 내 이야기를 들어준 군산의 배지영 작가가 있었는가 하면, 인터넷 어느 곳에도 글을 올리지 않던 나에게 브런치에 글을 써보라고 일러준 편집자도 있었다. 투고와 반려 끝에 이제 그만둘까 할 때, 글이 좋으니 계속 투고해보라며 응원을 해준 출판사 대표도 있었고, 원고의 피드백과 함께 결국은 첫 편집자가 되어주었던 이도 있었다.
가끔 TV는 마법상자와도 같아 등장인물에 따라 과거를 회상케 만든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온 김민섭 작가를 보면서, 몇 년 전 그에게 메일을 보냈던 일을 떠올렸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네 종의 책을 내게 되었고, 김민섭 작가 역시 꾸준히 글을 쓰며 때로는 '정미소'라는 자신의 출판사를 통해 작가들을 발굴하고 있다.
김민섭 작가에게 보냈던 '음악 에세이' 원고는 네 종의 책을 낼 동안에도 책이 되지 못한 채 내 손에 들려있다. 삶은 때로 재미난 우연으로 가득한 법. 작년부터 음악 에세이 원고를 함께하자고 했던 출판사가 있다. 구두계약을 이룬 후 미팅을 하여 정식 계약을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 시국과 개인적인 사정에 맞물려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해를 넘기고 다섯 달이나 지났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보고서 김민섭 작가에 대한 글을 쓰는 중, 오랜만에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제는 만나자고. 다음 주 화요일쯤에는 만나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자고. 2018년, 김민섭 작가의 피드백을 기다렸던 이야기들이 이제야 주인을 찾게 되었다. 첫 책으로 준비하던 음악 에세이가 다섯 번째가 되어서야 나오게 되었으니, 길고도 먼 시간을 돌아온 셈이다.
훗날, 김민섭 작가를 만나게 된다면, 아, 제가 예전에 작가님에게 원고를 보낸 적이 있는데요, 하면서 말을 걸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내 마음도 예전에 비해서는 조금은 커졌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