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먹는 이야기

by 이경




1. 점심으로 강창구 진순대에서 순댓국을 처묵처묵 했다. 나는 희한하게 순댓국을 먹고 온 날에는 항상 주절주절 아무 글이나 써대는 경향이 있다. 세 번째 책 <난생처음 내 책>에는 아예 순댓국을 먹고서 끄적인 글을 한 꼭지 싣기도 했다. 문체에 관한 글이었다. 순댓국을 먹고서 문체에 관한 글이나 쓰고 앉아있었다니.


굴에 들어가 쑥과 마늘만 처묵처묵 하고서 인간이 된 곰탱이마냥 매일같이 점심으로 순댓국을 먹고서는 <순댓국을 먹고서 생각하는 것들>하는 제목의 에세이를 써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 적이 있다. 그저 배부름을 없애기 위해서 끄적이는 이야기들이었는데, 이렇게 순댓국을 먹고 온 날에는 항상 글을 쓰게 되는 걸 보면서 나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 순댓국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2. 직장인들 점심값이 얼마나 올랐나 바로미터랄까, 기준을 따질 때 순댓국 가격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진성 순댓국 사랑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먹은 순댓국은 8,000원이었다. 점심값 만 원 시대가 멀지 않아 보인다.


어제는 평양냉면을 먹어볼까 하여 가게 앞을 스윽 지나가며 메뉴를 보았는데, 얼마 전까지 12,000원 하던 평양랭면이 13,000원으로 올랐다. 이러면 역시 냉면은 함흥 비냉이지라며, 함흥냉면에 좀 더 손이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사람은 언제 어른이 되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때 몇 가지 답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혼밥'을 할 때이다. 서른이 넘어서도 혼밥을 잘 못했는데, 요즘에는 먹고 산다고 예전에 비해서는 어렵지 않게 혼밥을 한다. 코로나 시대에 돌입하면서 생긴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혼밥의 활성화가 아닐까.


4. 며칠 전에는 점심으로 백종원 역전우동 집에 가서 제육볶음덮밥 + 미니우동 + 매콤 김말이를 먹었다. 9,000원이 나왔다. 요즘에는 SNS에서 백종원이 알려준 도리토스 간식을 해 먹고는 한다. 도리토스 과자에 청양고추, 방울토마토, 파마산 치즈, 레몬즙 등 이것저것 넣고 뿌리고 해서 먹는 레시피인데, 집에 모든 재료가 있지는 않아서 백 선생님이 알려준 레시피에 비하면 부실하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고 있다.


5. 한때 인터넷상에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아저씨와 백종원을 두고 누가누가 더 잘났네, 누가 더 옳네 그르네 어쩌네 저쩌네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황교익이 슈가보이 백종원의 설탕 사랑을 두고서 공격이랄지, 지적이랄지, 할 때만 해도 어느 정도 발란스가 맞으려나 싶었는데, 언젠가부터 대중들은 백종원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는 듯하다. 나만 하더라도 황교익과 백종원 중 누가 더 내 삶을 이롭게 하였는가를 보면 말할 것도 없이 백종원이다.


6. 세상에 많은 직업이 있지만, '맛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은 무엇일까. 황교익 아저씨의 직업은 '맛 칼럼니스트'라는데, 어째서인지 그의 글에서 입맛이 도는 경우는 잘 없고, 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지면도 대체로 밥맛 떨어지는 정치면 기사가 대부분이다. 내 생각엔 황교익을 미워하는 기자가 일부러 황교익의 SNS 멘트를 따다가 정치 기사에 활용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맛 칼럼니스트의 글을 읽고서 밥맛이 떨어진다니, 굉장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7. 평론가는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만들기 위해 생겨난 직업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좋아한다. 도리토스 레시피나, 백종원 역전우동 등만 보더라도 백종원은 내 삶에 영향을 끼치지만, 맛 칼럼니스트 혹은 음식평론가로 불리는 황교익의 발언이 내 삶에 도움이 되었는가를 따져보면 딱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떡볶이는 불량식품이라는 둥, 한국 치킨은 맛이 없다는 둥, 불고기는 일본에서 왔다는 둥의 발언을 보고 있으면 사실 여부를 떠나서 나(대중)의 취향이 무시당하는 기분이라 몹시 빡치는 것이다.


8. 뭐든지 했던 거 또 하고, 봤던 거 또 보고 하면 지겨운 법이라, 이런저런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보다가도 우후죽순처럼 비슷한 게 생겨나면 지겨워지고 그렇다. 생각해보면 내가 제일 즐겁게 보았던 오디션 프로그램은 요리 경연 프로였다.


그건 정말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은 노래를 들을 수 있고, 댄스 오디션 프로그램은 춤을 볼 수 있지만, 음식을 만드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가장 중요한 맛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심사평에 의존하며 향과 맛을 상상할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이 어째서 가장 재밌었던 걸까.


어쩌면 내가 잘 모르는 분야, 그러니까 음식의 재료가 어디서 어떻게 나서 어떤 조리도구를 이용하여 어떻게 만들어야 맛있는 음식이 만들어지는지 잘 모르는 내가, 한마디로 먹기만 할 줄 아는 내가 나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맛있으면 삼키고, 맛없으면 뱉는 걸 보면서 흥미로워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9. 어릴 적 오이를 못 먹는 친구와 평양냉면 집에 간 적이 있다. 친구는 냉면을 주문하면서 오이를 빼 달라고 했는데 어린 나이에 나는 그게 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아니, 밍밍한 평양냉면에 건더기가 얼마나 들어간다고 오이를 또 빼 달라고 하는 건가.


훗날 오이를 못 먹는 사람일수록 미식가일 확률이 높다는 신문 기사를 읽고서는 아 친구 녀석이 미식가였는가,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니 무슨 오이도 못 먹는 주제에 얼어 죽을 미식가야,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까 신문 기사에 따르면 혀가 발달한 사람일수록 오이의 쓴 맛을 잘 느끼는 것이고, 오이를 못 먹는 사람은 그만큼 혀가 예민하다는 뜻일 테니, 미식가일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기자가 내린 결론은 헛소리에 가까운 것 같다. 참고로 나는 오이냉국을 좋아한다.


10. 예전 도전 골든벨인가에서 미식가의 미짜를 묻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당연하게도 아름다울 美라고 생각해왔는데, 많은 학생들이 맛 味, 혹은 쌀 米로 답을 내었던가. 대부분의 학생들이 틀렸던 것이 지금도 짤로 돌아다닌다.


여러분, 맛있는 음식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맛 칼럼니스트라는 사람이 내가 맛있어하는 걸 맛없고 불량식품이라고 하니까 어쩐지 내가 지금까지 잘못 살아왔나 하는 생각이 들고, 자괴감이 몰려오고, 자책감이 들고, 죄책감이 들고, 그리하여 떡볶이와 치킨과 불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황교익을 미워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1. 쓰다 보니 어쩐지 황교익을 디스 하는 글처럼 되어가는데, 딱히 디스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믿어주세요. 빌리브 미. 배불러서 손가락이 가는 대로 떠들다 보니 이런 글도 나오는 법. 하지만 황교익 선생이 나에게 영감을 주는 순댓국까지 평가절하한다면 그때는 저도 가만있지 않겠...


12. 나도 한때 음악 웹진에서 뮤지션들 앨범에 평점 매기는 일을 했는데, 비평이나 평론을 하는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필수불가결인 것 같다. 내가 진짜 싫어하는 평론가도 한 두어 명 있는데 누군지는 안알랴쥼.


13. 세미콜론에서 만우절 특집판으로 나온 띵시리즈 <싫어하는 음식 : 아니요, 그건 빼주세요>를 사서는 후루루룩 읽는다. 공저 에세이의 장점으로는, 전에 읽어보지 않은 작가들의 글을 대충이나마 경험하기 좋다는 것이다. 특히나 그간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시리즈였던 띵에서 싫어하는 음식을 주제로 삼은 게 재밌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글이 재밌었는가 하면... 그것도 안알랴줌. 한 열 번째쯤 책으로 <순댓국을 먹고서 생각하는 것들>을 써볼까 어쩔까. 그때도 순댓국이 나에게 영감과 배부름을 안겨준다면.


오늘은 13일의 금요일이라니까 특별히 13번에서 마치도록 하겠다. 배는 아직도 부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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