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리그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는 실력만큼 인성도 훌륭한지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이건 남들이 버린 행운"이라며 곧잘 줍는다고 했다. 착한 일을 하면 언젠가 자신에게 운이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는 거겠지.
어제 아들 2호와 쇼핑몰에 들러 유희왕 카드 자판기를 이용했다. 4,500원짜리 카드를 뽑아주었는데 옆에 있던 만 원짜리 카드가 같이 딸려 나왔다. 이게 인형 뽑기라면 얼씨구나 좋다 잘 됐네 하고서 들고 왔을 텐데, 정가를 결제하고 이용하는 자판기라 그러기엔 영 애매했다. 결국 안내 데스크에 가서 설명하고 같이 나온 카드를 돌려주고는 아들 2호에게도 이건 돈 주고 산 게 아니니까 우리 물건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저녁에는 아들 1호와 아이스크림 무인 판매점에 갔다. 이것저것 쓸어 담고 바코드를 찍으니 10,600원이 나왔다. 아 카드 결제를 해야지 하고서 결제 버튼을 눌렀는데, 앞서 이용한 누군가가 카드를 꽂아두고 그대로 간 모양이었다. 결국 타인의 카드로 결제가 되었다.
아아아아아아 이 참을 수 없는 찝찝함.
카드를 놓고 간 이에게, "정신 차려 이 각박한 세상에서!" 하고 외쳐주고 싶다.
요즘엔 카드 사용을 하면 다들 문자가 가니까. 카드 주인이 오면 상황을 설명하고 현금을 주어야겠다 생각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카드 주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결국 무인샵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이야기하니 자기에게 10,600원을 이체해주고 카드는 서랍에 두고 가란다.
뭔가 만 원 단위로 계속 귀찮고, 찝찝한 일이 생겨났는데 나름 최선을 다해서 정의롭게 대처한 거 같다. 제가 초딩 5년 착한 어린이상 수상자 출신 아니겠습니까...
코인으로 수십조가 증발했네, 수억을 잃었네, 은행원이 수백억을 해 먹었네 어쩌네 하는 세상에서 타인의 돈 만 원으로 찝찝함을 느끼는 거 보면 나는 평생 남들 속여서 부자가 되기란 글러버린 것 같다.
한편으로 나는 어쩌면 조금씩 행운을 모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꿈은 무병장수/불로소득인데 무병장수는 글렀고, 만 원짜리 유희왕 카드 같은 자잘한 행운은 거부하며 커다란 불로소득을 기다리겠다! 하는 입장이랄까.
근데 만 원으로도 이렇게 찝찝함을 느끼는 인간이 대체 무엇으로 불로소득을 이루나. 역시 글을 파는 수밖에 없다. 나는 출간 책의 계약금 이후로 들어오는 인세는 모두 불로소득이라고 여기니까. 언젠가 뭐라도 하나 터지지 않을까.
글과 관련해서 뭔가 꿈틀꿈틀하는 일이 생겨나는 기분이다. 유퀴즈에 나온 김민섭 작가에 대한 글을 썼더니 김민섭 작가가 좋아요를 누르고 가기도 했고, 인스타그램에서는 오랜만에 골프 에세이 <힘 빼고 스윙스윙 랄랄라>의 서평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 편집자분께서는 음악 에세이 진작에 계약한 거 아니었냐며, 미계약인 줄 알았다면 원고 한번 보자고 말했을 거라며 관심을 보여주셨다. SNS에 동네 산책 이야기를 썼더니, 지나던 동네 주민 분이 댓글을 남겨주시기도 했다. 이게 다 찝찝함을 이겨내고서 저녁 몇 시간 동안에 일어난 일.
글 쓰는 일로 뭔가 꿈틀꿈틀 하는 기분인데 정말 큰 거 하나 터지나...? 착한 일 하고 살면 정말 뭔가 큰 행운이 오려나? 토요일에 로또 산 거 아직 확인 안 했는데 혹시? 그래, 책으로 터지는 것 말고 로또가 터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책이 터지든, 로또가 터지든!
이 글을 쓰면서 메일함을 보니 다음 책의 계약서가 도착해있다. 다섯 번째 책이자, 음악 에세이가 될 계약서이다. 아무래도 먼 미래를 생각해서는 로또보다는 책이 터지는 편이 낫겠지.
나는 조금씩 행운을 끌어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