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와 슬러시

by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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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점심을 먹고는 이웃 동네 산책을 했다. 그림책 위주로 큐레이션 되어있는, 만화가 '써니사이드업'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독립서점 PRNT에 들러 책을 구경하고는, 상도동 성대시장에서 참외며, 김밥이며, 삼겹살 등 장을 보고는 왔다.


그렇게 상도동 골목골목을 걷다가 한 초등학교 앞 분식집 셔터에 재미난 문구가 붙어 있어서 사진을 찍었다.


'오늘 가게 휴무합니다.'


타이핑해서 프린트한 종이 아래로 직접 손으로 쓴 종이까지 두 장의 안내문이었다. 사장님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아직 여름이 오려면 멀은 거 같은데 체력이 갑자기 떨어지셨다니. 코로나 후유증 같은 게 있는 걸까. 연세가 많으신 걸까. 사장님은 남성분이실까, 여성분이실까. 슬러시를 먹으러 올지 모를 초딩들에게 정말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안내문구를 보면서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았다.


이런 이야기와 사진을 SNS에 올렸더니, 상도동 주민 한 분께서 댓글을 달아주셨다.


'지나가는 상도동 주민입니다 도너츠 가게 아저씨 종종 힘드셔서 쉬시는데 저렇게 메모를 붙이세요. 장기간 쉬실 때는 아이들이 응원의 메세지를 붙여드리기도 한답니다. 나중에 꼭 맛보세요. 맛있어요.'


아, 메모만 보고서는 어떤 가게인지 제대로 못 보고 왔는데 도너츠 가게였구나. 사장님이 몸이 좀 안 좋으신 걸까. 그나저나 가게 아저씨와 아이들이 서로서로 메세지를 붙여준다고 하니 어쩐지 어른과 아이들의 우정 같은 게 느껴져서 아름다운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초등학생 때 처음 슬러시를 먹어보았다. 편의점에서 파는 슬러시였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편의점이 많지는 않았고, 집에서 한참을 걸어야만 갈 수 있는 곳에 하나가 있었다. 주말이면 슬러시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걷고 걸어서 그 편의점에 갔던 기억이 난다.


포도와 오렌지 두 가지 맛이었던가. 커다란 종이컵에 직접 슬러시를 넣어 먹는 거였는데 어떤 맛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두 가지 맛을 모두 섞어 희한한 맛의 슬러시를 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시절 먹었던 슬러시가 지금도 기억나는 걸 보면, 그때도 아마 한창 더운 여름날이었겠지. 요새는 왜 편의점에서 슬러시를 팔지 않는 걸까.


이렇듯 유년 시절 슬러시를 맛있게 먹은 추억은 있지만, 휴무일에 메모를 붙여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사장님의 추억은 없다. 다음에 이웃 동네 산책을 하는 날이면 도너츠를 먹어봐야지. 그리고는 슬러시도 먹어야지. 이제는 어른이 되었으니 희한한 맛의 슬러시가 아닌 한 가지 맛만 먹어도 충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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