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는 오랜만에 걸었습니다. 한강변을 좀 걷다가 여의도 공원을 반 바퀴 정도 돌았어요. 작년에는 꽤나 자주 걸었던 코스인데, 올해는 조금 게을러져 버렸습니다. 오늘 서울의 아침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세찬 비가 쏟아졌는데요. 걷고 나니 땀이 흐를 정도로 날이 개었어요.
한강변을 걷다가는 마포대교 아래 벤치에 앉아 마포대교의 교각을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자리예요. 마포대교 교각을 보고 있으면 교각 사이사이가 점점 멀어지면서 좁아지는데요. 이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걸 좋아합니다. 점점 멀어지고 좁아지는 이 사이 틈으로 많은 것들이 같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밤에 보면 조금 무서우려나요?
이 벤치에 앉아서 소개해주신 음악들을 들었어요. 저는 이제 촌스러운 아저씨가 다 되어서는 음악을 들을 때도 스트리밍이 아닌 벅스뮤직에서 다운 받아 듣습니다. 한 달에 아흔아홉 곡 정도를 다운 받을 수 있나. 요즘에는 그 반의 반도 다 사용을 못하고 있는데요. 알려주신 이런저런 곡들을 듣는다고 오랜만에 여러 곡을 다운받았습니다.
소개해주신 곡 중에 저는 특히나 BlahBlahBlah의 <Goodbye L.A>가 좋았어요. 서울의 야경을 달리며 듣고픈 곡이라고 하셨을 때 저는 막연히 드라이브하기 좋은 곡을 떠올렸거든요. 음, 그러니까 밴드 ADOY의 <Grace> 같은 곡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막상 들어보니 조금 울적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LA를 그리워하는 듯한 곡이었어요. 시카고에서 결성되어 LA에서 활동한 그룹이었다고 하니, 어쩌면 그들에게 LA는 애증의 도시였던 걸까요. 그런 배경지식을 알고 나니, 서울의 야경을 달리며 듣고픈 곡이라고 하신 얘기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서울의 밤하늘이 그리우신 거겠죠?
<Goodbye L.A>를 들으면서 떠오른 곡들이 있어요. 하나는 Tracey Thorn이라는 보컬이 부른 <The Paris Match>라는 곡인데요. 원래는 Style Council이라는 영국 밴드의 곡인데 편곡을 새로이 해서 트레이시 쏜이 부른 거예요. 아, 일본에 Paris Match라는 팀이 있죠? 그 팀의 이름을 바로 이 곡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Goodbye L.A>를 들으며 떠오른 또 다른 한 곡은 밴드 Augustana의 <Boston>이라는 곡이에요. 이 곡에서 누군가 노래하거든요. 캘리포니아를 벗어나 보스턴으로 갈 거라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서 새로운 삶을 살 거라고. 캘리포니아의 날씨에 지쳤고. 일몰이 아닌 일출이 있는 곳으로 갈 거라고.
저는 LA도 보스턴에도 가본 적이 없지만, 그 두 도시가 미국의 서쪽과 동쪽 끄트머리에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둘 중 한 곳에 갈 수 있다면 저는 동쪽으로 가고 싶어요. 보스턴에 가보고 싶은 이유가 딱 하나 있는데요. 어릴 적부터 보스턴 레드삭스라는 야구팀의 홈구장에 가보고 싶었어요. 팬웨이 파크라고 불리는 그 야구장에는 그린 몬스터라는 아주 높은 담장이 있거든요. 그 담장을 눈에 담고 싶었습니다. 보스턴에 가보고 싶은 이유가 조금은 바보 같죠?
마포대교 아래서 교각을 바라보며 멍하니 <Goodbye L.A>를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계신 곳에서는 일출도 일몰도 모두 아름답길 바라겠습니다.
ps. 아, 좋아하신다는 누자베스의 <Aruarian Dance>는 저도 좋아하는 곡이에요. 하루 종일 들을 수 있는 곡이랄까요. 십 년 전 리드머라는 음악 웹진에서 필진들을 대상으로 앙케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질문지 중에서는 평생 단 한 곡만 들을 수 있다면, 하는 바보 같은 질문도 있었습니다. 바보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사실 제가 짠 질문지였거든요.
그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이 바로 <Aruarian Dance>였습니다.
선생님이 이 곡을 좋아하신다니 무척이나 반가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