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연선 - <얼굴> 中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그림 실력이 얼마나 좋으면 동그라미를 그리려다가 사람 얼굴을 그릴 수 있을까. 그것도 무심코 말이야. 동그란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겠지. 그러니 동그라미 그리다가 얼굴이 그려졌겠지.
일곱 살 큰애는 미술 유치원에 다닌다. 유치원에서 미술만 가르치는 건 아니고 한글도 가르치고 이것저것 가르치는데 그림 그리는 시간이 다른 유치원보다 조금 더 있는 듯하다. 미술 유치원이든 마술 유치원이든 아이 교육은 와이프에게 전적으로 맡겨두었다. 영재발굴단에 나오는 미술 영재가 아닌 이상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이야 다 그렇지 않나. 얼굴이 엄청 과장됐거나 팔, 다리가 엄청 길다거나.
이상한 모양의 사람을 그려놓고 "이거 아빠야" 하면서 깔깔거리며 웃는 아들을 보면서 미술 유치원 다니는 것 치고는 재능 없음을 알게 된다. 그림 실력이 나를 닮은 거 같다. 한국에서 애들 미술 전공하고 유학이라도 보내려면 집안 기둥 뽑아야 한다는데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 다행이다. 그저 아빠랑 아들이 스케치북에 서로 누가 더 못 그리나 내기라도 하듯 깔깔거리며 그림 그리면 됐지 뭐.
동그라미 그리다가 얼굴을 그렸다는 윤연선의 곡을 들으며 그 사람 얼굴은 참 동그랬겠다 생각한다. 어릴 때 이 곡을 들을 때면 배우 강수연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당시 내가 아는 가장 동그랗고 예쁜 얼굴이었다. 지금도 TV에서 화질이 구진 옛 영화 속 강수연을 보면 그 얼굴만큼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나는 강수연을 아는데 강수연은 나를 모르니 짝사랑이라고 해야겠다.
일곱 살 큰애도 얼굴이 참 동글동글했다. 얼굴도 동글, 눈도 동글, 코도 동글, 입도 동글. 그래서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동글이'라고 불렀다. (둘째는 얼굴이 넓어서 넓죽이라고 부른다.) 얼굴 동그란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쩐지 마음도 얼굴마냥 동그랄 것 같아서. 커가면서 아이의 동그란 얼굴은 점점 각이 지고 길어지겠지. 눈매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콧날은 오뚝해지겠지. 오물오물 거리는 작은 입도 점점 커지겠지.
아들의 마음은 동그랬으면 좋겠다. 먼 훗날 동그라미 그리다가 아들 얼굴을 그려놓지는 못해도 동그란 아이의 마음을 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곱 살 큰애는 요즘 말을 정말 안 듣는다. 아이 엄마는 하루도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댄다. 오라면 가고 가라면 온다. 놓으라면 들고 들라고 하면 놓는다. 치우라고 하면 어지럽히고 어지럽히라고 하면 더 어지럽힌다. 어릴 때 말 안 듣는 애들 보고 청개구리 잡아먹었냐는 농담이 이제야 이해된다.
아들아. 동그랗게 살자. 동글동글하게. 엄빠가 몹시 피곤하구나.
그림 실력은 늘지 않아도 좋으니깐 마음만큼은 동그랗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