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음악 에세이를 쓴다.
올초에 책 한 권 분량의 음악 에세이 원고를 투고하고 반려 메일이 쌓여갔다. 아예 노답인 출판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출판 방향이 맞지 않다며 반려했다. 한 출판사 편집자만이 글은 재미있지만, 개인적인 느낌이 강하고 음악 에세이 시장이 넓지 않음을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브런치에 글을 써볼 것을 권유했다. 오메... 투고 반려를 이런 식으로 돌려 말하는가 싶었지만, 그래도 글을 계속 써볼 것을 권유해주었다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브런치에 흘러들어와서 음악 에세이를 올리고 있다. 브런치에 글 쓸 때만 해도 장밋빛 인생을 꿈꿨다. 구독자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조회수 뽕이라도 맞으면 핸드폰 알람에 불이 나지 않을까 하는 과대망상에 빠졌던 것이다. 현실은 지독하고 냉혹하다. 브런치에 글 쓴 지 두 달이 되었건만 구독자는 스무 명을 넘지 않는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음악 에세이 외에 다른 글도 연습 삼아 좀 써야겠다는 생각이 내 멍청한 전두엽에도 흐르는 것이다.
나는 김지하도 아닌데 구독자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있다. 구독자가 생기려면 조회수가 늘어야 할 텐데 조회수 자체가 낮다. 음악 에세이 시장이 넓지 않다던 출판사 편집자의 말이 뻥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브런치에 음악 에세이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을뿐더러 다른 장르에 비해 음악 글은 인기가 참 없음을 실감한다. 하긴, 세상에 음악이 얼마나 많은데. 사람들은 자기가 모르는 얘기를 할 때 화를 낸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음악을 소개한다고 해도 듣도보도 못한 음악이라면 공감하긴 어렵겠지. 쩝쩝.
음악 글은 꾸준히 쓰되 미끼 상품을 내걸어야겠다. 본상품 보다 미끼 상품이 더 인기를 끌게 된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재미가 있겠지 뭐. 미끼 상품으로 무얼 내걸까 하다가 글감이 끊이지 않을만한 주제를 찾다 보니 서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평이 될지, 단순 독후감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시답잖은 잡문이 될 것이다. 그나마 음악 글을 보려고 내 글을 구독하던 구독자마저 떨어져 나가면 어쩌나 싶지만 서평 매거진을 하나 늘린다한들 망하거나, 개망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한다. 서평.
첫 번째 책으로 김훈의 [현의 노래]로 골랐다. 가끔 내가 쓴 글을 보면 문장이 참 지저분하고 난잡하고 번잡하다. 김훈이 누군가. 주어+서술어 형태의 기본에 충실한 간결체의 대가 아닌가. 시인 림태주는 글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했다. 림태주는 단문의 참고서로 [난중일기]를 권하기도 했다. 난중일기가 재미없는 사람에게 김훈의 글은 좋은 참고서가 될 거다.
나에게 [현의 노래]를 읽어보라고 권해준 사람은 동수형이다. 동수형은 인생 선배이자 음악 선배다. 그를 알게 된 곳은 PC통신 시절 유니텔 '하얀 이와 반달눈'이라는 유머글 동호회였다. 우리는 만나면 어쩐지 유머글 얘기는 개뿔 안 하고 음악 얘기만 나누었다. 그가 일하던 곳은 광화문 교보. 가끔 그의 회사 앞에서 동수형을 만나면 책 구경하다가 술을 얻어먹었다.
"경화야. 나는 들국화 1집에서 5번 트랙 <더 이상 내게>가 그렇게 좋다."
"형. <더 이상 내게>는 5번 트랙이 아니고 4번 트랙인데요."
하는, 남들이 엿들으면 안물안궁할, 오타쿠스러운, 시답잖은 음악 잡담이나 나누던 중에 그는 내게 책을 권했다. 음악 관련 책이니 권했을 테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내게 책을 권하는 사람을 거의 못 봤는데 동수형은 내게 책을 권해주던 사람이었다. 아아. 동수형 보고 싶소.
동수형이 내게 [현의 노래]를 권했던 시기는 2005년인가 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현의 노래]가 2005년 초판 17쇄니깐. 초판을 냈던 '생각의 나무' 출판사는 세월이 흘러 망했다. 현재 판권은 '문학 동네'에 있는 듯하다. 분명 2005년에 [현의 노래]를 읽었을 텐데 내용이 가물가물했다. 기억력이란 단어는 왜곡되거나 사라지라고 존재하는 것 같다. 13년이 지나 2005년에 읽었던 [현의 노래]를 다시 읽었다.
브런치 구독자 안 나온다는 핑계로 서문이 겁나 길었다. 이제 본격 서평을 해야지. 가끔 쓰게 될 내 모든 서평(혹은 잡문)에는 스포일러가 있을 예정이다.
[현의 노래]는 가야국의 악사 우륵, 가야국의 대장장이 야로, 신라 장군 이사부의 동갑내기 삼각 로맨스 소설이다. 물론 구라다. 다만 소설 말미에 우륵과 이사부가 만나는데 그 둘의 대화에서 연인 사이에 느낄만한 애틋함을 나는 느꼈다.
등장인물과 대략적인 이야기를 보자.
우륵 - 가야국의 악사다.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악기도 만들고 요즘 말로 하면 전천후 싱어송라이터, 뮤지션, 엔터테이너, 악기 제작자다. 악기 만드려고 널판을 두드려보고 "에잉 나무가 소리를 먹네" 하는 뛰어난 음감과 장인정신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이다. 후배 양성도 한다. 음악적인 고민을 갖고 사는 사람이다.
니문 - 우륵의 제자다. 우륵에게 끝없이 질문을 날리는데 보고 있으면 좀 답답하다. 자기 생각이란 게 없다. 얼마나 자기 생각이 없냐면 한 이불 덮고 살 여자도 스승인 우륵이 점지해준다. 우륵이 니문에게 "야. 니문아. 저 방 가서 자. 저기 여자 있는데 너 해" 하면 별 고민 없이 간다. 그래도 스승에 대한 리스펙트는 차고 넘쳐서 말년의 우륵을 엎고 다닌다.
비화 - 우륵과 같은 이불을 덮고 잔다. 뱀에 물려 죽는다.
아라 - 가야국 시녀. 왕이 죽으면서 무덤에 순장당할 운명이었으나 오줌을 누다가 삘받아서 도망친다. 오줌과 아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도망치며 벙어리인 양 말 안 하고 살다가 입을 여는 계기도 "오줌이 마려운데..."이다. 우연히 우륵을 만나 한 집에 살다가 우륵이 소개팅 시켜준 니문과 한 이불 덮고 산다. 소설을 보다 보면 우륵의 아내 비화와 아라 사이에 동성애 장면이 나오는데 소설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왕의 무덤에 순장당해 죽는다.
야로 - 가야국 대장장이. 무기를 만들어다가 가야국에만 바치는 게 아니라 이 나라, 저 나라에 보낸다. 쇠의 흐름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자기합리화의 달인쯤 되겠다. 매국노로 얘기할 수도 있겠으나 현실 처세는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자기는 뜨거운 불 앞에서 쿵쾅쿵쾅 무기 만드는데 음악이나 하고 있는 우륵을 깔보기도 한다. 대장간에 나타난 우륵을 보면서 "아니, 우륵 양반이 여기엔 어쩐 일로 왔소?" 뭐 이런다. 가야국 망하고 신라로 넘어가면서 환대받을 줄 알았는데 죽임을 당한다.
이사부 - 그 유명한 신라장군 이사부다. 멍청한 나는 이사부가 이름인 줄 알았다. 이사부 이氏 아니고 김氏라며? 완전 쿨가이다. 다 죽인다. 사람 죽일 때 자기 손은 절대 안 쓴다. 꼬봉들을 시킨다. "야, 쟤 밥 먹이고 죽여", "야, 쟤 하룻밤 재우고 죽여", "야, 쟤 산에 올려놓고 가둬놔" 하는 식이다.
이사부는 독도를 자국으로 편입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소설 속 이사부의 인성이라면 꼬봉들 시켜서 "야, 저기 동쪽에 섬 하나 있던데 그거 가서 먹어" 했을 것 같다. 그동안 신라국에 무기를 바쳤던 야로를 만나서는 "어이. 야로 영감. 당신 백제에도 무기 갖다 줬더라?" 하며 야로를 죽인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사부 부분은 감정이입이 좀 어려웠다. 신라국 입장에서는 전쟁영웅임이 분명한데 정이 너무 없다. 포로들을 줄잡아 세워놓고 포로 수와 똑같은 장수들을 일대일로 매칭 시켜 포로 머리를 날리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섬뜩하다. 그 수많은 포로를 일대일로 매칭 시키는 능력을 보고 결혼정보회사에서 일하면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킁.
동갑내기 우륵을 만날 때만큼은 살생하지 않는다. 가야국에서 신라로 넘어온 우륵이 "나 좀 살려주소. 그냥 악기나 뚱땅뚱땅 치고 살게" 하자 괜찮은 집을 소개해주고 왕 앞에서 퍼포먼스를 펼칠 기회도 주고 제자 양성도 시켜준다. 전쟁터에 살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차가운 신라 남자. 차신남이다. 등장인물 소개하다 보니 어쩐지 우륵보다 이사부가 주인공 같다.
책 읽으며 얻은 것 -
소설책 한 권 읽는다고 해서 기억에 오랜 시간 머무를 무언가를 구하긴 어렵다.
다만 가야금과 거문고를 구분 못하는 국악알못에게는 가야금이 몇 줄 정도인지는 기억에 남겠다. 그게 어디야. 김훈의 문체가 간결하다고 해서 소설 자체가 간결하진 않을 터. 독자에 따라 기억의 깊이는 다르겠다.
야로의 일화를 보면서 와~ 예전이나 지금이나 방산비리는 정말 쩔게 일어나는구나 싶었다. 현실 세계의 야로라면 USB도 백만 원 주고 살 수 있겠다 싶다. 무기를 팔아먹지 맙시다.
아라의 일화를 보면서 오줌을 누다가도 현실 도피를 할 수 있구나 싶었다. 오줌을 참지 맙시다.
이사부의 일화를 보면서 사람을 해할 일이 있으면 스스로 하기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꼬봉들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고 고된 일은 실무자의 몫이다. 킁.
가장 좋았던 부분 -
우륵과 우륵의 제자 니문이 악기 관련 질문과 답을 나누는 장면이다. 니문이 말귀 못 알아먹고 답답한 소리를 하자 우륵은 "아... 이 인간 말귀 진짜 못 알아먹네. 악기 하나 만들고 나면 말귀 알아먹으려나" 하는 장면이다. 물론 저렇게 말하진 않는다.
"니문아. 네 말이 너무 어렵구나. 널판이 악기가 되는 날. 아마도 알 수 있을런가" 한다.
북은 가죽의 소리이고 피리는 바람의 소리이다. 징은 쇠의 소리이고 목탁은 나무의 소리이다. 소리의 근본은 물(物)을 넘어서지 못한다.
우륵이 니문에게 소리의 근본에 대해 설명하는 저 문장이 나는 가장 좋았다.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짧은 라디오 프로가 생각났다. 딱 그 프로에 어울리는 문장 아닌가. 우륵은 소리가 어디서 어떻게 나는지 음악적인 고민을 안고 산다. 전형적인 음악 덕후다. 음악을 위해선 망해가는 나라(가야)를 벗어나 새나라(신라)에 들어가 살기도 한다. 야로는 백제와 신라 모두에 무기를 팔아먹다가 죽임을 당했다. 양다리는 걸치되 야로처럼 문어발 확장은 위험하다. 적당하게 현실에 타협하되 너무 기회주의적으로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의 노래]를 음악 소설이라고 말하긴 어렵겠다. 삶과 죽음, 피 튀기는 전쟁터 속 음악은 어쩌면 한낱 가벼운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이 소설이 좋았다. 김훈의 문체가 간결할지언정 그 속에 이야기들은 심히 무겁다. 그 무거움을 중화시켜주는 것 또한 결국 음악이다. 책을 덮고 나면 수백 년 전 우륵이 만들었을 가야금의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것 같다.
우륵은 니문에게 "소리는 살아있는 동안에만 소리"라고 말한다.
살아있는 동안 좋은 음악 많이 듣고, 좋은 책 많이 보고 싶다. 그리고 능력이 된다면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우륵이 제자 니문에게 했던 말을 내 상황에 패러디 한다면 이렇게 옮길 수 있겠다.
브런치 독자여. 그대의 구독이 너무 어렵구나. 좋은 글을 쓰게 되는 날. 아마도 구독 버튼을 누를 수 있을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