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생님!

by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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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점에 들렀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김승옥의 중단편선을 들고 왔다. 새로 나온 소설에는 좀처럼 손이 가질 않고 이렇게 6~70년대에 나왔던, 이미 몇 번이나 보았던 소설이나 다시 또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령 <무진기행> 같은.


오랜만에 읽은 <무진기행>에서 새삼 재미난 장면이 있었다. 서울에서 무진으로 내려간 주인공 윤희중이 학교 음악 선생 하인숙과 밤거리를 걸으며 나누는 대화 장면이었다. 윤희중이, '하 선생님'이라고 부르자 인숙은 선생님 소리 하지 말라며, 오빠 뻘 되지 않느냐고 답한다.


그럼 뭐라고 부릅니까, 하는 희중의 질문에 인숙은 이름을 불러달라고 한다. 아, 이름을 불러주는 일. 인숙은 그렇게 선생님이 아닌 이름으로 불리길 원했구나. 그러고서 희중이 인숙의 이름을 부르긴 부르는데, 그 말투가 이렇다.


"인숙인 왜 내 질문을 피하지요?"


아아 이거. 이걸 뭐라고 하더라. 반존말, 존반말, 존말반... 아닌데. 요즘엔 문득 단어가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래 반존대. 반말과 존대를 섞어 쓰는, 요즘 말로 하면 조금 킹받는 말투. 근데 이게 그저 킹받는 말투만은 아닌가 보다. 인터넷 검색창에 '반존대'를 입력해보니 '설레는 반존대'가 함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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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반세기 전 김승옥 선생님께서는 이미 반존대의 설레임을 알고 계셨던 걸까. 근데 암만 봐도 나는 설레임보다는 다소간의 킹받음을 느낀다. 결국 유튜브에 있는 KBS TV 문학관의 <무진기행> 편을 찾아보았다. 실제 사람의 목에서 튀어나오는 그 뉘앙스를 듣고 싶었으므로.


배우 박근형이 극 중 주인공 역을 맡았는데 소설 속에 등장하는 문장을 그대로 내뱉는다. "인숙인 왜 내 질문을 피하지요?" 아, 미남 박근형의 얼굴에서 이런 대사가 나오자 살짝 킹받음과 설레임이 혼재되어 있는 느낌이다. 결국 말투의 완성도 얼굴인가, 쳇.


그러고 보니 박근형은 젊어서 영화 <설국>의 주인공 역할을 맡기도 했다. 굵직한 소설 원작의 남자 주인공 역할을 자주 한 걸로 보아, 그 시절 박근형의 얼굴 자체가 문학적이지 않았는가. 암만 생각해도 내 얼굴의 장르는 코미디인데, 쳇.


박근형.jpg 그럼, 뭐라고 부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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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을 통해서 사람을 알게 될 때, 자연스레 그의 나이를 알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래 알고 지내도 전연 나이를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내 얼굴이 폭삭 늙어가는 것은 모르고서, 아 저 사람은 당연히 누나겠거니 생각하던 사람이 연하일 때가 있고, 아 저 사람 나보다는 어리겠지 생각했던 이가 연배 높은 동안일 때가 있다.


사람이 궁금하고, 궁금한 사람이니까 묻고 싶다. 그, 올해 춘추가 어떻게 되셨습니까, 묻고 싶은데 요즘에는 이런 물음 조차도 무례하게 비칠 수 있으니까 언젠가부터 온라인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남녀노소지구인외계인을 막론하고 모두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선생님은 좀 심심하니까 '쌤'이라고 부르는 거다.


쌤? 쌤!! 쌤!!!!!!


이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부르는 사람들 성격마다 다른 것인지, 누군가는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누군가는 '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나처럼 '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 연령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몹시 편한 호칭이 아닌가.


하지만 그 언젠가, 또 그 누군가 <무진기행> 속 인숙이 희중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아이참, 쌤이라고 부르지 말고 제 이름을 불려주셔요, 오빠 뻘 되는걸요, 한다면, 그때는 나도 설레는 반존대를 써서 "아무개는 왜 나에게 이름이 불리길 원하지요?..." 하고서... 아 죄송합니다. 상상했더니 너무 킹받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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