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풀거리는 뒷모습이 예쁘네요.

by 이경



생각해보면 나는 어려서부터 어떤 글자의 어감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가령 이름에 '덕'이나 '득'자가 들어가면 그거 왠지 좀 뭐랄까, 촌스럽고 남자 이름이라고 치면 조폭의 느낌이 나는 음절이었달까. 그래서 어려서 아버지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아빠, 이름에 들어가는 덕이나 득이 좋은 뜻이에요? 그때 아버지는, 아, 그럼. 좋지, 하고서 대답하셨다.


덕이나 득이라는 음절의 느낌은 여전히 어딘가 좀 촌스럽긴 하지만 무섭다는 느낌은 크면서 자연스레 지워졌다. 계기는 뭐, '득'을 놓고 말하자면 야구선수 '가득염'이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주유소 가서 "휘발유 가득염." 할 정도로 흔하게 쓸 수 있는 이름 아닌가.


'덕'이라고 치면 아무래도 가수 조덕배다. 이름이 덕배라니. 이덕배, 김덕배, 박덕배, 서덕배, 고덕배, 오덕오덕배, 선우덕배, 제갈덕배, 사공덕배, 어떤 성을 붙여도 뭔가 깡패 이름 같잖아, 생각했던 이미지는 조덕배라는 뮤지션 하나로 따뜻한 느낌마저 들게끔 변한 것이다. 국내 뮤지션 중에 유일하게 '음유시인'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런지.


내가 조덕배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이문세가 진행하던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공개방송에서였다. 이문세와 조덕배는 동갑내기 친구라고 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이문세가 훨씬 젊어 보였다. 아니, 둘이 동갑이라기엔 누구 하나가 지나치게 동안이거나 누구 하나가 지나치게 노안인 것이 아닌가.


외모는 분명 그러했는데 조덕배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세상 대부분의 목소리들이 다 시시하게 느껴졌다. 아름답네. 감미롭네. 분위기가 대단하네. 조덕배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연애시절에는 CD도 안 돌아가는, 카세트 테입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구닥다리 차를 끌고 다녔다. 그 고물차에서 지금의 아내와 가장 많이 들은 테입이 바로 조덕배의 콘서트 음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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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조덕배의 음반을 꺼내 들었다. 조덕배의 콘서트 앨범 첫 곡이 <뒷모습이 참 예쁘네요>이다. 당신은 뒷모습이 참 예쁘니까, 앞모습도 분명 예쁠 거다, 그 예쁜 얼굴 나한테 좀 보여주면 안 되겠느냐, 하는 곡인데 덕배 형은 분명 순수한 사람이었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드는 가사가 아닐 수 없다.


살면서 자연스레 깨우치게 되는 몇 가지 것들이 있다.

"목소리가 좋으면 얼굴이 못생겼다.", "뒷모습이 예쁘면 앞모습이 별로이다." 하는 것들. 세상 모든 실망은 기대에서 나오는 법이니까. 아, 저 사람 목소리 예쁘니까 얼굴도 예쁘겠지, 저 사람 뒷모습이 대단하니까 앞모습도 근사하겠지, 가당치 않은 기대를 하다가 막상 목소리뿐이던 사람이 얼굴을 보이거나, 뒷모습뿐이던 사람이 고개를 돌렸을 때 우리는 실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룹 부활의 '김태원'도 뒷모습은 아름다웠으니까.

하지만 조덕배는 그런 실망을 보지 못한 사람인 듯, 당신, 뒷모습이 예쁘니까, 앞모습도 예쁠 거야, 그 고개 돌려서 얼굴 좀 보여주면 안 되나요, 하고서 노래한다. 뒷모습이 예쁘니까 앞모습도 예쁠 거야... 참, 예쁠 거야.


그런데 이렇게 뒷모습만 보고서 앞모습도 예쁠 거라 노래하는 조덕배의 다른 곡 가사를 들여다보면 또 재미난 구석이 있다. 바로 <너풀거리듯>인데, 가사가 얼마나 아름다우면서 재미있는지.


너풀거리듯 자꾸 까만 너의 머리카락

너풀거리듯 나를 쫓아오던 발자욱소리

너풀거리는 나비 쫓아 떠나버렸네

음 너풀거리며 나비 쫓아 떠나버렸네


꿈을 꾸던 여인아 그렇게 이쁘지는 않지만

내 맘을 꺾어버린 여인아

나만 홀로 남겨두고 나비 쫓아 떠나버렸네


조덕배 - <너풀거리듯> 中


대부분의 가사 라인이 아름다운데, 딱 한 부분 '그렇게 이쁘지는 않지만' 하는 가사가 너무 현실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아니 이왕이고 기왕이면, 내 맘을 꺾어버렸을 정도의 여인이라면 좀 이쁘지 않더라도 예쁘다고 사탕발림 소리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꼭 그렇게, 이쁘지는 않지만, 하고서 사실 그대로를 적시해야 했는가 싶기도 하고... 꼭 그래야만 속이 후련했... 아니면, 그렇게 이쁘지 않았던 것은 그 여인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었던가. 모르겠다.


뒷모습이 예쁘니까 앞모습도 예쁠 거라고 노래하는 덕배 형이나, 그렇게 이쁘지는 않지만 내 마음 꺾은 여인을 노래하는 덕배 형이나 나는 그냥 다 좋다. 학창시절 별밤 라디오에서 조덕배의 음성을 처음 들었던 그 날 이후로 한번도 싫었던 적이 없다.


근데 나 왜 이런 글을 쓰고 앉아 있지. 음악 에세이 원고를 써야 하는데... 음악 에세이 원고에 써먹지도 못할 이런 글을 쓰고 있네에에에... 이제 좀 정신 차리고 원고를 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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