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책을 내면서 사람의 인연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단 한순간이라도 삐끗했다면 책이 나오지 못했을 상황들이 여기저기에서 펼쳐지는 까닭이다. 처음으로 가장 간절하게 바라던 것은 아무래도 글쟁이와 편집자 사이의 인연이다. 그래서 첫 책을 목표로 투고를 했을 때에는 많은 편집자의 글과 관련 책을 읽었다.
한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대표님은, 저자와 편집자가 만나기 위해선 전생에 3,000번은 만나야 가능한 인연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1년에 나오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전생까지, 그것도 3,000번의 만남이나 들먹일까 싶었지만, 누구보다도 편집자와의 만남을 간절히 원하면서 살아왔던 내 모습을 돌아보니 그런 전생에서의 만남도 틀린 말 같진 않아 보였다.
그러다 보니 한 편집자를 만나고서는 최소 두 종의 책을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아직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지 못해서 "아, 편집자님, 저랑 인연이 되셨으니까, 한 번으로는 모자랍니다, 원 모 타임, 미워도 다시 한번, 저에게 글을 쓸 기회를 주십시오." 하고서 당차게 말하지는 못하지만, 마음만큼은 늘 한 번 맺었던 인연을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다.
여하튼 편집자와의 인연은 이러한데, 편집자와 호흡을 맞추고서 쿵짝쿵짝하여 책을 내고 나면 새로운 인연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러니까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내가 가보지 못한 장소에서 내가 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그래 뭐 편집자와는 전생에 3,000번쯤 만나서 현생에 다시 만난 인연이라고 치고서, 글쟁이와 독자는 대체 어떤 인연이길래 책을 매개로 만나게 되는 걸까. 한국에서 1년에 나오는 책이 6만 종 정도라고 치고, 한국 사람 1년에 책 10권 정도 읽는다고 치면, 한 사람이 누군가의 책을 골라서 읽게 될 확률은 대략 10/60,000 퍼센티지로는 0.016%가 되는 건가. 이렇게 생각하면 누군가 나의 글을, 나의 책을 읽어준다면, 그것도 무척이나 재밌고 즐겁게 읽어주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닌지라 웹에 올라오는 이런저런 서평이나 독후감을 모두 찾아본다. 누누이 말했지만 글쟁이란 그런 거 하려고 책을 쓰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책을 계기로 알게 되는 독자님들도 생겨난다. 4종의 책을 내면서 기억에 남는 독자님들이 있다.
1. S독자님.
지금도 마찬가지의 인간이지만 첫 책을 내고서는 지금보다 더 비굴했다. 책이라고 내놨는데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부러 여기저기에 모습을 드러내며 찌질 찌질, 내 책에 관심을 좀 부탁드립니다, 하는 어필을 펼치곤 했던 것이다. S님은 당시 인스타그램에서 '북스타그래머'로 활동하며 영향력을 선보였는데, 아 저런 분이 내 책을 읽고서 서평을 남겨주신다면, 책이 어느 정도 알려질 수 있을 텐데, 하는 얄팍한 마음이 들었다. 나라는 인간은 이렇게나 알량하구나. 시시한 녀석.
그렇게 S님의 게시물을 쓰윽 보다 보니 마침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서평이 있었다. 그 서평을 읽고서는 내 손가락은 자연스레 움직이며 댓글을 달고 있었다. 아, 제 책에도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하는.
대놓고 제 책 좀 읽어주세요, 하는 말은 아니었어도, 누가 봐도 자기 책을 어필하는구나 싶은 찌질한 댓글이었다. "꼭 읽어볼게요." 하는 답 댓글이 달렸을 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설마. 착하신 분이네. 농담두 잘하시지. 올라온 서평들을 보니 검증된 고전문학 위주로 읽는 분이신 거 같은데,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글쟁이가 쓴 데뷔 소설을 읽어줄 리가 있을까. 그런데 S님은 정말 며칠이 지나 내 데뷔작 <작가님? 작가님>을 읽어주시고는 근사한 서평을 남겨주셨다.
그렇게 S님과 인연을 맺었다. S님은 그 후로 내 책이 나올 때마다 여러 권을 사서 주변에 선물도 해주시고, 나오는 책마다 늘 근사한 서평을 남겨주시곤 한다. 세 번째 책 <난생처음 내 책>에서는 아예 S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꼭지 실었을 정도로, 한낱 무명 글쟁이에 불과한 나에게는 소중한 독자님이시다. 고마움을 이루 말할 수 없는 분.
요즘 S님은 내 두 번째 책 <힘 빼고 스윙스윙 랄랄라>를 읽으신 이후로는 그동안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골프에 입문하시고는 책보다는 골프에 좀 더 몰두한 삶을 살고 계시는 듯하다. 내 책이 S님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니, 즐거워해야 할까 싶지만, 요즘에는 이전만큼 북스타그래머로서의 활동은 뜸하신 것 같으셔서 어찌하나 싶기도 하고오.
2. C독자님.
<난생처음 내 책>의 리뷰를 해주신 C님에게서 살아생전 처음으로 '인생작가' 소리를 들었다. 여러분들은 인생작가 소리 들어보셨습니까? 저는 들어봤는데요. 웹에 올리는 글 대부분은 자기 자랑하려고 올리는 거 아닌가. 지금 틀림없는 저의 자랑을 올리는 거니까 다들 빨리 어서 저를 부러워해주세요들, 네?
아마도 작가 지망생이셨을 C님은 <난생처음 내 책>을 읽고서는 인생작가를 만난 것 같다는 서평을 남겨주셨다. 역시 SNS에서 그림책 리뷰를 자주 올리시는 C님 덕에, 그동안 그림책에 관심이 없던 나도 조금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책을 매개로 맺어진 인연이란 이래저래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C님의 인스타 계정에서 바로 어제 출간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런 건 무조건 축하를 해주어야 인지상정. 네 번째 책 <작가의 목소리>에는 첫 책을 준비하는 작가 지망생 분들에게 이왕이면 공저 책이나 전자책보다는 단독의 종이책을 목표로 하는 게 좋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해두었는데, C님은 출간을 준비하면서 실제로 전자책이나 공저 책의 유혹이 있었지만, 내가 쓴 글 때문에 끝까지 종이책을 목표로 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 내가 뭐라고. 정말 내가 뭐라고, 내가 쓴 글에 이렇게 귀를 기울여주실까 싶어서, 이러면 C님 역시 저에겐 인생독자일 수밖에 없는데요, 하는 생각이 들었다. C 선생님, 출간 계약 정말 정말 축하축하드려요. 정말 정말 좋은 책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3. H독자님.
H님은, 뭘 믿고 이러실까 싶은 분이다. H님은 소위 말하는 해외 거주자이신데, 처음에는 <난생처음 내 책>을 바나 건너 주문해서 보셨다고 하셨다. 그러고서는 나머지 내 책 3종을 한꺼번에 주문해서 보셨다고. 나도 외국 아마존 등에서 CD 같은 거 주문해봐서 아는데 이게 상황에 따라서는 받으려는 물건값이나 배송료나 거의 비슷하다.
한마디로 가끔 배보다 배꼽이 더 크기도 한 그런 주문인데도 불구하고, 아니, 대체, 뭘 믿고서, 알려지지 않은, 미천하기 그지없는, 무명의 글쟁이 책을, 바다 건너 주문을 하시고서는, 또 거기서 끝이 아니라 읽으시는 책마다 좋게 평가를 해주시며 블로그에 서평을 올려주시는, 나에게는 약간 천사와도 같은 느낌의 독자랄까.
아니, 전자책으로 보셔도 되잖아요, 굳이 뭐 종이책을 보시려는 이유가 있습니까. 굳이 종이책을 보시려는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굳이 저의 책을 보시려는 이유는 또 뭡니까. 대체, 뭘 믿고 그러시는 거예요. 왜 저한테 자꾸 잘해주시는 거예요? 천사입니까? 하고서 묻고 싶은 독자님이다. 아니, 근데, 정말, 진짜, 뭘 믿고 그러시는 거예요? 네? 예?... 예에? 어?
여하튼 나에게 이런 독자님들이 백 분 정도만 계시다면 나도 금방 베셀 작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구십 여분 정도 더 있어야 될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이 글을 보시고, 대체 이경이라는 작자에는 무슨 매력이 있길래, 네? 그런 궁금증이 있는 분들은 저의 글은 믿지 마시고 제 독자님들의 안목을 믿으시고서들 책을 한 번 읽어봐 달라는 뭐 결국은 또 책 홍보 이야기였다는 그렇고 그런, 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