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와이프 되는 사람의 친구 가족들과 함께 강원도 고성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 사람의 숫자라는 게, 네 쌍의 부부로 어른이 여덟, 그 아래로 아해들이 일곱, 도합 열다섯이나 되는 대규모의 모임입니다. 골프장이 붙어 있는 커다란 리조트 숙소에는 자쿠지가 있어서 아이들이 들어가 물놀이하기에도 좋고, 또 리조트 10층 카페에서는 통유리 밖으로 울산 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하여, 오랜만에 좋은 구경을 하고 왔습니다. 전날 3시에 입실하여, 원래는 다음날 11시 퇴실이 마땅하겠으나, 세상에는 레이트 퇴실이라는 것도 존재한다고 하여, 오후 2시까지 퇴실을 다소 늦추고 나왔으니 꼬박 하루 정도를 숙소에만 머물다 온 셈입니다.
그야말로 누워 먹고 자고 싸다가 나온 삶. 이게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 그러합니다. 원래 이런 곳에 여럿이 가게 된다면 남녀노소를 불문, 각자 도맡은 노동의 몫이 있어야 마땅하겠으나, 이경이라는 작자는 천성이 게을러빠진 탓에 이런 단체 여행을 하더라도 뻔뻔하기가 그지없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저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다가 입을 벌리고 있으면, 사람들이 요리를 해서는 알아서 입에다 떠먹여 주는 모양새라, 말 그대로 한량 그 자체의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는 짓을 보면 분명 밉상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를 탓하지 않는 데에는 아무래도 이경이라는 작자에게는 탓할 수 없는 타고난 귀여움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물론 모임 처음에는 이경이라는 작자에게도 일말의 양심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바 슬슬 눈치를 보며, 아 나도 무언가 일을 해야 하나, 움직이는 척을 해보았으나, 이제는 함께 하는 사람들 모두 이경이라는 작자가 일을 해봐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버려, 숙소에 도착하고 나면 "이경 너는 그냥 누워 있어라." 하며 베개를 챙겨주는 이도 있고, "이불이라도 깔아줘." 하고서 옆에서 거드는 이도 있고, 그렇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준비된 잠자리에서 남이 깔아준 베개를 베고, 남이 깔아준 이불을 덮고 있으면 또 다른 누군가가 조용히 와서는 또 조용히 잠을 잘 수 있도록 또 조용히 방문을 닫고서 불을 꺼주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이게 누워 쉬는 것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행 동무인 형님 한 분은, 정작 당신께서는 커피를 드시지 않음에도, 이경이경 너에게 드립백 커피를 내려주겠다, 이거 맛있어, 하며 숙소에 비치되어 있던 드립백 커피를 손수 내려주기도 하고, 그렇게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소파에 누워 있으면 애피타이저로 김치전이 뚝딱 만들어져, 이경이경 이거 좀 먹어봐, 하는 이야기가 들려와, 평소 김치전을 즐겨먹지 않는 이경이라 하더라도 그 성의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는 법이라, 아, 그렇담 한 번 먹어 볼까 하고서, 연달에 서너접시를 뚝딱 먹어치우고는, 맛이 어떠냐는 요리사(와이프 친구)의 말에 무척이나 저급한 어휘로다가, "어어, 개맛있어." 대답하고는, 김치가 맛있네, 어느 집 김치지? 물었더니, 울 엄마 김치라는 대답에, 아아, 역시 익숙한 엄마손 김치였구나, 하고서는 배를 퉁퉁 튕겨가며 다시 누워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김치전을 비롯하여 이것저것 간식거리들을 주워 먹다가, 마침내 저녁으로 고기를 굽는 시간이 오면 역시 누군가는 식탁보를 깔고, 누구는 야채를 씻고, 누구는 수저를 놓고, 또 한 두어 명은 고기를 굽고, 또 누군가는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고, 누구는, 누구는, 누구는, 아무튼 쉬지 않고 각자 도맡은 노동을 하는데 이경이라는 작자만큼은, 누워있다가 쓰윽 고개를 들어 바삐들 움직이는 주방을 보고서는, "아, 오늘은 삼겹살인가, 목살인가?" 물으면 친절하게도 들리는 답변이, "이번에는 우삼겹을 구워볼까 해, 준비되면 부를 테니까 먼저 와서 먹으라고." 라며, 어째서인지 먹는 순서마저도 저는 늘 첫 번째로 고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누구보다 먼저 먹고서, 뒤늦게 남들이 먹을 때는 또 배가 불러와 배를 튕기며, 아이고 배부르다 노래하며 누워 있다가, 다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며 뒤처리를 할 때가 되면 슬슬 일어나서는, "아 나는 배가 좀 불러서 그런데 요 밖에 나가서 한 바퀴 좀 돌다가 올게." 하며 바람이나 쐬고서 오는 것입니다.
생각하니 정말 미친 인간이 아닌가. 제 주변에 이런 인간이 있다면 저는 그를 몹시 미워할 것 같습니다만, 그 미운 모습의 인간이 저라는 것을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또 어째서인지, 사람들은 이런 저를 미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는 익숙함에 뭐 그러려니 합니다만, 가끔 생각해보면 이경 스스로도, 아아, 사랑, 받고, 있다, 하고서 큰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미운 짓을 해도 미움을 받지 않는 캐릭터도 존재하는 법이 아니겠는가, 타고난 귀여움이 있으니 저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어버렸을 뿐.
이런 저의 모습을 보고 어느 날 와이프 되는 분께서 말씀하시길, "이경 자네는 자네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좀 과한 사랑을 받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한 적이 있는데, 저는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아, 이렇게 저는 여럿이서 놀러 가고 하면 고기도 구울 줄 모르고 그저 먹고 누워서 쉴 줄만 아는, 네? 그러니까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앞으로 저에게 고기를 사주실 분들은, 고기까지 구워 달라 이 말입니다.
스테이크라면 굽기는 미디움 웰던이 적당하겠습니다. 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