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오독

by 이경



1. 서점에서 <이제는 오해하면 그대로 둔다>라는 제목의 책을 보았다. 책은 읽어보질 않아 모르겠지만, 제목은 그럴싸했다.


2. 때로는 아름다운 오해가, 그러니까 그대로 두었을 때 더 좋은 오해가 있을 때도 있다. 내가 오랜 세월 가지고 있던 가장 아름다운 오해는 이문세와 고은희가 불렀던 <이별 이야기>의 가사에 있다.


'그대 내게 말로는 못하고 탁자 위에 눌러 쓰신 마지막 그 한마디'의 눌러 쓰신을 '물로 쓰신'으로 오해를 했던 일이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이 곡을 알고 있는 사람의 5할 정도는 같은 오해를 했으리라 생각한다. 아주 오래전 이문세가 라디오에 나와서 '그 가사는 눌러 쓰신이 맞다'고 말하였음에도 여전히 TV 자막 등에서는 '물로 쓰신'으로 나오니까.


눌러썼다면, 아마도 펜 같은 걸 들고서 탁자에 꾹꾹 힘을 주며 썼을 테고, 물로 썼다면 탁자 위 흥건한 물로 그림을 그리듯 썼겠지. 이별을 말하고 있는 사람을 그려보았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후자의 그림이 더 어울린다. 오해가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3. 2018년 출판사에 투고를 하고 처음으로 긍정의 답변을 주신 분은 한 출판사의 대표님이었다. 당시에 오십 대 중반 정도였으려나. 답장 내용은 길지 않았지만, 단 한 줄에 따옴표가 붙어 강조되어 있었다.


'글이 참 좋네요.'


오십 대 중반의 출판사 대표라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글을 읽어왔을까. 때로는 아름다운 글을, 또 때로는 아주 끔찍한 글도 읽어왔겠지. 그동안 반려 메일만 수십 통을 받아왔는데, 이런 베테랑 출판인에게서 글이 참 좋다는 답장을 받았으니, 혹여나 그가 나의 글을 오독한 것은 아니었을까, 오해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쓴 단어와 문장을 전연 엉뚱하게 읽어 내어, 내가 전하려 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이야기를 상상해낸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걱정을 하곤 했다.


4. 평론가는 욕을 먹기에 좋은 직업이다. 특히나 말도 안 되는 억울한 방식으로 욕을 먹기도 한다. 가령 음악 평론가가 누군가에게 악평을 가할 때, "너는 저런 음악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공격을 받는 것이다. 이런 식의 공격을 가하는 자는 대개 논리가 부족한 어린 아해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공격이 유효하게 보이는 까닭으로 때로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 같은 발언이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이런 공격은 사실 어떤 분야든 대입이 가능하다.

영화 평론가에게 "너는 저런 영화 만들어 봤느냐..."

문학 평론가에게 "너는 저런 글을 써보았느냐...."

음식 평론가에게 "너는 저런 음식 만들어보았느냐..."


하는 것과 해석의 세계는 전연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5. 콘텐츠 하나에 해석하는 이는 여럿이 있으니, 그게 전문 평론가든 일반 대중이든, 오해가 생기는 일은 당연하다. 글로 치면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읽어주는 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있기는 한 걸까. 내가 쓴 책을 가장 많이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담당 편집자일 테고, 많은 독자는 오독하고 오해한다.


그러니 누군가 내 책을 읽고서 "아, 네 책 정말 재밌더라." 해주면, 아, 정말요? 정말 제 책 재밌었나요? 아니 세상에 책이 얼마나 많은 그 많은 책들 사이에서 제 책 하나를 꼭 집어서 재밌다고 이야기해주실 수 있는 거죠? 하고서 묻고 싶다. 혹시, 제 글을 오해하신 거 아니에요?


6. 오디오북 지원 사업에 선정된 <난생처음 내 책>의 녹음은 이미 끝났을 텐데, 어째서인지 오디오북은 아직 안 나오고 있다. 뭐 언젠가는 나오겠지,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여차저차 하다가 알게 된 한 독자님이자 온라인 친구이신 분이 <난생처음 내 책>의 한 꼭지를 낭독하여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주셨다. 내가 쓴 책을 읽어주고는 것도 모자라 한 꼭지를 정말 소리 내어 읽어주셨다고? 아니, 제 글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겁니까아, 하고서 묻고 싶다. 혹여나 제 글을 오해하셔서 너무 좋게 봐주신 것은 아닌지.


7. 지난 주말에는 한수희 작가님과 김설 작가님의 인스타 라이브 방송이 있었다. 방송에서 내 이름이 두 번 언급되었다는 지인의 제보에 부랴부랴 방송을 찾아 확인해보았더니 정말 내 이름이 두 번 언급되었다. 특히 방송 중간 게스트로 나온 '봉부아' aka 봉천동부자아줌마님께서 최근 읽고 있는 책으로 이경의 <작가의 목소리>를 꼭 집어, 재밌게 읽고 있다고 해주셔서, 방송을 보며 소름이 돋아 대패로 밀어야 할 지경이었다. 아니, 세상에 재밌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개중에 제 책을 꼭 집어 그렇게 재밌다고 해주시다니.


사실 봉부아님이 며칠 전 올려주신 <작가의 목소리> 리뷰는 애진작에 확인을 했다. 글쟁이란 에고 서치 하려고 글을 쓰는 종족 아닙니까. 답이 없는 관심종자들. 그때는 봉부아님이 그렇게 유명한 분인 줄 모르고, 아아 이 분 나의 책을 재밌게 읽어주셨구나, 고맙다, 감사하다, 하는 마음 정도였는데, 작가님들이 좋아하는 블로거로 라방 게스트로 나올 정도였다니, 이 정도면 나보다 훨씬 유명하신 글쟁이가 아니신가. 봉부아님... 제가 인플루언서를 몰라 보고서... 봉부아님!!!


봉부아님 <작가의 목소리> 리뷰에서 날더러 오빠라고 부르고 싶다 하셨는데, 일이 이렇게 되니 나야말로 봉부아님을 누나라고 부르고 싶다. 지금 둘 중 누군가는 상대방의 나이를 오해하고서...


8. 이렇게 가끔 내 책을 정말 좋게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을 만나게 되면, 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혹시, 오독은 아니었을까. 오해는 아니었을까. 내 머리에서 나온 글이 누군가에 그렇게 재미를 주고 감동을 줄 수가 있는 걸까. 정말? 정말로? 설령 그것이 오해였다면, 나는 그 오해를 풀어드려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지금을 즐기며...


9. 아, 이거 제 책 재밌다고 자랑하는 홍보글인데요?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그냥 속은 셈 치고 <작가의 목소리> 혹은 <난생처음 내 책>을 읽어달라 하는, 네? 아니, 책이 얼마나 재밌으면 라방에서 봉부아님이 꼭 집어 가지고, 제 책 이야기를 해주셨... 네? 얼마나 글이 술술 읽히면 독자분이 직접 글을 낭독하여 블로그에 올려주시겠냐하는... 네? 예?


10. 아, 참고로 저는 임재범이 부른 <아름다운 오해>를 참 좋아합니다. 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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